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의 현학(顯學), 묵자의 철학
상태바
춘추전국시대의 현학(顯學), 묵자의 철학
  • 민홍석(閔弘錫) 충북대·동양철학
  • 승인 2023.10.08 14: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옮긴이의 말_ 『묵자의 철학: 묵자의 삶의 자취와 활동 그리고 사상』 (정걸문·장천 지음, 민홍석 옮김, 일파소, 236쪽, 2023.08)

 

1.

묵자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사상가로 당시에 공자의 유가(儒家)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었던 사상가였다. 묵자의 명성은 공자만큼 높았고, 묵자의 가르침은 공자를 능가하여 서민 대중의 큰 호응을 얻었으며 묵자 사후에도 오랫동안 그 위세를 유지하였다. 

법가(法家)인 한비자(韓非子)는 유가와 묵가를 현학(顯學)⁽¹⁾이라 지칭하며 당대 가장 이름을 떨친 학문이라 하였고, 유가(儒家)인 맹자(孟子)도 말하길 “세상에 묵자(墨子)와 양주(楊朱)의 학문이 가득해서 천하의 말이 양주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묵자에게로 돌아간다”⁽²⁾고 하였다. 묵자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秦)나라까지 이어진다. “공자와 묵자의 제자가 천하에 가득 찼다.”⁽³⁾ “공자와 묵자의 후학 중에 천하에 이름을 날리고 영달한 사람이 많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⁴⁾라고 『여씨춘추(呂氏春秋)』는 언급하고 있다. 

이러했던 묵가와 묵자의 철학은 진(秦)나라의 천하 통일과 멸망 그리고 한(漢)나라가 들어서면서 역사 속에서 갑작스레 사라진다. 한대(漢代)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조차도 『사기열전(史記列傳)』에서 묵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24자로 짧게 서술하고 있다. “묵적(墨翟)은 송나라 대부로서 성을 방위하는 기술이 뛰어났고 절용을 주장하였다. 공자와 같은 시대 사람이라고도 하고 혹은 후세 사람이라고도 한다.(蓋墨翟, 宋之大夫, 善守禦, 爲節用. 或曰竝孔子時, 或曰在其後.)”⁽⁵⁾ 이것은 사마천이 활동했던 한대(漢代)에 이미 묵자에 관한 자료가 거의 사라졌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진한(秦漢) 이후 거의 2,000여 년 동안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비운을 겪는다. 춘추전국시대에 현학(顯學)이었던 묵자의 철학은 절학(絶學)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미스터리다. 묵자 철학의 기구한 운명이다. 

다만 묵자를 반대하는 유가인 맹자・순자 등과 도가(道家)인 장자 그리고 진한(秦漢) 시기의 『여씨춘추』, 『회남자』 등의 저술 속에서 단편적으로 묵자를 비평하는 글을 거의 유일한 자료로 하여 간접적으로 묵자를 이해하여 왔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묵자의 철학에 대해 여전히 낯설고 혼란스럽다. 

묵자의 철학이 오랫동안 방치되다 보니 묵자의 철학을 집약한 『묵자』라는 책은 많은 부분이 유실되어 53편만 전할 뿐이다. 그것도 17세기 초 명나라 때에 이르러서야 묵자의 글이 도교(道敎)의 경전 속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도교의 학자들이 자신들의 경전인 줄 알고 『묵자』의 글을 끼워 넣은 해프닝이었다. 

묵자 철학의 복귀는 청나라 필원(畢沅, 1730-1797)이 『묵자』를 정리하고 주해하면서 비로소 역사의 무대에 복귀한다. 그 뒤를 이어서 손이양(孫詒讓, 1848-1908), 양계초(梁啓超, 1873-1929), 호적(胡適, 1891-1962)과 같은 학자들의 저술을 통해 묵가의 사상이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으니, 근대에 이르러서야 묵자의 사상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평가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묵자의 연구가 깊지 못하고 묵자 철학의 핵심처에 대한 주장도 다양하다. 

이러한 험난한 과정 속에서 살아남은 묵자의 사상은 당대는 물론이고 후대에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묵가 철학은 당대에 유학과 쌍벽을 이룰 만큼 위세를 떨쳤기에, 당시의 제자백가들은 이러한 묵가의 철학을 비판하면서도 일정 부분 수용하였던 것이다. 맹자의 왕도정치, 그리고 『예기』의 대동사상, 법가의 정치론 등이 묵자의 영향을 받았고, 『묵자』가 도교의 경전에 숨어 있으면서 도교 이론의 형성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하였다. 그밖에 묵자의 반전평화주의 그리고 과학 사상 등은 묵가 소멸 이후에도 중국 역사 속에서 간단없이 그 힘을 발휘하였다. 

묵자의 사상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묵자를 알아야 공자, 맹자 등 유학 사상은 물론⁽⁶⁾, 노자·장자의 도가·도교 사상, 한비자의 법가 사상 등 다른 제자백가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의 사상은 중국뿐 아니라 동아시아 사상의 원천이다. 대부분의 동아시아 사상은 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제자백가들은 서로 경쟁을 하면서 독자적인 사상을 확립해 나가면서도 사실은 서로의 주장과 사상을 주고받는다. 비판을 하면서도 장점을 수용해 나갔던 것이다. 유가, 도가, 법가 등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대편에 서 있던 철학을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특히 묵가의 철학은 유학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했던 철학이다. 묵가 철학의 제대로 된 이해는 제자백가 철학 이해의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

묵자 철학의 전모(全貌)를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묵자』라는 책을 읽고자 하지만 만만치 않다. 적지 않은 분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묵자의 철학에 관한 해설서를 읽고자 한다. 그러나 어떤 책은 지나치게 전문적으로 다루어 일반 독자를 힘들게 하고, 또 어떤 책은 너무 간략하게 서술하여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우(愚)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읽기 적절한 분량이면서도 일반 독자도 쉽게 묵자의 철학을 조망(眺望)할 수 있는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간절하였다. 바로 본 번역서 『묵자의 철학』이 그러한 책이 아닌가 한다. 과문(寡聞)한 탓인지는 몰라도 국내의 묵자 관련 책 중에서 이렇게 묵자의 철학을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정리한 것을 본적이 없는 것 같다. 그것도 매우 적은 분량으로 말이다. 

