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 비판적 사유의 의미를 조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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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 비판적 사유의 의미를 조명하기
  • 한상원 충북대·철학
  • 승인 2023.10.15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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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계몽의 변증법 함께 읽기: 비판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구원하는가』 (한상원 지음, 에디스코, 288쪽, 2023.09)

 

우리는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극단적인 경제적 불평등과 불안정이 대다수 사람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으며, 이러한 양극화에 대한 정치적 해결책의 부재는 민주주의 정치의 퇴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아가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로 인한 혐오정서의 분출, 저항 이데올로기의 위축과 종교 근본주의의 부상, 절멸적 수준으로 확산되기 직전에 달한 전쟁과 폭력의 위기, 또 인간과 생명체 전체를 위협하는 기후 온난화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사회는 총체적 위기의 시대로 진단할 수 있다.

위기의 시대는 비판을 요청한다. 위기(crisis, Krise)와 비판(criticism, Kritik)이라는 단어의 어원인 고대 그리스어 κρίνειν(krinein)이 ‘선택하다, 나누다, 결정하다’는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나의 위기는 특정한 시대를 가르는 분기점인 셈이다. 즉 이러한 위기가 거대한 파국 내지 사회 세력 전체의 공멸로 이어질지 아니면 위기의 극복과 변화, 도약으로 이어질지를 결정짓는 것은 비판의 역할이다. 이처럼 위기에 대한 의식과 비판적 사유의 분리될 수 없는 연결지점을 모색한 것이 이른바 비판이론(critical theory)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의 비판이론을 대표하는 저작인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 역시 나치즘과 세계대전, 반유대주의, 나아가 자연지배에 기반을 둔 인간사 전체의 파국을 향한 노정이라는 위기에 대한 비판의 초석을 놓으려는 기획의 일환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이 고전적 저작은 또 다른 민주주의와 인간사 전체의 위기를 경험하는 우리 시대에 그 현재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이 저작은 매우 압축적이고 난해한 서술로 인해 처음 접근하는 독자가 이해하기 몹시 어렵다. 또 이 책은 숱한 오해를 자아내면서 ‘탈출구 없는 이론’이라는 악명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따라서 필자는 이 책을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하면서도 이 책의 메시지를 오늘날의 현주소에 맞게 현재화하는 독해를 제시하는 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고 그 결과가 에디스코에서 발행된 신간 『계몽의 변증법 함께 읽기』로 출간되었다.

『계몽의 변증법 함께 읽기』는 올해 초 1월과 2월에 서교동에 위치한 필로버스(Philoverse)에서 이뤄진 『계몽의 변증법』 강독 세미나 수업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매주 『계몽의 변증법』의 각 챕터를 함께 읽고 강독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세미나에서 필자가 수행한 강의 내용의 녹취를 토대로 이 책이 저술되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테오도어 아도르노 광장

이 책은 두 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이 담고 있는 개념들과 내용에 관해 쉽고 명료하게 설명하는 한편, 이를 그것이 포함된 이론적 짜임관계 속에서 풀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사용하는 개념이나 사유의 의미나 특징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그러한 개념이나 사유가 도출되는 이론사적 맥락, 여러 이론가들의 상호관계, 역사적 배경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그 의미를 드러내는 전략을 취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아도르노를 비롯해 초기 비판이론가들의 사유는 언제나 그것이 다른 철학적 사유들, 예컨대 칸트, 헤겔, 맑스, 프로이트, 벤야민 등과 맺는 관계 속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계몽의 변증법』을 비롯해 아도르노나 초기 비판이론가들의 저작들은 그토록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철학이나 인문학을 전공하는 전문 연구자가 아닌 평범한 독자들에게 이것은 무리한 요구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필자는 이 책에서 그러한 독자들이 짊어져야 하는 과도한 부담을 함께 지고자 했다. 이것이 이 책의 제목이 『계몽의 변증법 함께 읽기』로 지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둘째로 이 책에는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고전적 텍스트의 현재화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들이 담겨 있다. 『계몽의 변증법』은 이미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생존해 있던 당대에서부터 이 책이 탈출구 없는 이론이며 지나치게 염세적인 저작이므로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척도를 제공해줄 수 없다는 반론에 직면한다. 그리하여 이 책이 ‘낡은’ 텍스트가 아닌가 하는 비판과 의구심은 오늘날까지 이 고전적 저작에 대한 충실한 해석을 방해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의 책 『계몽의 변증법 함께 읽기』는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고전적 텍스트가 지니는 현재적인 의미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였다. 특히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여러 사회적 현실 속에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제시하는 사유의 모델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독자적인 해석을 통해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과제로 설정되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현대 사회의 어떤 측면들을 겨냥하고 있는가?

