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철학자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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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철학자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11.07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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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 | 루이-앙드레 도리옹 지음 | 김유석 옮김 | 소요서가 | 204쪽

 

소크라테스는 어떤 저술도 남기지 않았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그에 관해 이야기를 했지만 소크라테스라는 가면을 쓰고 자기 이야기를 했다. 직간접적인 증언들이 남아 있지만 그들 사이의 불일치는 소크라테스가 과연 어떤 사람이고 그의 사상은 무엇인지 문제를 일으킨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는 그의 사후 제자들이 남긴 이야기 속의 인물 ‘소크라테스’일 뿐이다. 그렇다면 진짜 소크라테스는 누구일까?

장대에 걸린 바구니 속에 앉아 천체현상을 탐구한 자연철학자거나, 거짓 주장이 논쟁에서 승리할 수 있게 가르친 소피스트일까? 아니면 신탁의 진의를 찾아서 철학하는 삶을 멈추지 않았던, 그래서 억울하게 고발당한 뒤 죽음마저 감내한 철학적 영웅일까? 그것도 아니면 전통적인 가치 수호자이거나, 과도한 주지주의자일까?

이 책은 이 물음에 명쾌한 답을 주지 않는다.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문제’에 답하기란 어렵다는 입장이다. 아니, 소크라테스의 참된 모습을 복원하려는 시도를 의도적으로 거부한다. 저자는 역사적 소크라테스의 진면모를 찾으려는 대신 네 명의 역사적 증인들이 보고하는 소크라테스에 관한 여러 증언들을 소개한다. 각자가 전용한 덕과 행복에 관한 소크라테스의 생각이 무엇이건 간에, 저자는 소크라테스야말로 다양한 철학적 영감의 마르지 않는 원천임을 보여준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가장 맹렬하게 소크라테스를 공격했던 희극작가이다. 《구름》에서 소크라테스는 바르지 못한 주장으로도 논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수사법을 가르치는 소피스트이거나, 하늘에 있는 것들에 관심을 두는 자연철학자로 묘사된다. 이런 소크라테스의 초상은 아테네인들의 여론에 큰 영향을 끼쳤고, 심지어 동료 시민들의 고발로 재판정에 서기 전부터 그를 괴롭려 온 비방의 진원지였다. 《구름》은 오랫동안 소크라테스를 따라다닌 ‘유령’이었다.

서양 철학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대화편"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이다. 신탁을 따라 스스로의 무지를 선언한 소크라테스는 '엘렝코스'(논박술)를 통해 상대의 모순을 논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를 더 훌륭하게 만들겠다는 도덕적인 목적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산파술'을 통해 상대로 하여금 지혜를 상기해서 '좋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인도한다. 앎과 덕이 일치하는 소크라테스의 이런 면모는 신이 부여한 철학적인 활동으로, 자신의 혼을 돌보는 일이자 타인 역시 혼의 보살핌에 대한 열망이 생기도록 유혹하는 '에로스'와 같다.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이 제시한 소크라테스의 초상에 대안적인 초상을 제공한다. 《회상》에서 소크라테스는 '엥크라테이아'(절제)를 덕의 토대로 제시하는데, 이런 면모는 앎이 곧 덕이라며 '엥크라테이아'를 등한시한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와 구분된다. 한편,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는 '엥크라테이아'가 '카르테리아'(인내)와 함께 '아우타르케이아'(자족성)에 종속된 위계를 제시하며, 행복의 탐구에서 인간에게 가장 큰 자족성을 보장하는 삶의 방식에 특권을 부여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앞선 증인들과 달리 직접 증인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소크라테스를 비판적으로 평가한 최초의 철학자이다. 그가 보기에, 덕에 관한 소크라테스의 태도는 지나치게 주지주의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덕은 '헥시스'(후천적 상태)로서 본질적으로 습관의 결과이지, 그 본질에 대한 지식에 달려있지 않다. 《에우데모스 윤리학》에 따르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용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앎이 아니라 그저 용감해지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입장은 이후 소요학파의 반소크라테스적 경향의 기원이 된다.

이들 네 명의 역사적 증인 가운데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이 자신의 스승을 가장 충실하게 그렸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특정한 초상에 우위를 두지 않는다.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소크라테스는 어느 한 사람의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그들 각자의 소크라테스이다.

저자 루이-앙드레 도리옹은 역사적 소크라테스의 생애와 사상을 재구성하길 포기하는 대신 다채로운 그의 면모에서 철학적 영감들의 원천을 보여주려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누구에게도 독점될 수 없다면, 그를 필요로 했던 지난 시대의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도 소크라테스는 여전히 덕과 행복에 관한 물음의 마르지 않는 원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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