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디지털-턴(digital turn)이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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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디지털-턴(digital turn)이 가능한가?
  • 장노현 한남대·디지털서사
  • 승인 2023.10.22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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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디지털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따뜻한 아날로그, 차가운 디지털’ 혹은 ‘인간적인 아날로그, 비인간적인 디지털’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LP 음반이 디지털 음악보다 더 푸근하고 감미롭고 아늑하고 깊이 있는 사운드를 들려준다고 했다. LP 음반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여러 가지 작은 잡음들이 모여 따뜻한 감성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또 어떤 이들은 종이책이, 그 꿈꿈한 종이 냄새가 건네주는 따뜻한 감성은 차갑고 냉정해 보이는 디지털로 대체될 수 없다고 했다. 사람들은 이런 말들에 쉽게 동의하고 현혹되는 것 같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마샬 맥루한의 핫미디어와 쿨미디어도 아니고, 아날로그의 무엇이 따뜻하다는 것인지, 나는 도통 이해되지 않는다. 또 디지털은 무엇이 차갑고 비인간적이라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아날로그를 권장하고 디지털을 배제하는 시도는 독서 캠페인에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다. 대부분의 독서 캠페인은 종이책 읽기를 권장한다. 보통은 책을 주제로 북콘서트를 열고 저자를 초빙해서 강연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독서 캠페인들은 종이책 읽기가 디지털 읽기보다 훨씬 창의적이고 몰입적인 읽기를 유도한다고 말한다. 종합적인 지적 능력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런 생각을 은밀하게 유포한다. 디지털 읽기는 산만하고, 다중 채널을 빨리 훑어보는 방식이기 때문에 종이책의 몰입적인 깊이 읽기 방식을 따라올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디지털은 진짜 읽기를 방해하는 본질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지 않다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어느 시대에나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그것의 의미나 함의를 판단해 정의하고자 하는 집단들이 생겨나게 된다. 브라이언 파펜버거(Bryan Pfaffenberger)는 이를 ‘기술 드라마’ (technological drama)로 이해한다. 기술 드라마는 새로운 기술에 우호적인 사회적 맥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설계 집단의 ‘진술들’과 새로운 기술로 인해 사회적 위신과 권력의 실추를 경험하게 될 영향 집단의 ‘역진술들’로 구성된다. 앞서 언급한, 아날로그와 디지털에 관한 그럴싸한 말들은 일종의 디지털 기술 드라마의 ‘역진술들’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을 만들어 퍼트리는 영향 집단들은 디지털이 가져올 새로운 시스템과 사회적 배치가 못마땅한 것이다. 못마땅한 이유는 여러 차원일 수 있지만, 어쨌든 기존의 익숙한 시스템이 바뀌지 않고 오래 지속되기를 원한다. 

대학 사회에서 디지털 기술 드라마의 ‘역진술들’이 여전히 상징적 실제적 힘으로 강력하게 작동하는 곳은 인문학이다. 그중에서도 문학 부문이 가장 심각한 것 같다. 문학이라는 학문적·교육적 시스템은 여전히 근대문학의 연장선에서 작동한다. 2000년을 전후하여 문학의 위기 담론이 확산될 때 여러 대학의 문학 관련 학과들이 학과 명칭이나 체계를 바꾸는 등의 전환을 위한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임시방편적이었다. 각 학교의 전통이나 사정에 따라, 가장 중요한 것은 교수자의 유무에 따라, 문화콘텐츠나 미디어콘텐츠를 아우르는 교과과정의 개편도 이루어지는 듯했지만, 이 또한 디지털-턴(digital turn)이라는 본질적 변혁을 반영하지는 못했다.

대학의 문학교육은 아직 여전히 근대문학의 체계를 따라 시와 소설과 비평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 근대문학은 근대인의 삶과 사유, 생활방식을 재현하기 위해 고안된 형식이다. 따라서 이런 문학 형식이 언제까지나 영원히 계속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학 전공자들은 시나 소설 등의 근대문학적 형식들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문학 체계의 디지털-턴을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모든 시대는 자기의 세계관과 삶의 방식을 풀어내고 재현할 자기만의 문학 체계와 형식을 필요로 한다. 지금의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도 자기들만의 새로운 문학 체계와 형식을 통해 디지털적 세계관이나 사유 방식, 혹은 삶의 방식 등을 학습하고 훈련하면서 디지털 시대에 맞는 인간으로 성장하거나 전환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대학의 문학 관련 학과들은 그들을 새롭게 교육하기 위한 어떤 준비나 아이디어도 없고, 여전히 근대문학적 형식과 체계를 재생산하는 데 매몰되어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자기 세대의 핵심 매체인 디지털을 깊이 사유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향후의 삶이 책의 시대에 속하게 될지, 디지털 시대에 속하게 될지, 아무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종일 디지털 기기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만큼 그들은 완전히 디지털화되어 있다. 디지털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그들이 아날로그적 인간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있다. 문학 관련 전공 수업을 들을 때 그들은 디지털 대신 아날로그적 인간이 되기를 요구받는다. 이는 단순히 그들이 강의실에서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제한받는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수업에서 다루는 모든 문학 텍스트는 여전히 아날로그적이고, 문학 텍스트를 다루는 방식도 지극히 아날로그적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에서 계속 머뭇거리게 된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근대문학적 형식과 체계가 아니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그런 것에 더 이상 공감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감수성과 세계관을 풀어내고 재현할 수 있는 새로운 문학 체계와 형식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새로운 문학은 링크, 유닛, 노드, 네트워크 등을 통해 다중 경로로 연결되며 지속적으로 확장되는 일종의 본-디지털 텍스트가 될 것이다. 본-디지털 문학은 인쇄된 근대문학도 아니고, 그것의 연장선에 있는 웹소설 같은 유사 디지털서사류도 아니다. 그것은 디지털에 맞는 창작방법론이나 자체의 미학을 가진 ‘디지털서사’나 ‘디지털포엠’이어야 한다. 레거시한 인쇄매체로 전환될 수 없고 오직 온라인상에서 수행의 방식으로 소비되는 문학이어야 할 것이다. 결국 문제는 디지털에 최적화된 텍스트 형식이고, 형식을 통해 담보된 질이다. 이제 문학계는 본-디지털의 새로운 문학 체계와 형식을 찾기 위한 본격적인 시도와 실험, 그리고 실질적인 프로젝트를 가동해야 한다.

 

장노현 한남대·디지털서사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웹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문학 형식과 가능성을 탐구하는 일에 관심이 있으며, 이를 위해 HN2 프로젝트(hn2.hnu.kr)를 기획·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하이퍼텍스트 서사》, 《디지털 매체와 문학의 확장》, 《개화기의 서사 풍경》, 《은행동 사람들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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