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양극화와 한국 중산층의 내부 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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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양극화와 한국 중산층의 내부 분화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11.11 1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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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제20강_ 구해근 미국 하와이대 명예교수의 「양극화와 중산층 문제」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열 번째 시리즈 ‘오늘의 세계’ 강연이 매주 토요일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여섯 섹션 총 5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 공동체에서부터 개인의 실존에 이르기까지 지금 여기의 어젠다를 새로운 시선으로 담론의 장을 펼친다. 오늘의 정치와 경제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추이를 점검해보는 세 번째 섹션 ‘오늘의 정치와 경제’ 제20강 구해근 교수(미국 하와이대)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양극화와 중산층 문제


구해근 교수는 그 “개념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볼 때 “경제 상황의 개선과 계층 상승에 대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낙관적인 기대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 ‘중산층’이며 그런 면에서 중산층이란 ‘열망의 개념(aspirational category)’, “즉 많은 사람들이 현재 소속감을 느끼거나 혹은 가까운 미래에 속하기를 원하는 ‘사회적 정체성’을 제공한 개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근래 주목할 변동 지점으로서, “객관적으로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들 중 반수 이상이 자기는 중산층이 아니라고 부정을 한다는 사실”이 있고, 그 같은 현상은 “중산층에서 일어나는 불평등과 사회적 격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짚는다. 요컨대 “한국의 중산층이 과거의 비교적 동질적이고 유동적이며 낙관적인 계층에서 내부 분열적이고 불안이 팽배하고 좌절감이 높은 계층으로 변모”하고 있으며 그 변화는 “소비를 통한 신분 경쟁, 주거지의 계층적 분리, 그리고 격심한 교육 경쟁”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지난 10월 21일, 구해근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오늘의 세계>의 20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한국에서 중간 계층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서구에서는 이들을 중간 계급 또는 중간 계층이라고 부르지만, 한국에서는 마르크스적 이념이 담긴 ‘계급’이란 단어를 피하기 위해서 ‘중산층’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중산층 개념

한국에서 중산층이란 개념은 1970년대부터 회자되기 시작했다. 중산층 개념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경제 상황의 개선과 계층 상승에 대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낙관적인 기대를 함축하고 있었다. 그 면에서 중산층은 ‘열망의 개념(aspirational category)’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많은 사람들이 현재 소속감을 느끼거나 혹은 가까운 미래에 속하기를 원하는 ‘사회적 정체성’을 제공한 개념이 바로 중산층이었다.

중산층은 정치적 목적으로서도 중요한 개념이었다.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확립하려 했다. 한국은 고속도 경제성장에 매진했고, 그 덕에 중산층도 빠르게 팽창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1997년 외환 위기를 겪게 됐고, 그 이후 중산층의 운명은 급속한 반전을 겪었다. 최근에 와서는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40% 정도, 또는 어느 설문 조사에 의하면 20% 정도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주관적 중산층 규모 변화〉

중산층은 사라지고 있나?

그러면 한국의 중산층은 이제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2010년대 기준으로 보면, 객관적 중산층은 60%대인 반면,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 중산층’은 40% 또는 그 이하 수준이기 때문이다.

 

〈객관적 중산층 변화〉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현재 객관적으로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들 중 반수 이상이 자기는 중산층이 아니라고 부정을 한다는 사실이다. 2013년 현대경제연구원 설문 조사에 의하면, 소득 수준이 중위권에 속하는 사람들 중에 단지 45%만이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대답했고, 나머지 55%는 자신이 저소득층이라고 답했다. 

 

〈객관적 중산층과 주관적 중산층 변화 차이〉

그러면 왜 많은 사람들이 소득 면에서는 중산층 위치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중산층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걸까? 대다수 한국인이 생각하는 중산층 삶의 기준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다. 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비현실적인’ 중산층 기준을 채택해놓고 스스로 중산층에 속하지 못한다며 일종의 ‘자학’을 하고 있는 걸일까? 이 현상은 중산층에서 일어나는 불평등과 사회적 격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준거 집단

이 문제를 분석하는 데 사회학적으로 유용한 것이 ‘준거 집단’이란 개념이다. 준거 집단은 각 개인이 자신의 지위나 행위를 판단할 때 비교 대상이 되는 집단으로 개인이 선호하고 그 무리에 속하고 싶어 하며 또 그들로부터 승인받고 싶어 하는 집단이다.

