동유럽은 왜 분쟁의 씨앗이 되어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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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은 왜 분쟁의 씨앗이 되어왔는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11.13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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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유럽사: 제국의 일원에서 민족의 자각으로, 민족 운동에서 국가의 탄생까지 | 존 코넬리 지음 | 허승철 옮김 | 책과함께 | 1,412쪽

 

이 책은 20세기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사건이 발생한 지역인 동유럽 국가의 역사를 해설한 책이다. 그렇다고 동유럽 개별 국가들의 역사를 다루지는 않는다. 동유럽 혹은 중동부 유럽이라는 관점에서 제국의 일원이며 그 사이의 공간에서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를 서술한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민족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자신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통한 민족 정체성의 자각이야말로 단순했던 유럽 지도를 오늘날의 복잡한 지도로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저자는 주로 몇몇 선각자의 사상에서 비롯된 민족주의가 민족 투쟁이라는 운동으로 진화해가는 과정, 그로 인한 제국의 쇠퇴와 민족 국가의 탄생 과정을 추적한다. 그 국가들은 발트해 연안의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에서 아드리아해 연안의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세르비아, 그리고 흑해 연안의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을 망라한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 이후 동유럽을 휩쓴 파시즘과 나치 독일,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소련 스탈린주의를 끝내 극복하고 오늘날 통합 유럽의 일원이 되기까지,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이야기한다.

발트해에서 아드리아해와 흑해에 이르는 지역에 위치한 국가들은 자신들보다 훨씬 크고, 역사적으로 제국이었던 러시아와 튀르키예를 동쪽에,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독일을 서쪽에 둔 채 그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이 작은 나라들이 동중부 유럽을 구성했다. 이 지역은 지구상 다른 어느 지역보다, 좋든 나쁘든 20세기의 가장 많은 사건들이 일어난 곳이었다.

이 지역이 그렇게 엄청난 드라마와 그렇게 많은 개념을 탄생시킨 에너지는 무엇일까. 지도를 한 번 보자. 민족주의를 발견하게 된다.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민족을 국가에 맞추기 위해 이렇게 자주, 급진적이고 폭력적인 국경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1800년 지도와 2000년 지도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말해준다. 두 지도는 단순한 지도에서 복잡한 지도로, 하나의 작은 국가와 세 개의 큰 다민족 국가가 20개가 넘는 민족 국가로 바뀐 것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영토를 통제하려는 동유럽 민족주의자들의 요구, 또한 저항을 불러일으킨 요구에 의해 진행되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제국의 힘과 유럽의 질서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1820년대 이후 민족주의자들의 작업은 세 단계를 거쳐 독립 국가를 만들어냈다. 첫 단계는 1878년 베를린회의의 결과로, 세르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몬테네그로가 탄생했다. 두 번째 단계는 혁명과 평화 중재의 결과로, 1919년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폴란드가 탄생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평화롭게 분리되었고, 유고슬라비아는 유혈사태를 거쳐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코소보, 그리고 보스니아 내의 두 정치체로 분열되었다.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제국이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된 1867년에 사실상 독립국이 되었고, 1차 세계대전 후 헝가리 영토의 3분의 2가 이웃 국가에 귀속되면서 국토가 크게 축소되었다.

여기에서 논의될 수 있는 것은 폭력, 특히 1차 세계대전 수준의 폭력이 현재의 동유럽 지도를 구성하는 민족 국가를 탄생시키는 데 필요한 것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비평가들이 생각한 것보다 회복탄력성이 강했고, 모든 예상을 뛰어넘는 희생을 치른 1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해에 분해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도와 결과 사이에는 큰 관계가 없었다. 1차 세계대전은 민족해방 전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상자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의도와 결과 사이의 관계가 실종된 1917년 시점에는 민족해방 전쟁으로 해석되었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었고,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위한 전쟁이었으며, 새로운 민족 국가들이 알을 까고 나오는 것을 크게 도왔다.

소련이 붕괴되고, 동유럽 여러 국가들이 1990대 후반 나토와 유럽연합에 가입하며 서유럽과 통합이 강화되면서 이 지역의 고질적 정체성, 민족주의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벨라루스와 폴란드 국경 사이에 조성되는 긴장은 소위 ‘동유럽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냉전종식 이후 유럽 지역에 새로운 현상 유지가 정착되었다는 환상도 이번 전쟁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나토 확장 책임을 미국의 팽창주의 탓으로만 돌리는 사람들은 약 반세기에 걸친 소련의 지배에 철저한 혐오감을 느낀 동유럽 국가들이 이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서둘러 나토 가입을 비롯한 서유럽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동유럽 국가 주민들에게는 여전히 국가 생존, 주권 유지, 외세 지배 예방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 중유럽 또는 동유럽 지역에는 강대국 주도 제국주의와 국력이 강하지 않은 여러 민족 국가들 사이의 긴장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저자는 중동부 유럽 연구는 결국 합스부르크제국 연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렇게 지적했다. “구제국들, 특히 합스부르크제국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 이유는 이 제국은 후에 나타난 많은 민족 국가들보다 인권과 민족과 주민들을 더 잘 보호했기 때문이다.”

동유럽은 탈소비에트 이후 아직도 정체성을 찾는 지역으로 보아야 하고, 대다수 국가들이 유럽연합에 가입했다고 해서 단번에 서유럽과 같은 선상에 선 것은 아니며, 여전히 역사를 통해 경험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고,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그것이 허구적 우려가 아니라 안보 불안이 매우 크다는 것이 잘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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