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기와의 특징과 의미, 변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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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기와의 특징과 의미, 변천 과정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10.22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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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 기와 연구 | 윤용희 지음 | 주류성 | 376쪽

 

고대사회에서 왕궁을 세우고 사찰을 건립하는 것은 단지 종교시설을 세우기 위한 건축 활동이 아니라 당대의 정치적 상황과 그에 걸맞은 사상적 변화를 반영하여 통치체제를 새롭게 구축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다. 막새 문양의 변화 또한 단순한 유행의 변화가 아니라 당시의 사상적 변화를 담고 있으며, 정치적 변동의 추이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사상의 전개와 막새의 변천을 살펴보는 것은 백제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은 최신 고고학적 성과와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건축 관련 기사를 비교 검토함으로써 백제 기와의 성립과 변천 과정을 역사적 맥락에서 검토한다. 본론에서는 백제의 평기와와 수막새를 중심으로 문양과 제작 기술을 분석하고, 백제 기와의 특징과 의미, 변천 과정을 한성시기, 웅진시기, 사비시기로 나누어 사상적, 정치적, 사회적 배경과 함께 살펴본다. 나아가 백제 기와 가마터의 분포와 구조적 특징 및 소비지와의 관계를 검토하여 백제 기와의 생산 체제 및 유통 시스템을 살펴본다.

한성시기에는 전문, 연화문, 수면문 등 도교나 불교의 도입과 관련된 외래계 문양과 수지문, 초화문, 방사문, 거치문, 격자문처럼 외래 종교 도입 이전의 토착 종교 혹은 선사시대 토기나 청동거울의 문양과 같은 맥락에서, 백제 사람들이 가진 자연에 대한 관념을 점, 선, 면의 기하학적 무늬로 표현한 자생적 문양이 공존하였다. 웅진~사비시기는 불교의 융성과 함께 연화문이 발달하며, 7세기에 나타난 파문과 무문의 추상적 표현은 백제 문화에 스며든 도교의 영향으로 해석하였다. 

기와는 잘 준비된 점토[素地]를 재료로 하여 일정한 틀과 도구를 사용하여 형태를 만들고[成形], 그늘에 말렸다가[乾燥] 가마에 넣고 굽는[燒成] 일련의 체계적인 공정을 거쳐 제작된다. 기술사적 측면에서, 점토를 주원료로 하는 기와의 생산은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온 토기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하며, 그 과정에서 습득된 흙과 물, 불의 상호작용에 대한 지식과 경험의 축적을 전제로 한다. 

주거 양식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기와의 사용은 지붕에 기와를 올리기에, 충분한 건축 기술의 발전, 즉 지상(地上) 건축물의 등장과 맥을 같이 한다. 여기에 권위를 상징하는 건축물로서 기와 건물을 필요로 하는 강력한 정치집단의 출현과 복잡한 기와 제작 공정을 수행할 전문적인 와공(瓦工) 집단의 조직화는 기와를 본격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배경이 된다. 

또한 기와 생산에는 경제적 뒷받침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고대사회에서 기와 가마는 주로 국가적인 통제하에서 운영되었다. 그러므로 기와는 왕실이나 귀족, 승려 같은 특수 신분 집단의 전유물로서 궁궐이나 관청, 사찰 등 정치적, 종교적 성격의 건물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한국 고대사에서 기와의 제작과 사용이 가지는 의미는 고대국가의 형성과 국가권력의 탄생, 그에 수반되는 도성(都城) 건설 및 정치적, 종교적 상징물 조영이라는 맥락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백제 기와에 관한 문헌 기록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비유왕(毗有王) 3년(429) 11월, “지진이 있었고, 큰바람이 불어 기와를 날렸다(地震, 大風飛瓦).”는 기사(記事)에 처음 등장한다. 하지만 최근의 고고학 자료로 볼 때 이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백제에서 기와가 사용되었음은 분명하다. 특히 풍납토성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다량의 기와는 기존의 웅진~사비시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백제 기와 연구의 시간적 범위를 한성시기로 넓혀 주었다. 

또한 풍납토성 출토 막새와 평기와에서 확인된 다양한 문양과 제작 기법은 한성시기 백제 문화의 다원성(多元性)을 보여 주었으며, 그에 따른 백제 기와의 기원과 계통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장기간 진행된 풍납토성 발굴과 최근의 석촌동고분군 일대에서의 학술조사는 한성시기에 이루어진 건축 활동 및 기와의 제작과 사용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키고 있으며, 더불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성시기 백제 역사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혀주고 있다. 

또한 최근의 발굴 성과에 힘입어 적어도 3세기 무렵에 백제 기와가 사용되었음이 밝혀짐에 따라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수록된 건축 관련 기사를 재조명할 필요성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충남 공주와 부여, 전북 익산지역에서도 백제의 왕궁과 사찰, 가마터 등의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가 많은 성과를 이루어 내면서 웅진~사비시기 백제 고고학 연구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백제 기와 연구도 관련 전시나 학술대회, 자료집 발간으로 학술적 성과가 점차 축적되어 가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성과를 종합하고 집대성하여 한성~사비시기 전 기간에 걸친 백제 기와의 흐름을 큰 틀에서 정립하고, 백제 기와 연구의 새로운 도약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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