과거에 중산층이 모두 고만고만하던 때와 달리, 지금은 소수의 부유층이 일반 중산층에서 떨어져 나와서 생활 전반의 특권적 기회를 누리게 됨으로써 새로운 준거 집단이 된 것이다. 이런 변화를 가져온 핵심적인 요인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불평등 구도이며, 불평등이 중간 계층을 양극화 방향으로 분화시키고 있는 사실이다.


경제적 양극화

한국은 20세기 후반 급속한 경제 성장을 성취하면서 동시에 비교적 낮은 수준의 소득 불평등을 유지했다. 하지만 1997년에 불어닥친 외환 위기와 그 이후 전개된 산업 구조 전환은 노동 시장은 물론 소득 분배 구조도 크게 악화시키는 영향을 끼쳤다. 더 이상 경제 성장의 과실이 여러 계층에 골고루 분배되지 못하고 소수 집단에게 집중되는 경향으로 나타난 것이다.

경제적 양극화는 우선 최상위층으로 국가의 소득과 자산이 집중되고 나머지 인구의 소득은 침체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외환 위기 이후 한국 경제가 신자유주의 체제로 급변하면서 새 경제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교육이나 기술을 소유한 사람의 소득은 늘어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그와 동시에 몇 차례 찾아온 부동산 시장 버블은 자금 동원력과 정보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자산을 크게 늘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렇게 해서 신흥 부유층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신흥 부유층은 경제적으로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다른 일반 중산층과 격차가 나기 시작했다. 사는 집, 거주 지역, 소비 수준, 의료 혜택, 레저 스타일, 자녀 교육 등 여러 면에서 그들은 일반 중산층과 다른 생활 조건을 누릴 수 있게 된 신 상류 중산층 또는 특권 중산층이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현대 사회의 중요한 계급 분계선은 중간 계층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보다는 신 상류 중산층과 일반 중하층 중산층 사이에서 더 첨예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중산층의 내부 분화

그러면 중산층의 내부 분화는, 특히 새로운 형태의 부유 중산층의 등장은, 중산층 내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또 중산층의 성격을 어떻게 변질시키고 있나? 현재 세계화 시대 한국에서 나타나는 경제적 양극화가 사회적, 문화적 양극화로 서서히 발전하고 있고, 각 분야에서 신분 경쟁을 심화시키며 이 경쟁의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불안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한국의 중산층이 과거의 비교적 동질적이고 유동적이며 낙관적인 계층에서 내부 분열적이고 불안이 팽배하고 좌절감이 높은 계층으로 변모하고 있다.


소비 분야에 나타나는 계급 구별 짓기

근대 사회에서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에서는 처음부터 중산층 개념을 소비 수준을 중심으로 이해하고 정의해왔다. 1997년 금융 위기 이후 새로 형성된 부유 중산층은 고급 소비를 통해서 그들만의 사회적, 계층적 차별성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를 가장 잘 읽을 수 있는 현상이 소위 말하는 ‘명품 열풍’이다. 명품은 부유 중산층에게 편리한 지위재(status symbol)를 제공했다. 명품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luxury) 또는 대중화가 일어나면서 부자들은 명품 중에서도 더욱 비싸고 고급스러운 브랜드를 택하게 되고, 국내에 미처 소개 안 된 특별한 해외 럭셔리 물품을 찾게 된다. 이처럼 명품의 민주화 또는 일상화는 신분 경쟁에서 명품의 구실을 약화시키기보다는 무엇이 가치 있는 럭셔리인가의 기준을 계속 업그레이드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웰빙(Well-being)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소위 ‘웰빙(well-being)’이 사회의 주요 화두가 되었고, 자본주의 시장은 온갖 웰빙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신흥 부유층의 특권적 삶의 기회는 확대되고 중‧하층 사람들과의 계급 격차 또한 벌어지게 된 것이다. 웰빙에 대한 관심이 한국에서 급작스레 사회적 화두로 등장한 근본적인 요인으로는 한국의 생활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건강하고 여유 있는 삶을 즐기고 싶어 하는 사회 계층이 증가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웰빙 유행에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변화는 웰빙에 포함된 먹거리나 신체적 운동, 여가 활동 등이 급히 상업화되면서 과거에는 극히 사적이었던 것마저 차츰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지위재로 변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일반 소비품이든 웰빙이든 소비 분야에 나타나는 추세는 단연히 고급화와 계층별 차별화이다. 부유층의 소득과 자산이 크게 늘어나면, 그들은 더욱 고급스럽고 안락한 생활을 즐기고자 하고, 동시에 자신을 다른 일반 중산층으로부터 분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자본주의 시장은 이 신흥 부유층이 원하는 럭셔리 제품을 새로 만들어 공급한다. 이것을 바라보는 일반 중산층은 낙오되지 않기 위해 부유층의 소비 형태를 모방하며 따라가려고 애쓴다. 그러면 또 부유층은 다시 좀 더 희소 가치가 있고 품격 높은 럭셔리를 찾게 되고, 시장은 다시금 그런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한다. 일반 중산층은 또 다시 이 새로운 럭셔리를 쫓아가려고 노력하게 되며,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이클의 경쟁이 일어난다. 이런 식으로 럭셔리의 기준은 계속 상승하게 된다. 바로 이 패턴이 한국 소비 시장의 주요 변화이다.


