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전과 직업·계층 구조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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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발전과 직업·계층 구조의 변화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11.07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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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제19강_ 권현지 서울대 교수의 「기술 발전과 직업·계층 구조의 변화」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열 번째 시리즈 ‘오늘의 세계’ 강연이 매주 토요일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여섯 섹션 총 5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 공동체에서부터 개인의 실존에 이르기까지 지금 여기의 어젠다를 새로운 시선으로 담론의 장을 펼친다. 오늘의 정치와 경제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추이를 점검해보는 세 번째 섹션 ‘오늘의 정치와 경제’ 제19강 권현지 교수(서울대 사회학과)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기술 발전과 직업·계층 구조의 변화


권현지 교수는 “지난 20여 년간 전 세계 사회과학계에 축적된 노동 시장 양극화론”이 “자유주의적 지식 경제 전환이 낳고 있는 부의 불평등 및 노동의 불안정화 양상을 담론화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 노동 시장 노동자의 분포, 특히 중간 계급의 복합적 상황을 실증적으로 조망하는 데”는 미흡했다고 진단한다. 그 대신 “적어도 노동 시장 내”에서 직업이 “다양한 자산의 보유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와 라이프스타일을 중심으로 사회 구성원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측정의 일관성과 용이성을 상대적으로 잘 확보할 수 있게” 돕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직업 구성 및 특성의 변화를 통해 최근 지식 경제로의 전환이 계층과 불평등 구조에 미치는 함의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최근 한국 노동 시장에서 발견되는 직업 구조, 특히 세대별 직업 구성의 변화 양상이 전환기 한국 사회의 사회 계층 및 불평등, 불안정에 제기하는 문제를 생각”해보는 시론적 논의를 펼친다. 결과적으로 “21세기 초반 20년간 한국에서 중간 계급은 전반적으로 하락했다기보다, 중간 소득층을 형성하던 중장년 중심의 생산직에서 축소”가 된 반면 “지식, 창의, 돌봄 등의 신경제 산업 분야의 젊은 세대”에서는 증가하여 “이질화, 분절화 양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질화되며 확대되는 신경제 산업 부문 중간 계급의 확대”가 “한편으로는 세대와 젠더라는 범주와 연결되어 계급과 사회적 범주의 교차적 불평등에 기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산업 부문의 생산 및 서비스의 노동자 계급과 격차를 벌려나가는 불평등의 새로운 동학”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지적한다. 즉 “고학력화와 함께 전개된 서비스 산업화가 중간 계급의 확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고학력-저임금 일자리 양산, 청년 실업 증가 등 성장 가도에 있던 한국 사회에 낯선 문제”를 안기고 있음을 말한다. 

 

지난 10월 14일, 권현지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오늘의 세계>의 19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머리말

지난 20여 년간 전 세계 사회과학계에 축적된 노동 시장 양극화론 혹은 중간 계급 축소론은 자유주의적 지식 경제 전환이 낳고 있는 부의 불평등 및 노동의 불안정화 양상을 담론화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현실 노동 시장 노동자의 분포, 특히 중간 계급의 복합적 상황을 실증적으로 조망하는 데는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 대신 직업 구조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 여전히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적어도 노동 시장 내에서 직업은 다양한 자산의 보유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와 라이프스타일을 중심으로 사회 구성원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측정의 일관성과 용이성을 상대적으로 잘 확보할 수 있게 돕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업 구성 및 특성의 변화를 통해 최근 지식 경제로의 전환이 계층과 불평등 구조에 미치는 함의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압축적 고도 성장의 키워드가 된 한국은 그 명암을 안고 여전히 성장에 목마른 항해 중이다. 한국의 포스트 산업화는 제조업과 디지털의 융합에 기반한 지식 경제로의 전환에 곧장 진입했다. 여기에 IT 서비스 및 문화 컨텐츠를 필두로 한 소수 서비스 산업의 선전 및 수출 대열의 합류도 지식 경제 전환을 견인하는 중요한 보조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 구조 전환에 따라 직업의 구성 역시 급격한 변화의 물살 속에 있다. 이 글은 최근 한국 노동 시장에서 발견되는 직업 구조, 특히 세대별 직업 구성의 변화 양상이 전환기 한국 사회의 사회 계층 및 불평등, 불안정에 제기하는 문제를 생각해보는 일종의 시론이다.

