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혁명의 분자 RNA의 현재진행형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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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혁명의 분자 RNA의 현재진행형 역사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10.31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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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 분자 RNA: 생명의 기원에서 백신과 유전자 치료까지, RNA에 관한 모든 것 | 김우재 지음 | 김영사 | 536쪽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커털린 커리코와 드루 와이스먼이 선정됐다. mRNA의 특성을 이용해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생명의 가장 원초적 조건인 RNA의 발견과 응용,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을 둘러싼 현재진행형의 역사를 탐색하며, RNA가 왜 생명이라는 현상의 거의 모든 것에 관여하는 가장 중요한 분자인지, 그리고 현대 과학은 왜 RNA에 주목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에서 인류를 구원함으로써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주역이 된 mRNA 백신부터 암과의 전쟁 그리고 인지과학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미르(miR), 즉 마이크로 RNA에 이르기까지, RNA와 그것을 둘러싼 미래의 가능성을 구체적인 과학적 서술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기본적으로 RNA 연구의 역사를 짚어보는 책인 만큼 이 책에는 중요한 생화학 및 분자생물학 개념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저자는 RNA를 둘러싼 여러 발견과 발명 뒤에 숨은 배경지식과 학계의 흐름, 그리고 그에 대한 저자 자신의 철학을 함께 풀어낸다. 이는 과학사를 단순히 발견과 발명의 연대기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사 안에 숨 쉬고 있는 철학적, 문화적, 사회적 의미를 함께 제시하기 위함이다.

생물학에서 20세기는 DNA 독재의 시대였다. 그런데 DNA는 단백질의 도움이 없으면 스스로를 복제할 수도, 자신의 정보를 표현할 수도 없다. 단백질은 세포의 기능을 총괄한다. 이들은 피부를 이루고 산소를 운반하며, 때로는 항체가 되어 병균을 잡는다. 이들에 비해 RNA는 그저 DNA의 정보를 단백질로 전달하기만 한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연구 결과 RNA는 DNA의 ‘정보 저장’과 단백질의 ‘기능’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 들어 이러한 RNA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지구상 생명의 역사는 RNA와 함께 시작되었다. 현재 대부분의 과학자는 태초에 유전 ‘정보’와 단백질의 ‘기능’을 모두 갖춘 RNA들로 세상이 이루어져 있었다는 ‘RNA 세계 가설’을 인정하고 있다. 쓰레기(정크junk) DNA라는 취급을 받아왔던 98퍼센트의 DNA 대부분이 RNA로 전사된다는 사실, 다세포생물에서 와서야 등장한 발생 과정에서도 RNA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인간과 침팬지 두뇌의 결정적 차이도 RNA 때문일 수 있음을 알려주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이런 여러 발견으로 분자생물학은 크게 바뀌고 있다. RNA는 적어도 지금 생물학자들에게는 ‘혁명의 분자’다.

1993년 다트머스대학교의 빅터 암브로스 교수 연구팀은 예쁜꼬마선충의 발생 과정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동정하는 과정에서 특이한 돌연변이 유전자를 발견했다. 후에 ‘lin-4’라는 이름을 얻은 그 작고 짧은 돌연변이가 바로 마이크로(micro) RNA, 미르(miR, miRNA)이다. 이후 7년이 지나서야 또 다른 미르(let-7)가 발견되었고, 그 뒤로는 불과 1~2년 만에 100여 개의 미르 유전자가 발견되었다. 현재 인간의 경우 200~255개, 선충은 103~120개, 초파리는 96~124개 정도의 미르 유전자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미르는 22개의 핵산으로 이루어진 머리핀 모양의 RNA다. 미르는 종류와 기능이 다양한데, mRNA의 꼬리 부분에 존재하는 특별한 염기서열에 미르가 결합하면, 그 mRNA의 발현이 억제된다. 즉 mRNA와 상보적으로 결합해 세포 내의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것이다.

미르는 고등 생물의 계통발생학적 변화의 중심에 있다. 생명의 진화에서 ‘형태학적 복잡성’의 증가는 언제나 새로운 종류의 미르 유전자의 등장과 함께한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문(門)이 등장할 때마다 미르 유전자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거나 새로운 종류의 미르 유전자가 출현했다. 미르는 또한 개체발생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체발생의 후반기에 발현되는 미르 유전자의 수와 종류 역시 늘어남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유기체의 복잡성과 미르 유전자의 종류 및 수가 보여주는 강한 상관관계는 유기체의 복잡성을 측정하는 아주 좋은 지표이다. 미르 유전자의 발견은 과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유전자 발현 조절 및 진화의 이해에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RNA의 재발견 과정과 mRNA 및 미르가 선사할 무한한 가능성을 통해서 저자가 진정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태도의 중요성이다. 단순히 RNA를 둘러싼 여러 발견과 발명의 역사를 교과서적으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배경지식과 학계의 흐름, 그리고 그에 대한 철학적, 사회적 의미를 함께 제시했다. 이는 과학이 단순한 지식의 총화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여야 한다는 저자의 철학에 따른 것이다.

분자생물학이 탄생한 이래로, 유전 정보는 단백질의 형태로 기능하며 이 과정에서 RNA는 정보 전달자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생각되어왔다.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분자생물학자들을 사로잡은 이러한 관점은 크릭의 ‘중심 도그마’라는 말에 잘 드러나 있다. 중심 도그마는 ‘DNA가 RNA를, RNA가 단백질을 만든다’라고 요약할 수 있는데, RNA의 재발견은 DNA를 중심으로 사고하던 분자생물학자들의 중심 도그마를 해체시켰다. 저자는 그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과학의 세 가지 특징, 때로는 실험도구가 과학적 발견을 이끌기도 한다는 ‘도구의 역할’, 기존 가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데이터들이 쏟아져나올 때 대안 가설이 힘을 받게 되는 ‘논리적 정합성’, 과학자 사회의 ‘조직화된 회의주의’를 기술하며, 진정한 의미에서 과학자들에게 도그마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인다.

과학에 절대적 지식, 절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의 작업은 좋은 이론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것이지 절대적인 이론을 찾는 것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권위와 독단에 대한 도전은 과학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태도일 수밖에 없다. 과학을 대하는 저자의 자세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과학은 권위를 거부하며, 과학자는 권위에 저항한다.”

저자는 이 책 곳곳에서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저자의 말마따나 장기적인 안목 없이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단위로 근시안적인 투자만 한다면 우리는 선진국 발끝만 따라가는 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순수과학은 과학의 지평을 넓히고 다양성을 확보하는 유일한 도구다.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는 순수과학을 통해 확보된 다양성이 혁명적인 기술의 발견 혹은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새로운 과학적 이론의 출현에 밑거름이 된다는 뜻이다.

미르가 생물학의 뜨거운 주제가 된 것은 많은 과학자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과학은 소수의 영웅적 과학자의 결정적 실험과 위대한 발견을 통해 발전하던 시기를 지나 협업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저자는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소위 ‘돈이 되는 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보다 ‘다양성’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하며,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 따른 정부의 지원과 투자일 것이라는 지적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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