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에 서사를 빼앗긴 현시대에 대한 통렬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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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에 서사를 빼앗긴 현시대에 대한 통렬한 비판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10.09 0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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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사의 위기: 스토리 중독 사회는 어떻게 도래했는가? | 한병철 지음 | 최지수 옮김 | 다산초당 | 144쪽

 

『피로사회』로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이번에는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슈만 좇느라 정작 자기의 생각으로부터 멀어져 버린 스토리 중독 사회를 고발한다.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서사’와 ‘스토리’다. 나만의 생각과 맥락이 서사라면, 반짝하고 사라져 버리는 뉴스와 정보들은 스토리다. 고유한 이야기를 잃은 사회, 내 생각과 느낌을 말하지 못하고 입력한 정보를 앵무새처럼 내뱉는 사회의 끝은 서사 없는 ‘텅 빈 삶’이다.

오늘날 우리는 혼자 있을 때도, 다른 사람을 만나 대화할 때도 쉴 새 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실시간 뉴스를 확인하고 유튜브와 SNS로 짧은 영상과 사진을 읽어 들인다. 길고 느린 호흡으로 내면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시간은 사실상 없다. 온종일 자극적인 스토리를 소비하느라 바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스토리에 자기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빼앗긴 현시대를 ‘서사의 위기’라고 진단한다. 반짝하고 사라질 스토리는 그 어떤 삶의 방향도, 의미도 제시하지 못하기에 서사의 위기는 삶의 위기로 직결된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은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이동하며 사는 존재가 아니다. 탄생과 죽음 사이의 삶 전체를 연결하며 자기만의 맥락으로 나아갈 때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이야기만이 인생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만 중요하게 만드는 스토리에 중독될수록 깊은 허무에 빠지는 이유다. ‘서사의 위기’는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겪고 있는 현시대의 문제다. 

저자는 철학자 발터 벤야민, 한나 아렌트, 테오도르 아도르노부터 작가 게오르크 뷔히너, 베르톨트 브레히트, 폴 마르, 미하엘 엔데까지 다채롭게 인용하며 서사의 의미를 해석한다. 나아가 서사의 회복만이 예측 불가능한 세계에서 불안에 떨지 않고 사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남들 다 하는 대로 공허하게 끌려가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맥락으로 고유한 인생,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삶이다. 저자 특유의 깊고 명료한 철학적 사유는,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우리들이 내면의 서사를 회복해 삶의 가치를 온전히 음미하도록 이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토리에 중독된 현대인은 삶의 주체가 아니라 상품의 소비자로 전락한다. 기업에서는 그 자체로 가치 없는 사물에 스토리를 부여해 우리가 ‘상품’을 구매하도록 자극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현상에 ‘스토리셀링(Storyselling)’이라고 이름 붙인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현대인이 억압도, 저항도 없는 스마트한 지배체계에서 자기 삶을 SNS에 게시하고 공유하며 스토리텔링하도록 조종당하고 있다고 짚어낸다. 아름다운 꽃을 봐도 감동을 온전히 느끼며 내면으로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재빨리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며 자기 자신을 정보화하고 다른 사람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 스토리셀링하며, 언제든 소비되고 사라져도 상관없는 정보로 한없이 전락하고 있다.

의미 없이 이슈에서 이슈로 이동하며 업데이트 강박에 시달리는 정보 사냥꾼의 삶은 공허하다. 경험과 생각들이 차곡차곡 쌓이지 못하고 정보로 그저 나열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하기보다 새로운 정보를 공유하는 데만 집중하기에, 인간관계도 공동체 대신 커뮤니티를 이루는 데 그친다. 자기만의 역사를 잃고 우연성에 휩싸인 채 폭풍우 한가운데서 부유한다.

어떻게 하면 서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저자는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를 예로 들며 ‘경청’을 제안한다. 소설에서 주인공 모모는 상대방의 말을 사려 깊게 들어줌으로써 스스로 이야기하도록 이끈다. 이를 통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고 심지어 사랑받는다는 느낌까지 받게 한다. 오로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 서사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회복된 서사는 아픔을 치유한다. 저자는 발터 벤야민과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인용하며 치유의 힘을 다시 강조한다. “환자의 병은 의사에게 증상을 이야기하는 데서 치유가 시작”되며(발터 벤야민), “모든 슬픔은 이야기에 담거나 이야기로 해낼 수 있다면 견딜 수 있다”(한나 아렌트). 안타깝게도 현대인에게는 이야기를 경청할 시간과 인내심이 없다.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빠르게 흡수해 결과를 내야 하는 효율의 세계는, 길고 느리게 펼쳐지는 서사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서사 없는 삶에 행복은 없다. 오늘은 그저 어제에 이어지는 날이며 인생을 의미 있게 하는 어떠한 서사도 일어나지 않는 생존의 연속일 뿐이다. 누구도 이런 삶을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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