아마도 『계몽의 변증법』에 제시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사유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진단,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정상성’에 내재한 파시즘의 ‘야만’에 관한 냉철한 시선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20세기 전반기의 현실 속에서 저자들이 분석하는 ‘계몽의 실패’ 혹은 ‘계몽의 신화로의 전도’라는 명제들은 오늘날 ‘탈진실’과 ‘반지성주의’라는 이름으로 출현하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대한 분석, 또 정치의 권위주의화라는 흐름을 분석하는 데 유익한 관점을 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공포라는 정념이 어떻게 주체로 하여금 자발적 예속을 욕망하게 하는가에 관한 비판적 통찰이다. 

                1947년 계몽의 변증법 초판

또 ‘자기보존을 위한 자기부정’이라는 저자들의 테제는 현대 사회의 능력주의 담론이 지닌 자기파괴적 귀결이라는 맥락에서 사유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그중에도 특히 청년세대들은 살아남기 위해 타자와의 경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도태되어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는 두려움과 압박감에 사로잡혀 있다. 사회가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단절감 속에서 오직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자기보존을 이뤄야 한다는 냉혹한 논리는 타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정당화로 이어진다. 

오늘날 우리는 ‘공정한 불평등’의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오로지 능력 경쟁만이 공정한 게임의 룰이고, 차별을 제거하거나 불평등을 고치기 위한 사회적 개입은 이 공정을 저해하는 ‘불공정’이라는 논리가 작동한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의 능력을 통해서만 생존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의 논리는 모든 사람을 무한경쟁의 압력 속에 끝없는 불안정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현대 사회에서 자기보존의 추구가 자기부정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진단에 부합한다.

이러한 진단은 오늘날의 혐오 확산에 대한 분석과도 연결되어 있다. 오늘날의 혐오는 공포의 정념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커다란 공포에 사로잡힌 개인들이 그들이 마주한 이 공포를 극복할 집합적인 역량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개인은 철저한 고립 속에서 그러한 공포를 해결하기 위해 타자에게 공포를 투사(projection)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약자들은 이제 분노의 대상이 되어 낙인찍기와 희생양 삼기의 표적이 된다. 이처럼 공포의 원인을 타자에게 전가하고 타자에게 분노의 에너지를 분출하면서 주체는 공포의 대상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환상 속에 안도감을 찾으려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타자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는 권위주의적 지도자와의 일체감 역시 커지게 된다. 그 가장 극단적이고 대표적인 사례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직접 경험했던 독일의 나치즘이다. 그리고 오늘날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성적·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정서의 확산, 그리고 이와 결부된 새로운 권위주의 정치의 부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러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분석이 드러내는 유의미한 지점을 보여준다.

나아가 기후위기와 기후재난의 시대에, 이 저작이 제출하고 있는 자연지배 비판과 ‘자연과의 화해’에 관한 전망이 지닌 의미 역시 재사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와 억압이 인간 사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지배와 억압의 산물이라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통찰, 곧 자연지배는 사회적 지배의 산물이며 그 역도 마찬가지라는 식으로 자연지배와 사회적 지배의 상호관계를 조명한 그들의 시선은 오늘날 이윤 중심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어떻게 지구 생명체에 대한 절멸적 위기와 맞닿아 있는가를 조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오늘날 고전의 반열에 오른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텍스트가 지닌 현재적 의미를 풀어냄으로써 독자의 성찰을 촉구한다는 측면에서도 필자는 이 책의 제목에 담긴 ‘함께 읽기’라는 표현의 의미가 드러나길 소망한다. 또한 이러한 ‘함께 읽기’의 실천이 우리 시대의 위기와 파국에 대한 비판적 대결의 장을 형성하길 희망한다. 이 책의 부제인 ‘비판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구원하는가’는 바로 이러한 필자의 바람을 담고 있다.

 

한상원 충북대·철학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독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아도르노의 정치철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사회·정치철학의 여러 주제들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아우구스티누스, 맑스, 벤야민. 역사철학과 세속화에 관한 성찰』이 있으며, 역서로 『공동체의 이론들』(공역), 『아도르노, 사유의 모티브들』, 『역사와 자유의식: 헤겔과 맑스의 자유의 변증법』이 있다. 『현대 정치철학의 네 가지 흐름』, 『근대 사회정치철학의 테제들』, 『아도르노와의 만남』, 『왜 지금 다시 마르크스인가』, 『팬데믹 이후의 시민권을 상상하다』 등 여러 책을 공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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