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가 죽자 그리스의 역사는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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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죽자 그리스의 역사는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10.22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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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네의 변명: 소크라테스를 죽인 아테네의 불편한 진실 | 베터니 휴즈 지음 | 강경이 옮김 | 옥당북스 | 620쪽

 

기원전 399년 5월, 칠순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법정에 섰다. 그리고 한 달 뒤, 소크라테스는 사약(독당근즙)을 마시고 스러졌다. 직접 민주주의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남은 소크라테스와 아테네의 격돌, 당시 이들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테네 곳곳을 누비며 젊은이들과 자유롭게 철학했던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 젊은이들에게 태산북두로 추앙받은 학자이자 장군 못지않은 배포로 아테네의 전쟁터를 누빈 소크라테스는 일흔의 나이에 아테네와 마주섰다. 무엇이 두려워 아테네는 소크라테스를 제거하려 했을까? 피의 살육까지 불사하며 막고자 했던 참주정은 왜 부활했는가? 아테네의 사형선고를 받고 쓰러질 때까지,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이 아테네 역사에 남긴 것은 무엇인가? 

저자 베터니 휴즈는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아테네의 역사를 색다른 시각으로 풀어낸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왜 이렇게 중요한가? 자랑스러운 직접 민주주의 현장이 왜 그리스 역사의 비극이 되었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저자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아테네 문명에 관한 오해들을 지적하며 우리가 몰랐던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아테네의 재판정에서는 피고가 자신의 형량을 제안할 수 있었다는 것,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영웅칭호와 평생 무료식사를 달라고 요구해 시민들을 놀라게 했다는 것, 훌륭한 아내가 되기 위해서는 소녀들은 기숙사에 보내져 야생동물처럼 지냈다는 것, 소년이 18세가 되면 달리기로 성인식을 치른다는 것, 내부의 적을 더 두려워한 아테네 10부족 간의 갈등을 비롯하여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델로스 동맹(아테네)과 펠로폰네소스 동맹(스파르타)의 전투, 식민지를 차지하려고 민주제와 참주제 국가 간에 벌인 살육전 등 도시국가 간의 큰 전쟁 속에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팽팽한 갈등관계까지 상세하게 전해준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2,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많은 이가 궁금해하는 것은 ‘소크라테스는 왜 법정에 서게 되었을까, 무엇을 잘못했기에 사형까지 당해야 했을까’ 하는 것이다. 저자는 모든 역사적 사건이 그렇듯이 소크라테스의 죽음도 당시 아테네가 처한 시대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열릴 무렵 아테네는 두 차례에 걸친 스파르타와의 전쟁(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치른 후라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도시 환경은 열악해졌고 사람들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시칠리아 원정에 나섬으로써 시작된 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소크라테스의 애제자 알키비아데스가 스파르타에 아테네의 중요 정보를 넘기고 배신하는 바람에 아테네는 전쟁에서 크게 패했다. 전쟁의 패배는 아테네 내부의 혼란으로 이어졌다. 군사정변이 일어나 참주정이 부활했고 30인 참주 천하가 넉 달간 이어졌다. 민주주의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아테네 시민들은 곧 참주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정을 되찾았지만 아테네의 전성기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정치 상황은 계속 불안했고 시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스파르타에 매년 거액의 전쟁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소크라테스가 사회 현안을 비판하고 나섰다. 민주주의자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평화로웠던 이전의 아테네에선 별문제 될 게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피폐해진 삶에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던 아테네 시민들에게 소크라테스는 밉살스러운 괴짜 철학자일 뿐이었다. 게다가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한 결정적 원인 제공자가 그의 제자 알키비아데스인데다 참주정의 핵심 권력자 크리티아스도 그의 제자였다. 소크라테스는 희생양이 되기에 충분했다.

저자는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열리는 종교법정으로 501명의 배심원이 찾아가는 장면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들과 소크라테스가 그곳까지 걸어가는 동안에 보고 느꼈을 것들을 카메라의 줌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기원전 5세기 아테네는 고대 아테네의 황금기이자 격변기였다. 세련된 정치와 문화, 예술을 꽃피운 동시에 전쟁과 살육이 빈번했다. 또한 페리클레스를 비롯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소포클레스, 아리스토파네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양문명의 한 획을 그은 쟁쟁한 인물들이 살았던 시대였다. 저자는 그 시대의 색과 냄새, 질감까지 놓치지 않고 묘사한다. 

저자는 소크라테스와 아테네의 아주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다룬다. 당시 아테네 외곽 알로페케 출신인 소크라테스가 아고라까지 걸어가는 동안에 무엇을 보았을까? 아고라의 시장에서는 무엇을 팔았을까? 플라톤의 대화편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의 제자 구두장이 시몬의 공방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델포이 신전에 신탁을 받으러 가는 참배객들은 신전까지 걸어가며 무엇을 보았을까? 당시 아테네인은 도시국가의 운영과 결정을 위한 정보를 어떻게 공유했을까? 아테네 병사들은 전장에서 어떻게 행군했을까? 어떻게 적을 죽이고 어떻게 목숨을 잃었을까? 당대의 사법제도를 둘러싼 온갖 일화와 당시 성행했던 흑주술, 소크라테스가 마신 독당근즙을 비롯한 다양한 사형방법, 다양한 교단의 신비로운 종교의식까지 생생하게 묘사한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의 문헌들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를 직접 다룬 플라톤과 크세노폰, 아리스토파네스의 저작들뿐 아니라 당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극작품과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의 역사서도 폭넓게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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