 

2. 지식 경제로의 전환과 계급 연합, 그리고 자유주의화의 다양성

거시 성장 및 산업 전략과 불평등의 방정식, 계급 연합의 양상을 한국에 대입하면 어떤 모습일까? 한국은 자유 시장 경제로 기울어가는 혼종 경제 정도로 특징지을 수 있다. 자동차 등 전통 제조업이 강세를 유지하고 스마트 팩토리 등 디지털 전환에 적극적이지만, 이 산업을 전략 산업으로 공동의 이해관계를 추진하는 계급 연합은 거의 부재하다. 기업별로 분산된 한국 대기업 노동조합의 때로 조합원 위주의 배타적 교섭 태도는 전략적 계급 연합과는 거리가 멀다.

전통 기업과 신흥 기업 간 경쟁과 협력을 둘러싼 조정, 디지털 전환을 끌고 갈 또 하나의 주요 축으로서 지식 노동자를 포용할 사회 통합의 방법론 등에서 국가 역할이 부재하거나 일관되지 않다. 포용의 다른 한 축으로 중간 계급의 하층, 저임금 계층에 대한 정책에서도 일관성을 찾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생산 시장 및 노동 시장의 변화에 적응을 위한 투자도, 투자 실패를 비롯한 노동 시장의 위험에 대한 대응과 회복의 방법도 대체로 개인의 판단과 책임 영역에 놓여 있고 이에 따른 개인의 불안이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다.

산업 구조 변화 측면에서 한국의 유연하고도 기민한 전환 모델이 노동 시장 불평등 구조를 가지고 순항할 수 있을지를 결정할 요인 중 하나는 이미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 회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중간 계급이 투입을 지속할지 여부다. 한국은 교육 열망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 나라로 기민한 혁신에 개인과 가족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제를 구축해왔다. 성장하는 시장이 매개하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복잡한 불확실성의 시대, 급한 성장이 멈춘 시대에는 이러한 암묵적 약속이 작동하기 어렵다. 기회 균등의 수준이 낮고 교육 투자 대비 기대하는 수준의 회수가 불투명해 이러한 참여가 지속될지 여부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암묵성이 사회적 약속에 기반한 제도로 뒷받침되지 못하면, 커지는 불안과 불안정 속에서 새로운 성장에 대한 개인의 참여가 철회될 수 있다는 의미다.

오히려 불안과 불안정성 속에서 개인 혹은 집단의 기회주의적 성향이 강화될 수 있고,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커질 수 있다. 비교적 높은 수준의 불평등 구조 속에서 상위 중간 계급으로부터 탈락할 수 있다는 불안과 탈락이 동반할 높은 손실을 동시에 고려하는 셈법은 이 계급에 속한 개인들이 자신의 우위를 지키기 위해 배타적 태도를 강화할 개연성을 높인다. 비교적 명확한 회수를 위해 직업 선택을 둘러싼 보수적 성향을 강화할 가능성도 높다. 하위 중간 계급 및 노동 계급에게는 진입 장벽이 한층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압축 성장의 과정에서 계층간 주관적 사회적 거리가 다른 사회에 비해 가까운 수준으로 유지되었을 뿐 아니라 시민의 단일 정체성과 평등한 기회를 강조해온 한국 상황을 고려하면, 전환기 경제에서 증폭되고 있는 불안과 불안정은 계급 간 그리고 이와 교차하는 사회 집단 간 갈등의 여지를 한층 높일 수 있다. 한국에서 사회적 약속을 제도화하는 정치의 부재는 혼종적 체제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던진다.

