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회의 어떤 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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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회의 어떤 과오
  • 이상룡 논설위원/부산대학교·철학
  • 승인 2023.10.15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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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룡 칼럼]

법 조항은 해석되어야 한다. 법률뿐 아니라, 원래 말이란 게 그러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때 입법 취지가 해석의 중요한 기준일 수 있지만, 입법 취지조차도 해석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시인도 자신의 시에 대한 최종적인 권위를 갖지 못한다. 작가의 창작 의도 역시 하나의 해석에 불과한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최근 부산대 교수회와 직원협의회, 총학생회는 총장 선거와 관련하여 투표 반영 비율을 합의했는데, 이 글은 그에 대한 한 해석이다.

국회는 “교원의 합의된 방식과 절차”를 “교원, 직원 및 학생의 합의된 방식과 절차”로 법을 개정하였다. 각 대학에서는 이 법 조항을 해석해서 총장 선거를 해야 한다. 교원, 직원, 학생의 합의로 선출하라는 것은 이전처럼 교원의 합의만으로 선출하지 말라는 것이고, 이는 다시 교수들은 1인 1표의 선거권을 가지면서 직원과 학생은 그렇지 못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관건은 이제 세 주체가 합의해야 한다는 점이고, 그 합의는 각자가 어느 정도의 지분을 가질 것이냐가 된다. 그런데 법 개정 후 선거를 치른 대학의 투표 반영 비율을 보면 개정 전과 큰 차이가 없다. 교원들은 여전히 70% 이상의 비율을 갖고 있다. 법 개정 이전에도 교원의 비율이 가장 낮은 대학이 70%였다. 직원과 학생은 더 큰 지분을 요구할 법적 근거까지 주어졌지만 약간의 지분을 더 챙기는 선에서 물러났다. 법 개정은 하나 마나 한 결과를 낳았다.

부산대는 총장 직선제에 관한 한 상징적인 대학이다. 한때 다른 국공립대에서 총장 직선제를 포기할 때 죽음으로 항거한 곳이기 때문이다. 총장 선거를 앞두고 교원, 직원, 학생의 투표 비율을 합의했는데, 이에 따르면 전임 교수 1,200명을 기준으로 교수는 76.9%이고, 직원·조교 15.4%, 학생 7.7%다. 이전에는 교수 82.7%, 직원·조교 14.1%, 학생 3.2%였다. 부산대 교수회장은 이러한 합의를 두고 “전국의 모든 국립대가 투표 반영 비율을 앞두고 총장 선거철마다 겪고 있는 대학 구성원들 간의 갈등과 내홍을 해결할 수 있는 지표로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합의의 근거가 무엇일까? 학생의 투표 반영 비율이 100분의 10인 기준을 밝혀야 한다. 그 기준이 없다면 그 합의는 힘의 산물이라는 것이고, 선거 때마다 힘겨루기가 벌어질 것이고, 다른 대학에서 적용할 수 있는 지표로 사용될 수도 없을 것이다. 

부산대 교수회에서는 폭력이나 강압이 아니라 말로써 합의를 했다고 하겠지만 합리적 근거도 없이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힘에 호소하는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그럴 경우 부산대의 전임교수들은 합리적 근거도 없이 정해진 비율에 영문도 모르고 승인하도록 강제될 것이다. 그런데 부산대의 교수회, 직원협의회, 총학이 합의한 기준은 알려진 바가 없다. 합의 사실을 알리는 기사는 많으나, 그 기준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기사가 없다. 이는 대학이 교원, 직원, 학생의 투표 비율을 정할 기준을 만들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교원, 직원, 학생의 합의로 선출하라고 법을 개정한 국회만 머쓱해지게 되었다. 대학의 민주화에 있어 총장 선거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대학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 대학의 총장 선거는 교원, 직원, 학생이 각자 자신들의 지분을 챙기는 이전투구의 장이 되었다. 이것이 교수회가 저지른 과오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과오가 있다.

