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에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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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에 길이 있다
  • 남정희 대전대·국문학
  • 승인 2023.10.0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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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직설]

나는 요즘 노조 생각만 하며 사는 것 같다. 23년 단체협약 교섭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노조의 요구안을 만들고, 전체 교수에게 교섭 시작을 알리는 메일을 쓰고, 교섭 회의를 하고, 회의 후에는 회의록을 작성한다. 사측에는 직원인 서기가 있지만, 노조에서는 교수들이 녹음기를 틀어가며 작성한다. 한 사람이 먼저 작성하고 나면, 발언자들이 자기의 발언취지가 정확하게 요약되었는지 검토하여 사측에 넘긴다. 사측에서 수정요구를 해오면 또 녹음기를 틀어가며 검토한 후 수정한다. 이 모든 과정은 회의를 통해 합의해야 한다. 

이뿐이랴. 재판정에도 참석해야 한다. 22년 임금협약인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재정에 불복하여 사측에서 행정소송을 제기하였고, 중재의 효력을 정지하는 집행정지를 신청하여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노조위원장이 보조참가인으로 참석한다. 학교에서는 변호사를 선임하여 진행하지만, 노조에는 돈이 없으므로 위원장이 직접 한다. 노조 역사가 짧아 법 지식이 부족하여 시행착오를 거친다.

집행정지는 1심에서 기각되면 중재의 효력이 있는데도, 모르고 조합원 명단을 제출하지 않았다. 집행정지 1심이 기각된 5월 말에서 석 달이 지나 8월 말에 2심이 진행되었다. 학교 변호사는 노조가 명단을 제출하지 않아 돈을 주지 못한다고 말하고, 판사는 1심 후에 왜 명단을 제출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위원장은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면 제출하려고 했다고 답한다. 재판정에서 돌아와 조합원 명단을 제출한다. 학교에서는 또 가입 일자를 왜 알려 주지 않느냐고 공문을 보내온다. 노조는 왜 가입 일자를 알려달라고 하느냐며, 늦게 가입하였더라도 22년 3월부터 소급하여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니 소급하여 지급하라고 요구한다. 이 사실을 알아내는 데도 며칠이 흘렀고, 여러 인맥을 동원하였다. 학교에서는 법률 자문을 받아보겠다며 시간을 끌 것이므로, 노조는 빨리 지급받기 위해 조합원의 가입 일자를 제출한다. 이런 일들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노조 임원들에게 근로시간을 면제해 주어야 한다.

이뿐이겠는가? 틈틈이 교수들을 만나 노조 가입을 권유한다. 복도에서 우연히 만나 오랜만이라며 수인사를 나눈 후에, 좀 친절한 교수들에게 나는 대뜸 노조 가입을 들이민다. 교수들은 대부분 놀라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멀어져 간다. 집안에 노조하다 망가진 사람이 있어 자기 집안에선 노조는 절대 안 한다는 교수가 있다. 학교가 어려운데 노조가 권익을 찾으면 되겠느냐고 반문하는 교수도 있다. 내게 잠시 설렘을 준 교수들도 있었다. 시원스럽게 “가입해야죠.”라며 응답하는 교수들이다. 나는 얼른 가입원서를 메일로 보낸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 가입원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아, 이러다가 나는 교수들에게 마주칠까 겁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어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해본다. 하지만 금세 잊어버린다. 며칠 전에는 학교 근처 식당에서 10여 년 만에 한 교수를 만났다. 전에는 의기투합하던 분인데 어쩌다보니 격조해져서 정말 반가웠다. 게다가 먼저 그분이 나를 알아보고 혼자 왔느냐고 웃는다. 반가운 수인사를 나눈 후에 나도 모르게 불쑥 노조에 가입하라고 말해 버렸다. 그분은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아 조용히 살고 싶다 하고는, 얼굴을 돌려 일행과 대화를 나누었다. 

이뿐이라면 그래도 괜찮다. 탈퇴하겠다는 조합원이 나올 때는 안타깝다. 학교에서 임금협약 결과를 전체 교수가 아니라 조합원에게만 적용한다며 조합원 명단을 요구한 이후, 탈퇴 조합원이 생겨났다. 탈퇴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너무 힘들고 속상하여 노조에 가입했는데 별 성과가 없어 실망했단다. 노조가 창립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실망을? 같이 가입한 교수가 탈퇴하여 자기도 탈퇴한다는 교수도 있었다. 조합원인 걸 알고 나서 학교에서 보직을 계속 주지 않을까봐, 이직을 생각하며 다른 학교에 원서를 내고 있는데 조합원임이 알려지면 이직이 안 될까봐, 승진 대상자의 50%만 승진시키는데 조합원임을 알면 승진시켜 주지 않을까봐, 조합원이 있는 학과는 구조조정에서 불리할까봐……. 

나는 오늘도 노조 생각뿐이다. 우는 아이한테 젖 준다는 말이 있듯이, 요구하고 저항하지 않는데 자본이 권익을 나누어 주겠는가. 한 주에 20시간 넘게 강의하는 교수들도 있다. 교수 충원을 해 주지 않으니 남은 교수들이 그 수업을 나누어 맡은 것이다. 건강도 돌보지 않고 가족도 뿌리치며 학교를 위하여 각종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교수들도 있다. 이렇게 열심히 학교 일을 하면 정년교원으로 전환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일까? 물론 정년으로 전환된 소수의 행운아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차별적인 임용제도를 근본적으로 없애는 길은 바로 교수노조이다. 노조가 있는데 왜 그 길을 외면하는가? 특히 저임금과 과노동, 차별에 시달리는 비정년 교수들에게 묻는다. 우리보다 먼저 비정년교원 제도를 도입했던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마침내 비정년 제도를 없앤 학교가 있다고 한다. 바로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이 그렇고 밴쿠버대학이 그렇다. 교수노조의 단체협약과 임금협약으로 교수의 권익을 개선해 나아가다가 수십 년 만에 이루어냈다고 한다! 현재로선 노조가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남정희 대전대·국문학

대전대학교 혜화리버럴아츠칼리지 교수. 글쓰기 수업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현재 대전대교수노조위원장과 전국교수노동조합 대전대지회장을 겸하고 있으며, 전국교수노동조합 비정년트랙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노조를 통해 대학에서 비정년교수 제도를 철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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