 

3. 지식 경제의 전환에 따른 중간 계급 함의

지식 경제로의 전환은 필연적으로 선진 자본주의 경제의 노동력 구성 나아가 계급 구성의 변화를 함의한다. 지식 경제형 산업 구조로의 진화, 고등 교육의 팽창과 차별화는 한국에서 전체(aggregated) 직업 구조를 서서히, 그리고 부상하는 세대(emerging generation)의 직업 구조를 급격히 바꾸고 있다. 사회 구성원의 의식과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은 소득뿐만 아니라 일자리의 성격과 사회적 위신, 문화적 취향 등 다차원적인 요소다. 이런 의미에서 고등 교육을 받고 다양한 기술, 문화, 전문 서비스직의 일자리를 갖게 된 젊은이들은 소득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중간 계급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소득과 중간 계급의 직업적 위치 및 정체성의 분리(decoupling)가 전개되고 있고, 그 복잡성이 지닌 사회정치적 함의가 커지고 있다. 소득은 높지 않지만 상당한 수준의 사회, 문화 자본을 지닌 새로운 중간 계급 혹은 중간 계급적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새로운 노동 계급이 한국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비중으로 부상하고 있다.

청년 노동력을 유인하는 데 폭발적 힘을 가진 문화 창의 산업을 포함한 지식 경제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동시에 자유주의적 탈규제화와 유연화가 진행되어온 한국 노동 시장의 특성상 소득 및 고용 안정성 스펙트럼상의 위치와 교차되는 사회적 지위와 인식의 스펙트럼이 개인의 위치를 복잡하고 모순적으로 만들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이런 의미에서 임금 소득의 단일 지표를 통해 본 중간 계급 축소론을 받아들이기는 더더욱 어렵다. 

이 글이 계급의 질적이고 관계적 특성에 주목하는 직업 변수에 주목하는 이유다. 직업은 소득의 원천일 뿐 아니라 고용 관계상에서의 위치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또 한 사람이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지는 경제적 위치와는 독립적일 수도 있는 사회적 지위 혹은 영향력과도 긴밀히 연관된다. 더불어 최종 학력 이후의 직업적 위치는 생애 과정을 통해 변동 폭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점에서 세대 간 계급 구조의 변화를 가늠하는 데도 소득에 비해 이점이 크다.

 

4. 한국 직업 구조의 변화를 통해본 중간 계급 함의

21세기 초반 20년간 한국에서 중간 계급은 전반적으로 하락했다기보다, 중간 소득층을 형성하던 중장년 중심의 생산직에서 축소하고, 지식, 창의, 돌봄 등의 신경제 산업 분야의 젊은 세대에서 증가하며 이질화, 분절화 양상을 보여준다. 이질화되며 확대되는 신경제 산업 부문 중간 계급의 확대는 한편으로는 세대와 젠더라는 범주와 연결되어 계급과 사회적 범주의 교차적 불평등에 기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산업 부문의 생산 및 서비스의 노동자 계급과 격차를 벌려나가는 불평등의 새로운 동학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 전환기 지식 경제화는 학력이 매개하는 인적 자본을 획득하지 못한 청년 세대에 대한 노동 시장 페널티를 한층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5. 나가며

이 시론은 특히 21세기 엘리트 계급의 새로운 부상과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의 확산에 따른 중간 계급 축소론 혹은 양극화론과는 달리 고등 교육의 폭발적 확대와 함께 자라난 청년 세대가 주도하는 전문직 중심 중간 계급의 확대를 주장했다. 이 글에서는 통상, 소득이라는 단일 변수를 사용해 중위 소득 중심의 일정 범위(range) 혹은 일정 소득 분위를 중간 계급으로 분류해 분석되는 양극화론의 한계를 지적하며, 직업 구조의 변화와 해당 맥락에서 일어나는 일자리 질의 변화를 통해 계급 및 불평등 구조 변화를 고찰할 것을 제안한다.

