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부터 진달래꽃까지, 인간을 탐구하는 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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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부터 진달래꽃까지, 인간을 탐구하는 문학사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10.31 1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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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고전문학사 강의 세트 (전3권) | 박희병 지음 | 돌베개 | 1,428쪽

 

이 책은 저자 박희병 교수의 대학에서의 마지막 학부 강의인 2021년 1학기 한국고전문학사 강의를 책으로 옮긴 것이다. 강의는 총 32강으로 이뤄졌고, 매주 2회 75분간 진행됐다. 〈질문과 답변〉이 매 강의 뒤에 수록됐으며 이 책에서 다룬 한국고전문학 작품 중 31편의 주요 작품을 뽑아 저자의 번역을 거쳐 〈작품 읽기〉로 매 강의 뒤에 수록했다.

문학사는 저자의 집필 목적에 따라 여러 종류의 문학사가 가능하다. 가령, 촘촘한 지식을 강조하는 문학사, 민족을 강조하는 문학사, 체계를 강조하는 문학사, 시대 구분을 강조하는 문학사 등 다양한 문학사가 있을 수 있다. 박희병 교수의 문학사는 ‘인간’을 강조하는, 인간을 탐구하는 문학사라는 점에서 기존의 문학사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저자는 한국고전문학사를 통해 문학의 역사 속에 구현된 인간의 다양한 마음 그리고 정신과 대면함으로써 삶과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인식을 확장하고자 한다. 이 책의 특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책은 저자가 평생 수행해온 한국고전문학 및 통합인문학 연구의 학문적 온축이 그 바탕이 되고 있다. 책의 저자 소개란에 나열된 수많은 저술들만 보아도 저자가 얼마나 많은, 그리고 깊이 있는 연구를 해온 학자인지 알 수 있다. 〈제5강 나말여초 소설의 성립〉은 저자의 책 『한국 전기소설의 미학』(1997)과 연결되어 있으며, 〈제22강 ‘사라진’ 도와 단호그룹〉은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2018), 『능호집』(2016) 등의 연구와 연결되어 있다. 〈제23강 탈중화주의와 새로운 세계관의 정초―『의산문답』〉은 『범애와 평등』(2013)이, 〈제24강 조선의 문호 박지원〉은 『연암을 읽는다』, 『연암산문 정독 1, 2』 등의 연구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제26강 생사를 건 인정투쟁―이언진의 등장과 『호동거실』〉은 『저항과 아만』(2009)과 연결되어 있다. 

둘째, 기존의 문학사를 보는 시각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좌에서 한국고전문학사를 보고 있다. 가령, 토풍(土風)과 화풍(華風) 개념을 통해 한국고전문학사의 전개를 주체적 관점에서 새롭게 읽어내고 있는 것은 이 책의 한 특징이다. 토풍, 화풍이라는 말은 『고려사』에 많이 등장하는데, 토풍은 고유한 풍속이라는 뜻으로, 화풍은 우리나라에 수용된 중화의 풍속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제9강 삼국 다시 읽기와 토풍의 소환―『삼국유사』〉 또한 토풍과 화풍의 길항작용 속에서 우리 고전문학의 향방을 서술하고 있다. 토풍과 화풍이라는 프레임에서 봤을 때, 눈여겨볼 시기는 조선 후기이다. 이 시기에 주목할 점은 하층 문학 혹은 하층의 현실이 한문학에 수용되거나 반영되어 한문학을 내부적으로 변화시켜간 현상이다. 민요풍의 한시가 창작된다든가, 악부시가 창작된 것을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설시조나 판소리, 탈놀이(탈춤)에서 보듯, 하층의 목소리나 사고방식이 보다 적극적으로 표출된 점도 주목해야 한다. 

