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가산점제의 부활? 여성 경력 단절 대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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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가산점제의 부활? 여성 경력 단절 대책은?
  •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정치철학
  • 승인 2023.11.05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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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경 칼럼]

2022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OECD 38개 회원국 평균 1.59명의 딱 절반 수준이다. 이는 또한 일반적 합계출산율 권고치인 2.1명의 거의 1/3 수준이므로 확실한 개선책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지난 9월 발표된 ‘OECD 가족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육아휴직 기간 소득대체율은 44.6%로 현재 한국과 유사한 제도를 운영 중인 27개국 가운데 17번째로 낮은 순위다. 이러한 배경에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현재 육아휴직 급여 실질 소득대체율에 걸려 있는 ‘통상임금의 80%, 최소 70만 원, 최대 150만 원’ 제한 규정을 손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에서 육아휴직은 고용보험 가입 후 180일이 경과한 근로자로서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부모에게 신청 자격이 주어지며 기간은 최대 1년간 가능하다(이 기간은 2024년부터 1년 6개월로 늘어난다). 겉보기에 제도적 하자가 전혀 없어 보여도 사실은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우선 2021년 국회입법조사처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출생아 100명당 육아휴직 사용자 비율은 여성 21.4명과 남성 1.3명이다. 여기에 고용보험 가입 자격이 없는 무직자, 자영업자, 프리랜서, 특수고용노동자 숫자를 합산한다면 이 수치들은 훨씬 더 낮아질 것이다. 이는 동종의 정보가 공개된 OECD 19개국 중 꼴찌에 해당했다.

이러한 상황의 원인으로는, 첫째, 위에서 이미 언급한 육아휴직 급여 소득대체율 44.6%가 지목된다. 이는 통상임금의 80%라고는 하나 상한선 150만 원과 하한선 70만 원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이를 연간 소득으로 환산하면 최소 840만 원에서 최대 1,800만 원이 되는데, 이는 2023년 최저임금 시간당 9,620원을 적용한 연봉 2,400만 원과 비교했을 때조차도 한참 부족한 금액이다. 게다가 이 금액은 아이와 엄마 또는 아빠가 한 조로 묶인 ‘2인’ 생계비로 봐야 한다. 이러한 사실들이 월 소득 300만 원 이상 근로자 군의 육아휴직 사용이 2015년 24,832명에서 2020년 63,332명으로 2.55배 상승한 데 비해 동기간 월 소득 200만 원 이하 군에서는 오히려 95,160명에서 70,904명으로 19.2%나 감소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둘째로, 2021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육아휴직자 중 남성 71.0%와 여성 62.4%가 근로자 규모 300명 이상 대기업 소속이었다. 이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게 육아휴직은 그림의 떡이라는 얘기다. 물론 그 외에도 근로자 통계에 잡히지 않는 소외된 엄마와 아빠도 상당수가 존재할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한국의 육아휴직 제도는 빈익빈 부익부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을 액면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셋째로, 2022년에 한국은 OECD 성별 임금 격차 통계상에서 31.1%로 38개국 중 1위였다(한국은 1996년 가입 이후 현재까지 이 부문에서 항상 1위를 차지하는 불명예를 감수해야 했다). 이것은 OECD 평균이 12%였다는 점에서 매우 경악할 만한 수치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엄마들’이 육아휴직 소득 면에서도 ‘아빠들’보다 평균 30% 이상 적은 수입을 보장받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이는 또한 현재 한국의 여성들이 출산의 당사자로서 ‘비자발적 경력 단절’은 물론, 출산 및 육아와 결부된 ‘비(非)정의로운 경제구조’라는 이중의 족쇄를 오롯이 감당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한국의 합계출산율 꼴찌는 한국 여성들의 고뇌에 찬 의식적 선택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로디아 골딘은 ‘성별 소득 격차’ 연구를 통해 여성이 노동시장 내에서 남성을 따라잡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왔음을 증언했다. 일례로 성별 임금 격차가 교육 수준의 차이에서 기인함을 깨달은 여성들은 교육 수준 향상에 매진했다. 그 결과 현재 고소득 국가 대다수에서는 여성의 교육 수준이 남성을 넘어섰다. (한국도 2006년 이후 이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이 여성의 교육 효과는 예상외로 약간의 소득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했을 뿐이다. 여성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원인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여성 노동사 200년 자료를 검토한 골딘은 노동시장 진입 시 남녀의 임금은 동일선상에서 출발하지만, 첫 출산 때 최초로 성별 임금 격차가 발생하고 여성이 육아에 집중하는 10년 사이에 추가적인 임금 격차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성별 소득격차의 근본 원인이 생물학적 성역할에 있다는 관점이다. 이것은 피임약의 등장 이후 남녀 소득격차가 급격히 줄어든 사실을 통해서도 재차 확인되었다. 이에 덧붙여 골딘은 ‘1980년대 미국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여성 단원 수가 급격히 증가한 이유 중 하나가 성별, 인종을 숨기는 블라인드 오디션의 효과’였음을 규명했다. 이것은 ‘사회적 성’, 즉 젠더 불평등의 문제점을 적시한 것이다.