지난 10여 년간 진행된 직업 구조의 변화는 1) 제조업의 고도화를 핵심 축으로 한 개방적, 실용적 기업집단 간 전략적 제휴와 2) 정부의 적극적인 디지털 전환 관련 투자, 3) 그리고 압축 성장의 한 산물로 열망 자본주의의 중요한 근간이 되고 있는 고등 교육 특히 STEM 분야 고도 숙련화를 위한 차별적 민간 투자가 결합된 한국 경제의 지식 경제화와 거시 성장의 지속이라는 맥락 속에 있다. 또 한국의 급격한 인구 구조의 변화와 불안정해지고 있는 노동 시장 구조를 반영하며 20세기 들어 가장 급격히 팽창한 돌봄 경제도 직업 구조의 변화에 가세하고 있다. 직업 구조뿐 아니라, 소득 중심의 중간 계급 분류를 받아들이더라도, 최근 한국에서 청년의 다수는 중간 계급의 범주에 속한다. 오히려 저소득 계층에 집중적 분포를 보이는 집단은 기술 중심 경제 체제의 변화에서 멀어진 중고령 세대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론이 청년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직업 구조가 한국 불평등 구조에 청사진을 제시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문직 중심 중간 계급의 확대를 만들어내고 있는 전환 경제의 새로운 성장 레짐이 이전 세대 전문직 확대가 가져왔을 안정성과 중간 ‘소득’ 계층의 전반적 확대를 계승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중간 계급 직업 점유의 양적 확대는 이질화 속에 진행되고 있고 일부 전문직은 전문 직종의 정체성과 일의 방식, 사회적 관계, 문화적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면서도 상당히 낮은 소득과 일자리의 불안정성을 경영해가는 혼종적 계급 상태를 이어간다. 전문직에도 상당히 확산되어 있는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 노동 계약은 지식형 전환 경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기대 수익률에 비해 높은 수준의 교육과 기술에 대한 민간 투자 지출, 어떤 속도와 모습으로 전개될지 가늠하기 어려운 높은 수준의 자동화와 기술 도입에 적극적인 성장 모델하에서 보유 지식과 기술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판단과 책임, 실패 비용에 대한 부담, 수도 서울에 경제적 기회가 집중되고 치솟는 주택 가격 등은 중간 계급 청년 일반에게도 타격을 주면서 이들의 장기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을 증가시키는 요소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변화에 대응하는 기술적, 사회적, 심리적 역량에 있어서도 중간 계급 청년 내에 상당한 이질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불안정성은 국제 비교의 관점에서 볼 때 탈규제적 자유화의 방향으로 움직여온 한국 노동 시장에서 전문직 및 저숙련 생산ㆍ서비스직 노동 양자 간을 균형 있게 대변하고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거버넌스 및 조정 정치의 결여와 함께 증폭된다. 여기에, 최근 각국에서 강조되고 있는 훈련 시스템, 즉 불확실성과 변화에 대응하는 역량을 키우고 위험을 완충할 수 있는 재교육 및 재훈련 시스템과 일자리와 스킬의 매치를 도와주는 고용 서비스 등 사회적 지원 시스템이 한국에서 크게 부족한 상황이라는 점도 이러한 불안정성을 장기적으로 증폭시킬 요인이다. 

한국에서 계속 강조되어온 작은 정부 담론과 비슷한 경제 규모의 국가들에 비해 한층 낮은 정부 지출, 지난 20여 년간의 급격한 증가세 속에서 얼마간 착시를 일으키기도 하는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의 사회 지출 수준으로는 이런 문제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다. 미래 중간 계급의 불안정과 불안은 열망과 기민함에 기반한 한국 성장 모델의 지속 가능성을 잠식할 요소다. 사회 세력 간 신뢰 기반의 조정 정치를 구축할 방법론의 모색이 현재 그리고 미래 한국 사회를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 강연 바로보기: [열린연단]_ 기술 발전과 직업·계층 구조의 변화 (권현지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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