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來不似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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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來不似春
  •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 승인 2020.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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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직설]

봄은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 개강을 했지만 학생들을 만날 수가 없다.
온라인으로 비대면 강의를 진행하라고 하지만, 새로운 기술에 익숙하지 못할 뿐 아니라 수업이 단순히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상호작용과 상승작용을 통한 탐구와 사색의 고양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적응하기 어려운 접근이다. 그렇다고 마냥 손놓고 있을 수도 없어서, 학생들에게 읽을 논문들을 지정하고, 읽고 얻은 주요한 통찰과 자신의 의견과 질문을 제시하라고 요청해 보았다.

그나마 나의 두서없는 수업을 여러 차례 수강해서 익숙한 고학년 학생들은 내 의도를 짐작하고 응답하면서 그럭저럭 수업이라고 진행하고 있으나, 내 수업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은 황당한 탓인지 거의 반응이 없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적과의 이 저강도 전쟁이 종결될 기미조차 없이 길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답답함은 더해진다. 물론 누구도 탓할 수 없는, 모두가 희생하고 연대하고 협력하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현장에서 ‘적’과 직접 싸우는 분들의 수고는 말할 것도 없고, 보통 사람조차도 감염되지 않는 것만큼이나 감염시키는 것을 조심하면서 우리 모두가 큰 혼란 없이 불안과 불편을 견뎌내고 있음에 감사한다.

그렇지만 이런 배려하고 연대하는 삶은 또 우리에게 얼마나 낯선 것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성공 신화’를 숭배하여, 경쟁하고 승리하고 자랑하면서, 아니 사실은 패배하고 자괴하고 분노하면서 살아오고, 또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는가. 그러다가 ‘위기’가 닥쳐오자 느닷없이 연대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얼굴 두껍게 말을 바꾸는 것은 아닌가.

단언컨대, 상황이 진정되면 우리 사회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능력과 경쟁과 성과를 강조하며 만인을 만인의 늑대로 만드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대학의 학생들에 대해서는 대학의 교육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이런 수업의 끝에 성적을 매길 것이다. 한 학기 동안 공부한 내용이 너무 미흡하지만, 또 이 미흡은 결코 학생들의 책임이 아니지만, 바로 그 때문에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며 엉거주춤 성적을, 게다가 교육부가 강요하고 대학들이 집행하는 ‘상대평가’ 제도에 따라, 차별적으로 부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성적은 배경과 맥락을 사상한 채 학생들의 평생의 증명으로 남을 것이다. 또 교수들은 이 미흡한 수업에 대해 학생들로부터 평가를 받고 그 허술한 평가를 근거로 차등의 성과급을 받을 것이다.

참으로, 이 상황에서 아프게 깨닫는 것은 총을 구입하고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사회로는 재난적 감염증에 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어느 나라의 수반은 시민들에게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했다던가. 유럽의 일부 나라들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경제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 병원, 의료산업, 항공 등 기반산업의 ‘국유화’를 추진한다는 보도는, 그 나라들이 ‘민영화’를 앞세워 공공성을 해체한 업보로 무방비적으로 대응하게 되었음을 자책하는 것 아닌가의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재난을 당하여 이제 각국의 정부들은 공적 자원을 동원하여 기업들 뿐 아니라 개인들도 지원하려고 나서고 있다.

그러므로 코로나 19는 지구적 규모의 감염증의 문제일 뿐 아니라 개인화된 삶의 방식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치열하게 저강도 ‘전투중’인 지금이야말로, 확진자와 사망자를 걱정하면서 하나가 된 지구에서의 삶의 방식이 어떠하며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성찰할 때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를 그리고 지구사회를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강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한국사회학회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주 연구 주제는 사회과학철학, 사회과학방법론, 그리고 사회이론이다. 저서로 『사회과학의 철학적 기초: 비판적 실재론의 접근』, 역서로 『맑스의 방법론』, 『경제,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과학으로서의 사회이론』, 『새로운 사회과학철학』, 『지구환경과 사회이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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