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 음식의 한반도 상륙에서부터 K푸드로의 비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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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 음식의 한반도 상륙에서부터 K푸드로의 비상까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10.31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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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푸드 한국사: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외래 음식의 역사 | 주영하 지음 | 휴머니스트 | 368쪽

 

가짜 위스키가 판치던 세상, 더운 여름 아이스케키 장수의 한숨, 손 뻗어 외치던 “기브 미 초콜릿”, ‘카레’가 되어버린 ‘커리’, 세계에서 가장 비싼 한국 빵, 알고 보니 글로벌 푸드였던 김치의 정체…. 들어온 시기나 계기, 방식은 모두 다르지만, 한국인의 식탁에 올라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은 수많은 글로벌 푸드!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교수의 안내로 아홉 가지 글로벌 푸드가 만든 달고 짜고 맵고 쌉쌀한 한국 음식문화사가 펼쳐진다.

1. 글로벌 푸드는 언제 어떻게 한반도에 들어왔을까?

이 책은 한국 고유의 음식이 아닌데도 한국인이 자연스럽게 먹고 마시는 글로벌 푸드 중 위스키, 아이스크림, 초콜릿, 피자, 커리, 우유, 빵, 차, 향신료의 한국사를 다룬 것이다. 고대부터 이어진 사람의 이동과 함께 식재료와 음식 또한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이러한 음식의 세계화는 각 나라의 사회와 문화에 영향을 미치며 ‘글로벌 푸드’를 만들어냈다.

한국인의 식탁에는 이미 수많은 글로벌 푸드가 존재한다. 고추는 아주 오래전 토착화해 한국 음식에 빠질 수 없는 재료가 되었는가 하면, 바나나·오렌지 같은 과일은 물론 외국산 과자와 소스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라면·치킨·피자 같은 음식은 ‘한국화’를 통해 한국을 넘어 세계인의 입맛까지 사로잡고 있다.

이렇게 한국인의 식생활과 음식 문화를 크게 변화시킨 글로벌 푸드는 언제, 어떻게 한반도에 들어왔을까? 저자는 “세계의 어떤 문화도 주변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그대로 지속한 것이 없듯 음식도 예외는 아니며, 따라서 한국 음식 역시 교류와 혼종의 결과물”이라며, 한국사 속 여덟 가지 시기 구분으로 글로벌 푸드의 역사를 살핀다.

그 시기는 중국으로부터 불교 문화가 유입된 삼국시대, 몽골제국과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고려시대, 아메리카의 작물이 세계로 이동한 ‘콜럼버스 교환’의 시대, 중국·일본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조선 후기, 본격적으로 외래 음식이 유입된 개항과 식민지 시기, 미국과 유엔의 원조에 의지해야 했던 한국전쟁과 해방 직후 시기, 식품 산업이 크게 성장한 압축 성장기, 미국식 패스트푸드점이 생겨나고 한국 음식이 세계로 나가기 시작한 세계화 이후까지다.

아홉 가지 글로벌 푸드는 기원과 유래에서 시작해 한반도에 상륙하고 ‘한국화’되어가는 과정, 또 음식을 접한 당대 사람들을 반응과 사회적 영향 등의 이야기를 풍부한 문헌 자료와 이미지를 기반으로 들려준다. 자칫 세계사와 한국사 속에서 공백이 될 뻔한 외래 음식의 한국사를 소개함으로써 한국의 음식문화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제안한다.

2. 글로벌 푸드에 담긴 지난 100여 년 한국인의 삶

아주 오래전 한반도에 들어와 재배가 가능해진 농산물을 제외하고 오늘날 한국인이 일상에서 즐기는 글로벌 푸드 대부분은 그 역사가 길지 않다. 더욱이 지난 100여 년간 식민지, 전쟁, 경제성장, 세계화라라는 급격한 변화를 겪은 한국 사회는 서로 다른 경험을 한 여러 세대가 공존한다. 그래서 글로벌 푸드에 대한 개인의 경험과 인식이 다를 수 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이 책에서 다루는 글로벌 푸드 하나하나에 한국 사회의 변화상이 담겨 있는 동시에 그 변화를 겪으며 살아온 모든 이의 삶이 스며 있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으면서 한반도에 들어온 위스키의 역사에서는 대한제국 시기 처음 위스키를 직수입한 ‘한양상회’, 경성의 ‘카페’에서 위스키를 즐긴 모던보이, 식민지 시기부터 해방 후까지 제조된 ‘유사 위스키’와 이로 인해 일어난 각종 범죄, 군인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만든 위스키, 양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한국의 ‘폭탄주’ 문화까지 위스키 본고장만큼이나 흥미진진한 한국 위스키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신라시대부터 얼음 저장고를 지었을 만큼 얼음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에도, 한반도에 아이스크림이 알려진 것은 근대 일본을 통해서였다. 한국전쟁 이후까지 길거리에서 팔던 아이스케키와, 1960년대부터 공장제 생산이 시작되면서 출시된 삼강하드를 비롯해 1970년대 부라보콘과 누가바의 인기, 이제 세계로 진출하는 한국 아이스크림 업계의 이야기까지 더해 아이스크림에 대한 달콤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초콜릿은 한국인에게 전쟁의 고통과 굶주림 속에서 유엔군을 향해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치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글로벌 푸드다. 하지만 압축성장기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하며 초콜릿의 환상을 좇는 모습을 통해 초콜릿이 가진 착취와 향유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한반도의 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빵을 주식으로 먹지 않는 한국에서 빵의 역사는 특별하다. 오늘날에는 슈퍼마켓에서 파는 공장제 빵이 아니라 좋은 재료를 사용한 수제 빵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업체가 한국 제빵업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이다. 여기서는 19세기 말 일본에서 전해진 한반도 빵의 역사와 더불어 해방 이후 대량생산된 공장제 빵이 어떻게 시대와 조응하며 한국 사회에 확산되었는지 들려준다.

이 외에도 튼튼한 어린이로 자라기 위해 매일 마셔야 했던 우유, 혼분식장려운동으로 억지로 먹어야 했던 카레 우동, ‘시래기 삶은 물’이라며 외면당했던 녹차, 한국에 처음 생긴 피자 전문점과 미국식 패스트푸드점 등 글로벌 푸드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3. 글로벌 푸드를 향한 K푸드의 약진, 그 미래는?

수많은 글로벌 푸드가 한반도에 들어와 한국화의 길을 걸었듯 세계로 퍼져나가는 한국 음식 역시 각지에서 현지화의 과정을 걸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반도에 유입된 글로벌 푸드의 한국사를 들려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세계에서 각광받는 K푸드의 현상을 점검한다.

에필로그에서는 특정 지역의 음식과 식품이 글로벌 푸드로 진화하는 과정을 유형별로 살피며, 그에 김치와 라면, 김 같은 사례를 대입시켜 K푸드가 글로벌 푸드로 변화하는 모습들을 포착해낸다. 이뿐 아니라 한국 고유의 음식 문화 보존에 대한 고민 없이 식품의 수출량에만 급급하는 모습이나, 한국인과 다르게 K푸드를 소비하는 세계인의 모습을 무턱대고 비난하는 ‘음식 민족주의’, 그리고 기후 위기를 앞당기는 글로벌 유통망의 대량생산 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놓치지 않는다. 글로벌 푸드로서 K푸드를 바라보는 이러한 시선은 한국 음식 문화의 보존과 올바른 확산,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K푸드의 비전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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