이 번역서는 정걸문(郑杰文)·장천(张倩)의 저서 『墨子』(南京大學出版社, 2008)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책은 『중국사상가평전(中國思想家評傳)』 시리즈 중 한 권으로, 묵자. 공자, 노자 등 중국 역사상 뛰어난 사상가들을 일반인들에게 널리 소개하고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도록 편집된 책이다. 책의 분량이 매우 적고 그 내용도 간략한 ‘묵자 입문서’다. 그러나 묵자사상의 핵심 내용만을 모아놓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에 읽고 이해하기 좋은 책이다. 

14개의 장으로 나뉘어 방대한 묵자 철학의 요점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일일이 언급하고 있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묵가의 경제, 윤리, 군사, 종교, 교육, 정치, 인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다른 입문서나 전문서에서 보기 어려운 『묵경』에 대한 상세한 서술이 돋보인다. 또한 묵학의 탄생과 배경, 묵자의 삶의 자취, 묵가 후학 그리고 묵가의 흥망성쇠와 묵가의 영향까지 매우 꼼꼼하게 서술하고 있다. 묵자 사상을 조망하는 데 조금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 책은 ‘묵자 입문서’이지만 읽기가 만만치 않다. 묵자 전공자를 위한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인명이나 용어와 개념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서에 없는 각주를 적지 않게 달았다. 각주를 세심하게 읽는다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또한 『묵자』의 인용문은 가급적 『묵자』 원문을 찾아 각주 처리하였다. 한문(漢文)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묵자 사상의 이해를 돕기 위해 묵가 사상의 핵심인 소위 ‘묵학 10론’의 주요 내용의 일부를 원문과 함께 ‘부록’으로 실었다. ‘묵학 10론’은 묵자의 중심 사상이자 묵가의 체계적 이론으로, ‘상현(尙賢)’ 3편, ‘상동(尙同)’ 3편, ‘겸애(兼愛)’ 3편, ‘비공(非攻)’ 3편, ‘절용(節用)’ 2편, ‘절장(節葬)’ 1편, ‘천지(天志)’ 3편, ‘명귀(明鬼)’ 1편, ‘비악 (非樂)’ 1편, ‘비명(非命)’ 3편 등 23편에 담긴 묵학의 핵심 이론 10가지를 말한다. 함께 읽으면 『묵자』의 핵심 사상을 빠르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3.

동양고전 관련 서적을 번역하는 일은 거의 창작 수준의 노력과 어려움이 수반되는 지난한 작업이다. 고통스럽다. 그리고 출판된 책을 다시 읽어보니 오자와 어설픈 번역들이 눈에 들어온다. 창피하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그럼에도 이 작업은 나름 매력이 있다. 그것은 번역작업을 하면서 지은이의 사유를 들여다보며 함께할 수 있는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는 점이다. 이 즐거움은 새로운 것을 알고 깨닫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우리의 삶에서 깨달음이 주는 즐거움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 번역작업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달음의 의미와 그것이 주는 즐거움의 경지를 누려보았다. 고맙게 생각한다. 독자 여러분들도 부디 이 작은 책을 통하여 크고 많은 깨달음의 즐거움을 누리기 바란다.


(1) [『한비자』「현학」: 世之顯學, 儒墨也.]
(2) 『맹자』「등문공 하」: 楊朱墨翟之言, 盈天下, 天下之言, 不歸楊則歸墨.
(3) 『여씨춘추』「유도」: 孔墨之弟子從屬滿天下. 「당염」: 孔墨之後學顯榮于天下者衆矣, 不可勝數.
(4) 『여씨춘추』「당염」: 孔墨之後學顯榮于天下者衆矣, 不可勝數.
(5) 단지 24자에 불과할 정도로 이미 묵자와 그의 철학은 이미 한 대 초기에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6) 진한대(秦漢代) 이후 묵가 소멸의 이유는 분분하다. 묵가와 묵자의 철학이 천하를 통일한 권력자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묵가의 철학이 유가의 철학을 비판하고 반대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묵가의 철학은 공자의 유학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 달리 말하면 묵자의 철학은 유가 철학의 이론과 한계를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묵가의 철학은 유가의 비판, 유가와의 대립을 통해서 자신의 학설을 정리해 나갔던 것이다. 따라서 한대(漢代) 이후 유가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면서 유가의 학설에 반대하였던 묵가의 철학은 당연히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다른 한편 묵가의 철학이 근본적으로 유가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한대(漢代) 이후 자연스럽게 유가 속에 편입 소멸되었다. 이것이 묵자 철학과 유가 철학을 함께 공부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민홍석(閔弘錫) 충북대·동양철학
충남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침신대, 한남대, 충남대, 대전시민대학 등에서 강의를 하였고, 현재 충북대 평생교육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묵자 관련 논문으로 「묵자의 이상사회론」, 「묵자철학의 핵심처는 어디인가」, 「묵가와 도교의 관련성 연구」, 「맹자의 묵가 비판」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