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교체가 있고 없어 … 한일고금비교론 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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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교체가 있고 없어 … 한일고금비교론 ⑦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3.10.08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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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

일본학자 宮嶋博史(미야지마 히로시)는 일본 東京大學(토쿄다이카쿠, 동경대학) 교수였다가 한국으로 와서 성균관대학 한국사 연구교수가 되었다. 알찬 논저를 계속 내서, 두 나라의 학계는 물론 일반인도 식견을 넓힐 수 있게 한다. 한일의 화합과 협력에 크게 기여한다. 

낸 책 여럿 가운데 박은영 옮김, <한중일 비교통사, 역사상의 재정립이 필요한 때>(2020)가 있다. 한일 비교에서 더 나아가 동아시아사 이해의 시야를 여는 시도까지 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그 한 대목에서 왕조교체를 중국과 한국에서는 하고 일본에서는 하지 않은 차이점을 비교해 고찰했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으레 해온 왕조교체가 일본에는 없어, “천황은 최고권력자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렸지만, 최고권위자로서는 살아남고”, “권력은 점차 커졌지만 무사 스스로 왕권을 획득하는 일은 없었다.” “이른바 萬世一系(만세일계)라는 언설은 이러한 사태를 사후약방문 격으로 합리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그 이유는 중국과의 책봉관계가 지속되지 않아 “왕권과 정권의 분화라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판단이 미흡하다. 월남까지 포함시켜, 비교론을 더욱 분명하게 해야 한다. 중국과 한국은 왕조를 교체하면서, 국호도 바꾸어 漢(한)ㆍ唐(당)ㆍ宋(송), 新羅(신라)ㆍ高麗(고려)ㆍ朝鮮(조선)이라고 했다. 월남은 국호는 그대로 두고, 왕조만 교체했다. 왕의 성을 들어, 李(리)ㆍ陳(쩐)ㆍ黎(레)라고 역대왕조를 명명한다. 일본에서는 국호와 함께 왕조라고 할 것도 그대로 두고, 정권을 장악한 통치자만 교체되었다. 다른 적합한 말이 없어 정권의 소재지를 들어 平安(헤이안)ㆍ鎌倉(카마쿠라)ㆍ江戶(에도)시대를 구분한다. 

일본에는 왕조교체가 없는 이유를 말한 인과판단은 사실에 근거를 두지 않아 미흡한 정도가 아니고 잘못되었다. 일본의 지배자 將軍(쇼군)은 天子(천자)의 책봉을 받고 日本國王(일본국왕)이 되어, 이 호칭을 대외관계에 일제히 사용했다. 국내에서는 將軍이라고 하고 밖으로는 日本國王이라고 하는 것이, 국내에서도 王인 朝鮮國王(조선국왕), 국내에서는 皇帝(황제)라고 하는 安南國王(안남국왕)과 다를 바 없었다. 칸(khan)이라고 하는 북방민족 통치자도 책봉을 받으면 國王이라고 했다. 

통치자의 국내 호칭은 각기 다르고, 책봉을 받고 얻은 대외 호칭은 모두 國王으로 통일되었다. 이것이 책봉체제의 정상적인 모습이다. 다른 문명권의 책봉체제도 이와 기본적으로 같은 양상을 보여주었다. 공동문어와 책봉체제 시대의 중세문명은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욱 두드러졌다. 

그러다가 江戶시대의 將軍은 선행 통치자가 전쟁을 일으킨 덤터기를 쓰고 책봉을 받지 못했다. 무자격자가 日本國王이라고 할 수 없어 日本國大君(니혼코쿠타이쿤, 일본국대군)이라는 사칭을 외교에 사용하는 편법을 택했다. 이에 관해 밖에서는 탈 잡지 않았는데, ‘非整合’(비정합) 시비를 안에서 스스로 일으켰다. 日本國王이라는 말을 잠깐 쓰다가 그만두고, 유학자들을 동원해 大君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중국 고대의 전례가 있어 잘못이 아니라는 결론을 가까스로 내렸다. (中村榮孝, <外交史上の德川幕府-大君外交體制の成立とのそ終末>, 1979) 

通信使(통신사)가 일본에 가서 “朝鮮國王李焞 奉書日本國大君殿下”(조선국왕 이돈이 일본국대군 전하께 글을 올립니다)라고 시작되는 國書(국서)를 전하면, “日本國源吉宗 敬復朝鮮國王殿下”(일본국 겐요시무네가 조선국왕께 존경하며 응답합니다)라는 말을 앞세운 답서를 주었다. “日本國大君源吉宗”이라고 하지 않은 것은 ‘大君’이라는 호칭이 떳떳하지 못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서양 각국과 외교를 시작할 때 ‘大君’을 ‘king’이라고 하지 못하고, ‘Tycoon’, ‘Grand Souverain’ 등 상대방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로 옮긴 것도 알아야 한다. 