강남의 역할

한국에서 부유 중산층의 등장과 병행해서 일어난 중요한 현상은 강남의 등장이다. 비슷한 경제적 위치와 계급적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아파트촌에 밀집해 살면서 서로 경쟁하며 신분을 과시하는 가운데 그들 특유의 ‘강남 스타일' 계층 문화를 발달시킨다.

강남의 특징은, 부가 집중된 지역인 만큼, 모든 첨단 소비 시설과 최신 패션이 자리 잡은 곳이다. 미디어는 강남의 과소비적 측면을 조명함으로써 그곳을 다른 지역 주민들의 선망과 질시의 대상으로 부추겨왔다. 그 과정에서 강남은 자연스럽게 현대 한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준거 집단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따라서 타 지역 일반 시민들로서는 강남 부유층이 보여주는 고급 소비 수준과 생활 양식 그리고 자녀 교육 방법이 진짜 중산층이면 즐길 수 있는 생활 수준이고, 그에 못 미치는 자신들은 더 이상 중산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교육 경쟁

심화하는 불평등, 특히 중산층 내에서 벌어지는 경제적 격차가, 교육 부문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나? 한국의 교육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요인으로 한국의 학벌 체제와 사교육 시장의 기형적인 발달이 특히 중요하다.

사실 한국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은 사회에서 대접받고 성공하는 데 필요한 학력이나 학벌을 얻는 데에 있다. 구조적으로 볼 때, 학벌이 만들어지고 계속 유지되는 것은 대학의 수직적이고 경직된 서열 구조 때문이다. 이러한 서열 체계 속에서 명문대를 향한 교육 경쟁이 치열해지고 중산층 중에서도 부유 가정이 가장 적극적으로 경쟁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교육 경쟁이 주로 사교육을 통해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사교육 시장 발달의 근본적인 요인은 한국의 학벌 구조이고, 좋은 학벌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에서 남보다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부유층의 욕구라고 볼 수 있다. 이 욕구는 1990년대 이후 대학에 진학하는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경제 발전 둔화에 따라 취업 시장이 경색되어가면서 더욱 높아졌다. 한국의 사교육과 관련된 가장 큰 문제는 지역별 사교육 기회 차이가 뚜렷하고 그 격차가 점점 더 심각해져간다는 것이다. 

 

맺음말

지난 20-30여 년간 격변하는 경제 속에서 한국의 중산층은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 경제적 양극화는 중산층 내에서도 소수의 수혜자와 다수의 피해자를 생산해내는 식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계급 지형도가 바뀌면서 한국의 중산층은 과거의 동질적이고 유동적이며 사회 안정적 역할을 하는 계층 집단에서 내부적으로 분화되고 상향 이동이 막히고 불안에 가득 찬 계층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한국의 중산층은 이제 경제적 위치나, 계급적 이해관계, 그리고 정치적 성향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나는 두 개의 계층 집단으로 분화하고 있다. 어느 사회건 상류 중산층이 건전하게 형성되어서 전체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19세기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상류 중산층은 대체로 그런 모습을 보였다. 그쪽 사회에서는 상류 중산층이 물질적 기준보다는 도덕적, 문화적 가치를 통해 자신의 계급적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하였고, 일반 중산층도 그들을 따라갔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많이 다르다. 사회생활 여러 면에서 한국의 신 상류 부유층이 보여주는 계급적 성향은 지극히 물질주의적이고, 가족 이기주의적이며, 성공 지상주의적인 측면이 있다. 이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신분 과시적 소비 행위, 부동산과 거주지를 둘러싼 이기적 행위, 그리고 사교육 중심의 자녀 교육 등에서 잘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가 중산층 문제를 고민한다면 단지 중산층에서 추락하는 많은 패자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현재 경제 구조에서 승자로 떠오른 신 상류 중산층의 계급적 이익과 계급 행위도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 강연 바로보기: [열린연단]_ 양극화와 중산층 문제 (구해근 미국 하와이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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