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인식의 역사는 어떻게 변천하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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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인식의 역사는 어떻게 변천하였나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10.1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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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후일본의 역사인식 | 이오키베 가오루·고미야 가즈오·호소야 유이치·미야기 다이조·도쿄재단정치외교검증연구회 엮음 | 동서대학교 일본연구센터 옮김 | 산지니 | 352쪽

 

오늘날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는 동아시아에서 매우 중요한 외교 현안이 되고 있으며 한일관계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사회의 혐한 분위기, 거듭되는 정치인들의 망언, 한국 사회의 반일 감정 등도 모두 역사인식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2015년 8월 14일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아베 담화’를 발표함에 따라 심각해진 한일관계와 중일관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던 역사인식 문제를 정치외교사적 관점에서 재검증할 목적으로 간행됐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전후 일본의 역사인식이 전전기(戰前期) 승자의 역사인식과는 다르게 “승자로서가 아니라, 가해자, 피해자, 패자로서의 인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한 이해는 “이 세 가지 인식의 관계가 파악될 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역사인식 문제가 국가 관계와 세계 정치를 움직이는 주요 역학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각국의 역사인식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 사이에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 역사를 바라보는 역사인식의 문제는 지금 양국의 관계와 앞으로의 행보를 예측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서장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의 역사인식은 어떠했는가를 다룬다. 막부 말기와 메이지 유신 사이의 동란, 청일전쟁, 러일전쟁이 그 시기의 대표적인 전쟁이다. 이 전쟁들에서 일본은 승자였으며, 자연스럽게 승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역사인식을 형성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은 비로소 ‘가해자, 피해자, 패자’로서 역사를 인식하게 된다. 패배에서의 회복, 피해자로서의 반전 감정, 가해자로서의 반성이라는 세 가지 요인이 각각 복잡하게 작용하면서 성립된 역사인식인 것이다.

1부에서는 시대를 나누어 패전 이후 일본의 역사인식이 어떤 과정으로 변모했는지 살핀다. 1장은 일본의 패전 전후부터 1950년대까지, 요시다 시게루가 전후 외교의 기조를 설정한 시대를 다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쿄재판을 거치며 일본이 전쟁범죄를 일으켰으며 죄를 책임져야 한다는 ‘도쿄재판 사관’이 형성되었다. 요시다 시게루는 국제적 신뢰 회복을 무엇보다 중요시했는데, 과거를 반성하며 과오를 인정하는 것을 외교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조인하면서 일본은 이를 국제적인 공약으로 삼아 주권을 회복하고 국제사회에 복귀한다.

2장에서는 1960년대 초반부터 1970년대 후반의 사토 에이사쿠 시대를 다룬다. 일본은 먼저 냉전을 배경으로 한 미국, 서유럽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를 추진함과 동시에 전후처리 문제에 지속적으로 대응했다. 이 시기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며 일본의 자기 성찰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연합국이 추진한 전범재판을 받아들였지만, ‘대동아전쟁 긍정론’을 바탕으로 식민지 제국으로서의 길을 부정하는 논의도 등장했다. 전몰자 위령의 중심 시설이었던 야스쿠니신사에 대해서도 관습적인 시설로 여기는 시선과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보는 시선이 엇갈렸다. 야스쿠니신사는 전범 합사와 함께 종교 법인으로서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3장은 1980년대, 나카소네 야스히로 시대의 역사인식 문제를 다룬다. 1980년대 일본 정부는 중국과의 사이에 분쟁의 씨앗을 남기지 않기 위해, 역사인식 문제에 자제하면서 대처했다. 1982년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 중국 침략이 ‘진출’로 표기되자 중국 정부는 일본에 강력하게 항의한다. 한국에서도 거센 반발이 일어난다. 나카소네 총리는 취임 후 한국에 특사를 파견하는 등 한국의 반일 감정을 완화하고자 했으며 한국과 중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함으로써 당시 역사인식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1985년 나카소네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공식 참배는 아시아 국가들과의 사이에서 커다란 외교 문제가 되었다. 나카소네 총리는 이에 재임 기간 동안 참배를 자제하고 외교적인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더불어 4장에서는 일본 본토와 다른 전후를 걸어온 오키나와의 역사인식 문제를 다룬다. 1950년대 오키나와에 유입된 ‘보혁 대립’이라는 정치적 틀이 1990년대 냉전 종결 이후 어떻게 변모했는지, 자기 결정권과 자치를 요구하는 오키나와의 움직임이 어떤 역사적 흐름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살핀다.

2부에는 역사인식 문제를 놓고 진행된 좌담회를 실었다. 2015년 아베 신조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를 발표하기 직전에 이루어졌던 좌담회가 5장을 이룬다. “역사화해는 가능한가”를 주제로 2015년 진행된 좌담회에 모인 중국, 한국, 미국, 유럽의 전문가들은 대전에 대한 반성을 어떻게 총괄할 것인지 살핀다. 이후 전후 70년 일본은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가, 일본은 어떻게 역사인식 문제를 극복하려 하고 화해를 추진해왔는가, 지금부터 어떠한 정책을 펼쳐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6장에는 아베 담화 발표 1년 후에 동일한 구성원들이 참가한 좌담회 기록을 실었다. 아베 담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담화 속 키워드를 분석하고, 각국은 아베 담화를 어떻게 보았는지, 아베 담화는 역대 1995년 무라야마 담화, 2005년 고이즈미 담화와 어떤 차이를 지니는지 살핀다. 마지막으로 일본과 아시아의 역사인식을 유럽의 역사인식 문제와 비교하고, 그 위에서 이후의 국제정치를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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