인과판단은 잘못되었으므로, 일본에는 왕조교체가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고찰해야 한다. 가치판단은 하지 않아 논의가 미완에 그쳤으므로, 힘써 보완해야 한다. 흡족한 결과를 얻으려면, 일본의 장기인 실증사학은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심오한 역사철학으로 고금을 관통하는 통찰력을 갖추어야 한다. 왕조교체 유무는 우연히 생긴 단순한 사실이 아니고, 역동적인 역사 창조가 이루어지고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말해주는 줄 알아야 한다.

天皇은 고대 政敎(정교) 일치의 수장이다. 정치를 장악하는 지배자가 나타나 중세로 들어섰으나, 종교까지 차지할 수 없다고 여기고 종교의 수장은 그대로 두었다. 권력을 武(무)로 장악하고 文(문)의 능력은 갖추지 못한 후진성 탓에 파행적인 변화를 보였다. 이것이 문명권 주변부의 불운임을 알아차려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자부심의 근거로 삼아왔다. 오늘날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고대의 종교가 청산되지 않고 神道(신토우, 신도)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중세화도 근대화도 미흡하게 되었다. 불교를 받아들였어도 사고방식을 쇄신하지 못하고, 神佛習合(신부쓰시유고우, 신불습합)을 엉거주춤하게 했다. <元亨釋書>(겐코우시야쿠시오, 원형석서)라는 고승전이 재래 귀신들과의 합숙소이다. 유학에 힘쓰고 성리학을 익힌다면서 神佛도 섬겼다. 

근대에 서양에서 온갖 좋은 것들을 다 받아들이고도, 天皇(텐노, 천황)을 계속 받든다. 국수주의와 수입사조가 이번에는 너무 달라 복합되지 않고, 둘 다 극단화된 형태로 양립하는 기이한 나라가 되었다. 국수주의는 문을 닫고 있어 공기가 통하지 못하는 탓에 야위어간다. 수입사조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변두리에 머물러 있고, 제한된 범위의 특수한 효용이나 보여준다. 이에 관해 많은 말을 할 수 있으나, 내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직접 체험한 사실을 먼저 든다.  

東京大學 교양학부와 문학부에 각기 초청되어 가서, 기이한 체험을 했다. 문학부의 일본문학과와 교양학부의 비교문학과는 성향이 아주 다를 뿐만 아니라, 서로 원수진 적국인 듯이 소통이 전연 없는 것을 알아차리고 크게 놀랐다. 대외적인 관심이 있는 비교문학과 쪽에서 서울대학은 어떤가 물어, 즉시 대답했다. 한국문학과 비교문학을 한 학과에서 함께 다루고, 둘이 하나이게 하는 작업을 내가 열심히 한다고 했다. 

세계대전을 일으켰다가 패망했어도 천황이 없어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하는 것만큼 사실은 불행하다. 박진우 편저, <21세기 천황제와 일본, 일본 지식인과의 대담>(2006)이라는 책이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 9인과 대담해 천황제에 대해 어느 정도 회의적이거나 비판적인 말을 들을 수 있을 따름이고, 그 이상은 아니었다. 관심이 흐려지고 있는 것에 기대를 걸기나 했다. 대안 제시는 누구고 하지 않았으며, 할 수도 없다. 한국에서 방향을 분명하게 하면 일본에게도 힘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맨 뒤의 대담자 鈴木正幸(스스키마사유키)라는 일본근대정치사 교수는 天皇이 “이상적인 가정생활 아이덴티티의 중핵”이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했다. 아래에다 天皇 가족이 설날 단란하게 모여 앉은 사진을 내놓고, “맨 오른쪽의 공주는 평민과 결혼하면서 황적에서 이탈했다”는 설명을 달았다. 공주는 평민이 되었어도 부모를 만나러 가지만, 원래부터 평민인 사위는 동행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가? 이런 것이 이상적인 가정생활이어서, “아이덴티티의 중핵”이라고 하는가? 말 같지 않은 말을 늘어놓아 혼란을 일으킨다. 문제의식을 마비하고, 판단을 중단시킨다. 

天皇이 일본정신의 불변의 구심체라는 생각이 흐려진다고 해도 안심할 것은 아니다. 저해 작용을 멈추지 않고 구심체에 대한 오해를 남겨, 차등론에서 대등론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폐해를 끼친다. 그 때문에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원리인 철학을 스스로 정립하지 못한다. 일본에 창조학이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한일 학문의 역전>(2023)이라는 책에서, 이제 한일 학문은 우열을 다투지 말고 협력하자고 했다. 對等生克論(대등생극론)을 공유하고 함께 나아가자고 했다. 불변의 구심체는 있을 수 없고, 공존하는 것들은 무엇이든지 대등한 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것이 선결 과제이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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