부산대 교수회는 법적으로 교원인 강사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았고, 부산대의 교원, 직원, 학생 모두 여기에 합의했다. 사실 민주주의는 그런 것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도 그저 노예들의 노동에 기생한 자유민들의 민주주의였으니까. 마찬가지로 부산대의 교수회와 직원협의회와 총학도 그저 강사들을 시민에서 배제했을 뿐이다. 국회에서 강사에게 교원의 지위를 부여하고, 교원의 합의를 교원, 직원, 학생의 합의로 법을 개정한 취지는 대학에서 이렇게 해석되었다. 그리고 이를 주도한 곳은 부산대 교수회였다.

전임교원들은 강사를 자신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학생들도 그러한가? 부산대 총학은 총장 직선제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고 고현철 교수 추모식에서 총추위의 민주적 구성을 촉구하면서 시위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말한 ‘민주적 구성’에 자신들을 가르치는 대학 강사들은 없었다. 전임교원들이 강사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거,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학생들은? 그들에게도 강사는 무시하고 차별받아야 할 존재인가? 부산대 총학은 강사한테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은 합의안에 동의하지 않았어야 했다. 교수회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선생인 강사들의 선거권이 부여되지 않은 합의서에 서명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되었다. 학생들을 그렇게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어쨌건 학생들한테는 강사건 전임교원이건 모두 자신들의 선생이니까. 전임교원들이 자신들조차 존중하지 않는 강사를 학생들에게 존중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학생들이 그냥 "기간제 주제에, 니 딴 게 감히 선생 대접 받으려고?" 소리치겠는가? 

학생들을 그렇게 망가뜨리고도 부산대를 교육기관이라고, 자신들을 교육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부산대 교수회장은 “이번 합의는 지역대학의 위기 타결을 위해 대학 구성원들이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부가 시행하는 글로컬 사업 선정 등 우리 대학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각 구성원들이 서로의 주장과 요구를 양보한 대승적인 차원의 결과”라고 말했다고 한다. 총학은 이번 합의로 이전의 3.2%에서 7.7%를 얻었다. 4년 전 3.2%일 때 부산대 총학은 1인 1표를 요구하며 선거를 보이콧했다. 교수회와 직원협의회와 총학은 모두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 열심이었고, 각자 자기 지분을 챙기고 떠났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강사는 그저 한갓된 노예에 불과했다. 누군가에게는 참담한 일이 그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대학의 총장은 대학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교육, 연구, 학사 등 대학의 전반적인 운영에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총장은 교수의 대표자가 아니다. 총장을 교원, 직원, 학생의 합의로 선출하라는 것은 대학의 자율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왜 교수는 1인 1표이고, 나머지 구성원은 그러지 못하는가? 심지어 강사는 교원인데도 선거권조차 갖지 못하는가? 대학은 이 물음들에 답해야 한다. 모든 구성원에게 1인 1표의 선거권을 부여할 것인가, 직무와 인원에 따라 부여할 것인가, 어느 정도의 비율로 부여할 것인가를 논의했어야 했다. 

그런 일을 해야 하는 곳이 교수회다. 총장 선거가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들은 이 일을 하지 않았고, 법정 시한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협의를 시작하여, 시한을 지켜야 하니 따르라고 압박한 것이 그들이 한 일이다. 전임교원들 각자는 제 생각이 있었겠지만, 그 생각들을 제도로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들에게 이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그들은 총장을 선출하는 제도를 만듦에 있어 자율적이지 못했고 자주적이지 못했다. 그들은 법으로 정해진 총장 선출 시한에 타율적이었을 뿐이다. 이것이 우리 대학의 슬픈 초상화다.

 

이상룡 논설위원/부산대학교·철학

부산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사. 부산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대학 개혁, 특히 비정규교수의 노동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비정규교수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다. 「의사소통과 일치」, 「해명·치료·언어투쟁」, 「비트겐슈타인 삶의 방식의 변경」, 「대학 구조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벼랑 끝 비정규교수」, 「대학의 신자유주의적 고용구조」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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