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 ‘협동’, ‘합동’, ‘공동’, ‘공유’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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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 ‘협동’, ‘합동’, ‘공동’, ‘공유’ 그리고...
  • 박광기 대전대·정치학
  • 승인 2023.10.15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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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기 칼럼]

이제 또 대학입시가 시작되었다. 각 대학들이 신입생 수시모집으로 분주하다. 대학의 모든 역량이 신입생 모집에 집중되었고, 이번 수시모집에 특히 지방대학들은 사활을 걸고 있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라 지방의 많은 대학이 입학정원을 다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아마도 현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비록 올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소위 킬러문항이 출제되지 않는다고 해서 재수생들이 다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지방대학이 체감하는 신입생 미달상황에 대한 예상은 지방대학의 존폐와 직결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실 지방대학의 위기 상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학령인구의 감소는 이미 예상되었던 것이고, 이에 따라서 신입생 미달이 속출하고 대학의 존폐와 직결된다는 것도 이미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대학의 입학정원을 감축하고 감축의 정도에 따라서 대학재정지원사업을 연계하는 정책도 시행한 적이 있었다. 또한 교육부는 대학정원 감축과 더불어 대학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이미 예측한 것과 같이 대학의 위기로 나타났고, 그 위기는 예측한 것보다 더 강한 현실로 나타났다. 그리고 대학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을 통한 지원이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생명을 연장하는 연명정책에 불과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지방대학의 존폐위기는 단순히 해당 대학의 존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지방의 존립을 위협하는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지방대학의 위기와 존폐가 현재는 큰 영향이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 수도권 대학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 자명하다. 문제는 과연 어떻게 지금의 위기상황을 벗어나 지방대학을 살릴 것인가에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 정부가 추구하는 지방대학정책의 핵심 내용은 대학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대학간 통·폐합을 통해 지방대학을 강화하고, 줄어든 신입생을 대신하여 평생교육의 확대와 외국인 유학생을 확충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부의 정책이 과연 지방대학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방을 활성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또한 강도 높은 대학의 구조조정을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하는지도 사실 명확하지 않다. 단순히 대학 간의 통·폐합이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문제점을 극복하고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지방대학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묘약이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지방의 국립대학은 정부의 정책적 의지에 따라서 통·폐합이 전혀 불가능하지 않고, 또 현실적으로 국립대학 간 통·폐합이 이미 이루어진 사례가 있는 만큼 가능할 수도 있다. 문제는 지방대학의 대부분이 사립대학이라는 점과 사립대학 간 통·폐합은 재단이 동일한 경우가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지방대학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가 정말 쉽지 않다. 그리고 지방대학이 아무리 대학 단독으로 구조조정과 생존전략을 수립한다고 하더라도 혼자만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어떤 방식이든 지역의 대학들이 서로의 상생방안을 같이 고민하고 수립하여 추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정부가 지원하는 재정지원사업이나 연구개발 사업을 위해 대학이 다른 대학, 기업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수행한 경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산학협력선도대학지원사업(LINC)을 통해 ‘산학협력’을 함께 수행하기도 하였고, 디지털혁신공유대학사업, 인문사회융합인재양성사업과 같은 재정지원사업을 위해 대학 간 ‘협업’, ‘공유’과 같은 형태의 공동의 노력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업이나 과제 수행은 특정 목적이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것에 한정되는 것이고 대학의 구조조정이나 대학 간의 통·폐합 등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각각의 사업을 통해 대학 내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대학의 특성화를 도모하려는 목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와 같은 사업이나 과제를 통해 대학, 특히 지방대학이 당면하고 있는 위기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이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동안 대학이 수행한 ‘협력’, ‘협업’의 경험은 대학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특히 202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RISE사업을 어떻게 설계하고 수행하는가에 따라서 대학재정사업의 본질을 바꿀 수 있을 것이며, 지자체의 대학재정지원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지역 내 대학 간 진정한 ‘공유’를 중심으로 대학의 위기상황을 타개할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 있는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이 학사제도, 교육과정은 물론이고 공동의 학위취득과정 및 교원교류 등을 통해 중복되는 전공이나 학과를 진정한 ‘공유’를 구축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지역의 대학들이 각자 특성화를 도모하여 지역 전체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자체와 지역, 그리고 대학 간의 ‘협력’이 단순한 ‘협동’이나 ‘합동’ 또는 ‘공동’의 형태로 구축하고 수행되어서는 그 효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도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흔히 말하듯이 ‘위기는 기회’일 수 있다. 대학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앞으로 미래를 위한 기회가 될 수 있고, 그 기회는 현실이다. 또한 대학은 사적인 조직이나 이해관계의 산물이 아니라 공공을 위한 조직이다.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사적인 이해관계에 집착하지 않고 공동의 이익과 미래를 위해 지혜가 필요한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박광기 대전대·정치학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독일 뮌헨대학교 정치학 박사. 대전대 대학원장 및 도서관장, 국무총리실 인문사회연구회 및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 한국연구재단 사회과학단장, CBS 시사포거스 및 시사매거진 앵커, 한국정치정보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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