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표현에 어떻게, 무엇으로 맞설 것인가?”
상태바
“혐오표현에 어떻게, 무엇으로 맞설 것인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10.22 02: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혐오: 우리는 왜 검열이 아닌 표현의 자유로 맞서야 하는가? | 네이딘 스트로슨 지음 | 홍성수·유민석 옮김 | arte(아르테) | 332쪽

 

누구나 다양한 개인적 특성, 신념 때문에 “혐오” 행위자(혐오선동가)로 비난받을 수 있고 “혐오”를 당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인종, 민족, 종교, 성별, 성적 지향, 성정체성, 장애 등에 대한 편견이 동기가 되는 혐오표현)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고, 정치 담론에서도 “혐오” 관련 이슈가 점점 더 주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는 혐오는 상대 집단, 특히 소수자집단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조장한다.

혐오표현을 ‘표현의 자유’로 허용해야 하는가, 아니면 혐오표현금지법으로 대표되는 ‘검열’을 통해 혐오표현을 차단(또는 삭제)해야 하는가를 놓고 논쟁이 치열한 가운데, “어떤 방법이 차별과 편견을 해소하고 사회적 화합을 이끌어 내는 데 효과적인가”를 명쾌하게 분석한 책이다.

저자 네이딘 스트로슨(Nadine Strossen)은 미국 수정헌법 제1조를 이론적 토대로 삼아 법학, 역사학, 사회과학, 심리학 등 다양한 초국적 연구물과 혐오표현금지법의 부작용 사례를 면밀하게 검토한다. 혐오표현에는 반대하지만 그것을 법률(혐오표현금지법)로 제한하는 것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고,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효과적인 방법은 법적 제재가 아니라 더 많은 표현, 즉 “대항표현(counterspeech, 혐오표현에 대항하는 모든 표현)”이라는 점을 역설한다.

20세기 후반부터 미국연방대법원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는 수정헌법 제1조의 취지에 따라 ‘긴급성 원칙’과 ‘관점 중립성 원칙’을 엄격하게 집행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한 심각한 해악을 임박하게 야기하는 경우에만 표현을 처벌할 수 있고(긴급성 원칙), 정부 관리나 지역사회 구성원이 표현의 메시지가 탐탁지 않거나, 불온하거나, 두려움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정부가 표현을 규제하는 것을 금지한다(관점 중립성 원칙).

혐오표현금지법은 처벌받기를 두려워하는 발화자를 자기검열에 빠지게 하고 표현을 단념하게 하여[위축 효과(chilling effect)를 야기해], 표현의 자유에 위배된다. 한편, 혐오표현금지법을 집행하는 과정에는 집행자의 주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이때 집행자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표현은 보호하고 그렇지 않은 표현에는 법을 집행할 수 있고, 인기가 많거나 권력을 쥔 사람들보다는 인기가 없는 소수자집단이나 소수자 발화자에게 차별적으로 집행될 수 있다. 즉, 저자는 혐오표현금지법은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혐오표현금지법은 우려되는 해악에 사변적인 기여만 할 뿐 혐오표현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지 않고 심지어 역효과를 유발한다고 말한다. 혐오표현금지법이 혐오표현을 억제한다는 법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혐오표현금지법을 집행해 온 몇몇 정부는 인종, 민족, 종교 등을 이유로 한 야만적인 차별을 경험해 왔으며, 심지어 독일에서는 혐오표현금지법이 있음에도 나치즘이 부활했다는 것을 사례로 든다.

법 집행이 늦고, 구제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며 지리멸렬해진다는 현실적인 문제점도 있다. 여기에는 혐오표현금지법이 소수자를 보호한다는 본래의 취지와 달리, 모호한 언어로 구성되어 행자의 주관에 따라 정치적 반대 입장을 가진 정치인이나 소수자집단을 필연적으로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문제점도 포함된다.

저자가 지적하는 혐오표현금지법의 역효과를 몇 가지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혐오적 표현을 더욱 “지하로 숨게” 만들어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만들고, 그들을 설득할 기회를 영영 상실하게 만든다. 둘째, 혐오표현금지법은 혐오적 생각을 가진 일부 발화자가 이를 “포장(교묘한 수사로 위장)”하도록 유도해 혐오표현이 더욱 널리 유포되고 수용되는 왜곡된 결과를 초래한다. 셋째, 혐오표현금지법은 혐오 발언자를 이슈의 중심에 놓이게 만듦으로써 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홍보 효과)”가 증가한다. 이러한 홍보 효과를 노리고 혐오 발언자들은 표현의 자유의 순교자 행세를 한다. 많은 혐오선동가가 혐오표현금지법과 그 법에 따른 기소를 환영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렇다면 소수자를 비난하고, 집단 간 갈등을 조장해 자유, 평등, 민주주의를 해치는 혐오표현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장기적으로 볼 때, 혐오표현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이에 대한 토론을 이어 가는 것이 차별적 사상을 억제하는 데 검열(혐오표현금지법)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유럽인종차별위원회(ECRI)는 혐오표현과 차별을 억제하려는 유럽 국가들의 노력을 모니터링한 결과, 혐오표현을 금지하는 법률보다는 비검열적 대안 조치가 혐오표현을 근절하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결론지었다.

나쁜 표현에 대해서는 금지가 아니라 좋은 표현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는 관점은, 존 스튜어트 밀이나 존 밀턴 등 자유주의 전통에서 오랫동안 얘기되어 온 것이긴 하나, 저자의 제안은 좀 더 구체적이고 전략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저자는 몇 가지 방안으로 “대항표현, 혐오표현을 당한 소외된 사람들에게 힘 실어 주기, 교육, 더 두껍고 얇은 피부 개발하기(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표현에 덜 민감해지는 방법, 타인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표현에 더 민감해지는 방법), 혐오 발언자들의 진정한 사과, 집단 간 접촉 및 상호작용, 자율적 제한” 등을 제시한다.

저자는 “만약 당신이 가진 도구가 망치뿐이라면, 모든 문제는 못처럼 보일 것이다”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에겐 법 이외의 다양한 방법이 있으며, 비검열적 방식이 검열보다 혐오표현에 대처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저자의 입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혐오표현금지법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조에 위배되며, 혐오표현을 억제하는 효과적인 방법도 아니다. 혐오표현을 억제하는 가장 강력한 해법은 대항표현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