국문소설이 대거 창작되어 큰 인기를 끈 것, 야담이 성행한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이처럼 조선 후기는 이전과 문학장이 완전히 달라졌으며, 한문학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상황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국어 문학의 성장이 이런 변화를 야기했다. 이 때문에 고려 전기와는 또 다른 맥락에서 토풍과 화풍의 관계가 문제시된다. 고려 전기가 시간이 흐를수록 화풍이 강해지고 토풍이 위축되는 양상을 보여 줬다면, 조선 후기는 갈수록 토풍이 강해져 급기야 토풍이 화풍보다 우세한 양상을 보이게 된다.

〈제12강 조선 전기 문학을 보는 시각―훈구파와 사림파〉 또한 기존의 관점과 다르게 훈구파와 사림파 문학의 특징과 성취를 새롭게 읽어내고 있다. 우리는 흔히 훈구파는 보수적이고 사림파는 진보적이라는 통념을 갖고 있다. 일종의 이분법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 책에서는 훈구파의 진보적인 면과 사림파의 보수적인 면을 고루 보여준다. 영남 사림파는 훈구파의 대립자로서 15세기 후반 역사에 등장했다. 이들은 훈구파와 경제적 기반이 달랐고 체질이 달랐으며 이 때문에 정치적으로 충돌하며 각축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문학적·이념적 대립 역시 야기되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훈구파와 사림파는 서로 이어져 있는 면도 있다. 이들은 사대부 지배계급에 속한다는 점, 민(民)을 통치의 대상으로 간주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그러므로 훈구파와 사림파의 문학적 대립은 크게 보아 지배계급 내부의 주도권 싸움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양쪽의 문학을 지나치게 선악 구도나 진보/보수 프레임으로 재단하는 것은 실상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 훈구파 문학에도 훌륭한 점과 한계가 있고, 사림파 문학에도 훌륭한 점과 한계가 있다. 훌륭한 점을 평가하는 데 인색할 이유는 없지만, 한계는 한계대로 냉철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논점이다.

이 외에도 여성 영웅소설에 내재된 ‘젠더’ 문제를 다각도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특히 ‘여성 동맹’, ‘인정 투쟁’과 관련지은 논의(제18강 국문소설 및 장편소설의 형성과 전개), 담연그룹의 문학과 학문 세계를, 방대한 텍스트 읽기와 정밀한 작가 연구를 토대로 균형 잡힌 시각에서 새롭게 읽어내고 있는 점(제25강 담연그룹의 문학과 학문) 등은 박희병 교수만이 갖고 있는 독특하면서도 새로운 시좌이다.

셋째, ‘민’(民), ‘여성’, ‘경계인’, ‘비판적 지식인’, ‘중하층 계급’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고, ‘유교 중심주의’에 갇히지 않고자 유의하는 저자의 시좌는 단연 압권이다. 중인 신분의 역관 시인 이언진(1740~1766)은 이십대에 단명했다.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의 삶은 온통 신분 차별에 대한 항의와 자신의 정체성을 담보하기 위한 싸움으로 점철되었다. 저자는 이언진의 시집 『호동거실』을 소개하며, 이언진에 대해 ‘우리 문학사에 처음 보는 괴물의 등장’이라고 말한다.

이 외에도 〈제10강 우리말 사랑의 노래들〉, 〈제15강 해동도가와 새로운 질서의 모색〉, 〈제16강 다른 목소리들―여성 작가의 출현〉, 〈제20강 중인문학〉, 〈제21강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들〉, 〈제28강 야담의 성행과 『청구야담』〉, 〈제29강 탈놀이와 민중 의식〉, 〈제31강 여성 주체의 새로운 모습들〉을 통해, 한국고전문학사에 등장한 다양한 인물들을 보여준다.

넷째, 한국 고전문학 작품의 아름다움과 감동이 생생히 느껴지는 강의이다. 이 책은 거시적 관점에서 한국고전문학사 전체를 통관하고 있지만 지루하지 않으며, 지적 자극과 문예적 감흥이 넘쳐난다. 특히 박희병 교수의 깊이 있고 예리하며 생생한 작품 해석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미처 몰랐던 한국 고전문학 작품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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