근래 저출산 현상이 가속화되자 우리 사회 일각에서 불과 몇십 년 후면 나라가 문 닫게 될 판이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중앙정부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지자체들이 앞을 다퉈 출산장려금 명목의 지원책을 시행했지만 아쉽게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그러한 정책들 대부분이 친(親)여성적 출산 환경 조성과 거리가 먼 단발성의 건별 현금 지원 방식이라는 한계 때문일 것이다. 사실 현재의 출산 지원 정책은 여성을 국가의 인구정책 차원에서 동원해야 할 무슨 ‘출산 기계’ 정도로 취급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어 아쉽다.

이와 대척점에 있는 것이 바로 ‘군 복무 가산점제’다. 1961년 처음 도입된 이 제도의 지원 골자는 ‘6급 이하의 공무원 시험에서 2년 이상 복무한 군필자에게 총점의 5%, 2년 미만의 군필자들에게는 3%의 가산점을 부여’한다는 것이었다. 1998년 이 제도에 대해 헌법소원이 제기되었고, 이듬해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9인 전원 일치 ‘위헌 판정’ 이후 폐지되었다. 당시 판결문에는 군 가산점제가 남성 징병제를 고수해 온 한국적 상황에서 “여성, 장애인, 군 미필자에 대한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 공무담임권,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라는 이유가 명시되었다.

그런데 최근 여권에서 ‘민간 주택 청약가점 5점 및 공공 임대주택 가점 부여 제도’ 시행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국토부가 공공분양 ‘뉴:홈’ 사전청약 신청자 27,158명을 대상으로 군 복무 관련 정보를 확인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여당은 현 정부의 대선공약인 ‘군 복무 경력 인정 법제화 추진’의 일환이라는 입장이지만, 야당은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다시 냉랭해진 ‘이대남’ 표심을 되돌리려는 선거용 포석으로 해석한다. 이 청약가점제가 공정성에 위배된다고 ‘이대녀’가 반발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므로 과연 여당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미지수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한 사항을 뒤집겠다는 발상 자체가 매우 놀랍고 불편할 따름이다.

다시 우리의 주제로 돌아와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육아휴직 급여 실질 소득대체율 상향 조정’은 시급한 사안이 분명하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여러 이유를 고려할 때 이것이 장기적 차원에서 우리의 초저출산율을 유의미하게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기는 쉽지 않다. 다행히도 필자에게 그것의 급진적 성격 탓에 현실적 수용 가능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우려감을 잠시 접어둔다면, 그리고 가령 운 좋게 채택된다면, 인구절벽 문제와 성별 소득격차 문제 양자에 대한 절묘한 복합적 해결책이 될 만한 대안적 복안이 하나 있다.

그것은 출산 또는 육아를 선택한 여성의 경력 단절과 성별 소득격차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이른바 ‘출산·육아 휴직 가점제’다. 이것은 여성이 출산이나 육아 휴직 이후 직장에 복귀했을 때 동 기간에 발생한 손실을 국가와 직장이 제도적으로 보전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여성이 평생 개인적으로 짊어져야 할 소득과 승진 상의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그 결과 ‘아이’와 ‘경력’ 중 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질 것이다.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행여 소외감을 느낄 남성들이 있다면 걱정을 붙들어 매시라. 남성의 ‘육아 휴직 가점제’는 덤으로 따라붙게 될 것이니.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정치철학

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학과장 겸 문화창조대학원 미래시민리더십·거버넌스 전공 주임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주제는 한나 아렌트 정치미학, 시민정치철학, 한국의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 패러다임, 한국의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등이다. 저서로 The Political Aesthetics of Hannah Arendt(2017), 『한국 민주주의의 새 길: 직접민주주의와 숙의의 제도화』(공저, 2022), 『문화의 이동과 이동하는 권리』(공저, 2022), 역서로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아렌트와 하이데거』, 『과거와 미래 사이』 , 『책임과 판단』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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