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회와 여성의 삶, 그 실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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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회와 여성의 삶, 그 실체를 찾아서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10.31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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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선비와 여중군자: 조선 지식인 여성들의 역사 | 이남희 지음 | 다할미디어 | 440쪽

 

조선 전기에 간행된 족보 분석을 통해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전환기 시대상 속 여성의 모습을 고찰한 책이다.

조선시대를 남녀관계와 각각의 역할, 그리고 혼인 생활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면, 조선 전기와 후기가 크게 다르다. 조선 건국과 더불어 주자학이 시대정신으로 기능하게 되면서 사상사적으로 『대학大學』과 짝을 이루는 『소학小學』이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는데, 이 맥락을 따라가면 세종 대에 왜 『소학』의 보급을 그렇게 장려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조선시대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의 범위를 남과 여의 위상과 관계에 한정해서 보았을 때, 남녀칠세부동석이나 칠거지악과 삼종지도 등과 연관된 이미지들이 대부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전란기를 거친 이후에 굳어지게 되었음을 지적하며, 이 책에서는 조선 전기에 간행된 족보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고려에서 조선사회로 이행해가는 시대상에 초점을 맞춰 남녀관계와 역할, 성별지식(젠더)과 관련된 명제들을 자세히 고찰한다. 구체적으로 족보 기재 양식의 변화, 남귀여가혼과 친영, 균분상속과 윤회봉사 등의 혼인과 제사의 문제들을 살펴본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족보 『안동권씨성화보安東權氏成化譜』에 수록된 부녀자들의 재가再嫁 기록과 분포 양상, 그리고 혼인과 여부女夫, 재가와 후부後夫, 재가 분포와 사회적 의미 등에 대해서도 검토한다. 이를 통해 시대의 과도기적 양상과 조선의 주자학화가 점차로 여성의 삶과 위상, 사회적 지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조선시대 주자학의 심화와 더불어 열녀 이데올로기 역시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현실에 대해서 여성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대응해왔을까? 주어진 여성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까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한 여성이 있었을까? 더 구체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지식인으로서의 여성은 없었을까?라는 물음에 저자는, 다행히 실록과 문집 등 여러 문헌을 통해 ‘여성선비女士’와 ‘여중군자女中君子’라는 용어가 실제 사용되었다는 것은 밝힌다.

이런 개념 틀을 통해서 조선 후기에 등장하는 지식인 여성을 하나의 독자적 범주로 설정하고, 그에 속하는 지식인 여성들 임윤지당, 이사주당, 강정일당의 삶과 사유세계를 자세히 소개한다. 세종 대에 한글이 창제되어 여성들도 글을 쓸 수 있었지만, 더 나아가 한문을 읽고 쓸 수 있는 여성들이 가졌던 현실에 대한 생각과 비전 그리고 그것이 도달한 곳을 확인한다.

조선이 기본적으로 신분제 사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같은 여성이라 하더라도 그 신분과 위상에 따라서 행동반경과 영향력에서 다양한 층차가 있었다. ‘여성’이라는 단일 범주로만 접근하면 오히려 실제 역사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이에 왕실의 지식인 여성들, 당대 최고의 지식인 여성 소혜왕후의 『내훈內訓』,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어머니로 『한중록閑中錄』을 통해서 한을 풀어낸 혜경궁 홍씨, 15세의 나이에 영조의 계비가 되어 수렴청정을 한 영특한 여주女主 정순왕후, 수렴청정을 두 차례한 한 여장부로서 정국을 이끌어간 세도정치의 주역 순원왕후에 대해 살펴본다.

그들이 남긴 저작 및 언교·언간을 통해서 그들의 활약과 생생한 목소리를 되살려낸다. 그들은 왕실의 여성으로 수기修己를 넘어 치인治人하는 대부大夫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으며, 수렴청정 및 세도정치 운영과 같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를 담당하기도 했다.

여중군자는 유학적 세계관 속에서 지극한 목표로 여기는 도덕적 실천 내지 도덕적 인격체의 완성이라는 큰 틀 안에서 살아간 여성들에 대한 최대 찬사로, 화순옹주나 혜경궁 홍씨 등이 여중군자로서 칭송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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