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끝자락에서 산촌·어촌까지 현재진행형 한국
상태바
도시의 끝자락에서 산촌·어촌까지 현재진행형 한국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10.16 00: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문헌학자의 현대 한국 답사기 세트 | 김시덕 지음 | 북트리거 | 624쪽

 

『문헌학자의 현대 한국 답사기 1·2』는 2017년 여름부터 ‘도시 답사’를 시작한 문헌학자 김시덕의 답사 방법론과 그의 전국 답사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서울과 경기도라는 도시지역에 관심을 두고 출발한 김시덕의 답사는 어느덧 전국 곳곳의 도시는 물론 농촌, 산촌, 어촌 지역에까지 이르러 일종의 ‘문명론 탐구’라는 성격을 띤다. 급변하는 21세기 초 한국의 모습, 오늘날까지 이 땅에 발 딛고 살아온 시민들의 다채로운 삶을 김시덕은 생생히 포착해 낸다. 오롯이 두 발로 뚜벅뚜벅 걸으며.

저자는 문헌학의 방법론을 적용해 현대 한국의 ‘현재사’를 들여다본다. 전국 곳곳의 골목을 걸으며 집과 비석 등에 숨은 시민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낸다. 도시문헌학자가 바라보는 현대 한국의 모습은 어떨까? 가난하지만 허술하게 살아가지 않겠다는, 어떻게든 아름다운 삶을 꾸려 보겠다는 의지가 낳은 동네 여기저기의 포인트. 곳곳에서 문명 충돌이 일어나며 남겨지고 사라진 것들이 전하는 이야기. 우리 앞에 살아온 존재들을 되짚고, 우리 뒤에 살아갈 존재들을 호명하며 지금 우리가 선 자리를 비춘다.

저자는 우리에게 ‘답사’를 즐길 거리의 하나로 제안한다. 이 책에서 그는 일상을 바꿔 놓을 탐험의 비법을 속속들이 알려 준다. 답사라니, 어디 유적지라도 가서 안내판 읽고 기념사진 찍고는 주변 맛집을 찾아 주린 배를 채운 뒤 막힌 길을 되돌아오는 여행을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유적은 바로 내 곁에, 우리 동네에 있다.

『문헌학자의 현대 한국 답사기 1』의 제1부 ‘산책하며 발견하는 현대 한국’에서 저자는 크게 12가지 답사 포인트를 제시한다. 간판, 문화주택, 시민 예술, 화분과 장독대, 냉면과 청요리와 누룩, 민가, 개량 기와집, 공동주택, 아파트, 상업 시설과 공공시설, 철도, 버스 정류장 등이다. 이것들은 우리가 길을 오가며 매번 접하면서도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풍경으로 여기는 존재다. 

도시 안에 숨은 답사 포인트를 충분히 즐겼다면, 이제 도시의 경계를 성큼 넘을 차례다. 제2부 ‘현대 한국에서 일어난 문명 충돌’에서 저자는 농민 대 어민·화전민, 도시 대 농촌 등 이 땅에서 치열히 부딪친 두 집단 혹은 세력을 들여다본다. 공업 도시 울산의 망향비들, 열차가 달리던 섬 제주도, 세종시를 둘러싼 지역민의 정체성 문제, 택지 개발과 전통 마을, 옛길의 흔적을 따라 걷는 도시 안팎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사는 지역의 기억을 기록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게 한다.

도시는 ‘확장한다’. 중심에서 외곽으로, 철도와 도로를 따라. 도시는 ‘짓는다’. 나무를 베고 사람들을 쫓아내고 공장과 업무용 건물과 아파트를. 그래서 마을은 ‘헐린다’. 재개발과 재건축, 택지 개발로. 사람들은 고향을 ‘등진다’. 전쟁과 댐 건설에 따른 수몰, 자연재해와 격리, 신도시 개발이라는 이름 뒤의 강제 이주로…. 지금 우리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누구의 흔적을 ‘밟고’ 있는가?

대한민국은 오랜 역사를 지닌 땅에 들어선 나라다. 아주 먼 옛날부터 곳곳에 사람이 살았다. 따라서 이곳에는 원주민·선주민과 그들의 역사가 없는 땅은 거의 없다. 하지만 간신히 남겨진 그들의 흔적을 우리는 잊는다. 어쩌면 지워 버린다. 내가 사는 곳은 나날이 성장하고 발전하길 염원하면서도, 내가 살던 고향은 옛 모습대로 변치 않길 바란다.

저자는 우리에게 ‘상대적인 인식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가 버리고 잊은 장소의 기억과 사람들의 기록을 길어 올린다. 농촌 마을 어귀의 이장(里長) 공덕비를 읽고, 간척지의 제방 위를 걷고, 산길을 헤치며 화전민의 흔적을 찾고, 산동네의 ‘타이거 모기’에게 쫓기며 써 내려간 기록이다.

『문헌학자의 현대 한국 답사기 2』의 제1부 ‘현대 한국의 탄생을 역추적하다’에서 저자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을 낳은 장소의 기억들을 이 자리에 소환한다. 대전역 동쪽과 서쪽을 비교하며 철도역 주변의 핫 플레이스화와 공공 주택 지구 개발 사업을 들여다보고, 6·25전쟁 피란민 수용소의 흔적과 월턴 워커 장군의 길을 되짚는다. 또 부산 해운대구 재반로를 걸으면서 삼팔따라지 ‘월남민’과 베트남전쟁 난민 ‘월남민’의 삶을 되새긴다. 화재와 수재를 겪으며 도시를 재건한 부산과 영주, 순천의 역사를 조명하며 생산도시화를 향한 광주의 끝없는 도전도 살핀다.

기억을 담은 장소들에 이어, 제2부 ‘도시 끝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에서 저자는 사람들의 기록을 꼼꼼히 그러모은다. 원풍모방 노동조합원의 기록들을 통해 노조와 아파트, 상이용사촌이라는 대서울의 기억을 전하고,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촉발한 가장 날것의 충돌을 서울 서초구 방배중앙로를 걸으며 확인한다. 그런가 하면 ‘내 친구의 집’을 찾아가는 안양 벌말의 기억과 ‘벽화 사업’이 휩쓸고 지나간 약탈의 현실을 폭로하는 부산 문현동의 이야기는 저자의 시선이 어디에서 출발해 누구를 향하는지 여실히 보여 준다. ‘전도관’ 건물에 초점을 맞춰 신종교가 한국 시민들에게 남긴 유산을 짚는 대목에서는 당사자 인터뷰를 더해 당대 상황을 더욱 실감 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한센병력자와 미군 위안부 기지촌 여성들의 증언을 따라 걷는 길은 우리가 외면해 버린 피해 생존자들의 인생을 고스란히 소환한다. 끝으로 영월 광산촌과 화성 향남읍에서는 산업 전환 끝에 남겨진 사람들, 다인종·다문화 국가 한국에 주목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