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탄생, 물결, 그리고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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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탄생, 물결, 그리고 변신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10.03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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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 | 이길상 지음 | 역사비평사 | 360쪽

 

이 책은 정통 커피역사서다. 아프리카에서 홍해를 건너와 아라비아반도 남쪽에 자생하던 커피나무의 열매,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밤새워 기도한 수피교도들의 종교적 열망, 여기에 중국에서 전해진 차 만드는 문화가 결합하여 ‘커피’라는 음료가 극적으로 탄생한 과정이 세계사 속에서 펼쳐진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커피의 탄생과 성장, 재배, 산업화뿐만 아니라 커피와 관련된 역사와 문화까지 커피의 세계사를 한국인의 시각에서 다룬다. 이를 위해 저자는 먼저 오리엔탈리즘에 젖어 있는 서양인들의 고의적 실수를 바로잡으려고 했다. 커피의 기원과 역사를 가장 심하게 왜곡시킨 사람은 『아라비안나이트』 작가로 유명한 프랑스인 앙투앙 갈랑이다. 그는 「커피의 기원과 발전」이라는 번역 논문을 발표했고, 유럽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 논문은 의도적 사실 왜곡으로 가득했다. 갈랑은 커피의 기원을 예멘의 이슬람 수피교도들이 아닌 기독교 국가인 에티오피아와 연결 지으려 애썼는데, 커피의 역사를 오염시킨 이 같은 갈랑의 주장에 대해 저자는 조목조목 비판해나간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커피세계사다. 프랑스혁명, 미국독립전쟁과 남북전쟁, 나폴레옹전쟁, 산업혁명, 두 차례의 세계대전, 1930년대 대공황 등 역사의 굽이굽이 속에 커피가 함께한 역사, 커피가 변화시킨 역사가 서술된다.

우선, 미국 대통령 링컨과 커피 이야기. 링컨은 과묵했는데 아내 메리는 천성적으로 잔소리가 아주 심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잔소리가 통하지 않으면 장작, 빗자루, 책, 토마토를 날렸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커피를 앞에 놓고 메리의 잔소리가 시작됐고, 링컨은 묵묵부답이었다. 화가 난 메리는 결국 앞에 있는 커피를 링컨의 얼굴에 뿌렸다. 바로 집을 뛰쳐나온 링컨은 순회재판의 변호사가 되어 재판이 열리는 여러 도시를 순회했고, 이름이 널리 알려져 마침내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이긴 결정적 요인으로 커피를 빼놓을 수 없다. 하루 열 잔을 마실 수 있는 커피를 배급받았던 북군과 커피 보급이 거의 끊겼던 남군 사이의 전력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당시 북군의 지도자 벤저민 장군은 병사들에게 커피 기운이 넘칠 때 공격 명령을 내렸으며 동료 장군에게 “자네 병사들이 아침에 커피를 마셨다면, 이 전투에서 이길 수 있네.”라고 했다는데, 그렇게 커피와 함께한 북군은 결국 승리하였다.

커피는 노동자와 자본가 모두에게 만족을 주기도 했다. 노동의 피로를 술로 달래던 노동자들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커피의 각성효과 덕분에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길어졌고, 술로 인한 산업재해는 줄어들면서 자본가의 이익도 증가했다. 노동자와 자본가가 함께 반기면서, 커피는 술을 밀어내고 순식간에 공장노동자의 음료가 되었다. 이처럼 커피는 산업혁명의 진행을 도왔고, 산업혁명은 커피 소비를 촉진하였다.

이 책은 커피문화사이기도 하다. 커피 역사 이야기로만 구성되지 않고 커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도 풍부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커피 문화의 역사는 세 시기로 나눠 볼 수 있다. 커피 제1의 물결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부터 스타벅스가 출현한 1980년대 말까지로, 이 시기 소비자들은 누구나 어디에서든지 표준화된 커피를 싼 가격에 구입하여 마셨다. 미국의 경우 폴거스, 맥스웰하우스, 그린마운틴 커피 등이, 유럽에서는 네슬레와 같은 대형 커피 회사가 시장을 지배했다. 원두는 저렴한 브라질산으로 거의 통일되었으며, 소비자의 선택 기준은 오직 광고였다.

제2의 물결을 일으킨 것은 미국에서 등장한 ‘스타벅스’였다. 가능하면 품질이 우수한 커피생두를 구입하고, 공정 무역을 통해 매입한 생두를 일정량 사용하여 커피 생산 농가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을 실천하는 과감한 도전을 계기로 스타벅스의 명성은 세계로 퍼져나갔다. 커피 제2의 물결은 커피를 하나의 음료에서 향유하는 문화로 만들었다. 가정이나 직장이 아닌 제3의 장소, 즉 카페가 커피 문화를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로 각광받기 시작하였고, 이 새로운 문화의 개척자가 바로 스타벅스였다.

제3의 물결은 스타벅스가 몰고 온 커피의 표준화, 표준화된 커피 문화를 넘어서겠다는 새로운 도전으로 시작되었다. 제3의 물결을 상징하는 유일한 특징은 커피에는 “표준화된 규칙은 없다(no rules)”는 정신이다. 커피 생산자, 커피 소비자, 바리스타, 커피 만드는 방식, 커피를 즐기는 장소 각각의 다양성 등이 인정되는 문화 속에서 만들어지는 최고급 수준의 커피가 바로 제3의 물결 커피다. 커피공화국이라 불리는 한국에서도 제3의 물결은 일고 있다. 핫플레이스마다 스타벅스 매장이 자리하고 있는 한편, 골목골목에는 직접 생두를 구입하여 로스팅하고, 커피를 만드는 로스터리 카페가 자리 잡은 곳이 오늘의 한국이다. 

비엔나커피의 원래 명칭은 ‘카페 아인슈페너(Einspanner)’다. 하나라는 뜻의 ‘ein’과 말고삐라는 뜻의 ‘spanner’가 더해진 단어로 한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뜻한다. 과거 오스트리아 빈의 마부들이 추운 겨울 마차 위에 앉아서 마시던 음료로, 뜨거운 커피 위에 설탕을 넣고 생크림을 듬뿍 올려서 만든다. 충분한 당분이 마부의 피로를 달래고 크림을 얹어서 커피가 넘치지 않기에 마부가 마차 위에서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고마운 커피였다. 빈(비엔나)에서 유래하고 유행한 커피였기에 1970년대에 우리나라에 소개되며 ‘비엔나커피’라는 별칭을 얻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전이 본격화되면서 커피 가격이 불안해졌고 미국 정부는 커피 배급제를 실시하게 된다. 커피가 부족해지자 미국인들은 커피에 많은 양의 물을 섞어서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 커피맛에 익숙해진 미국인들은 전쟁 이후에도 계속 그렇게 마셨다. 이 묽은 커피가 바로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원픽(one pick) 커피인 ‘아메리카노’다.

한편, 무려 7년간의 개발 노력 끝에 네슬레 연구팀은 ‘네스카페(Nescafe)’라는 분말형 커피를 만들어냈다. 물에 잘 녹는 이 커피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과 영국 등 연합국 군인들에게 보급되었고, 전쟁 종료 후에도 세계인들은 네스카페의 편리함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저자는 커피 인문학자답게 커피에 관한 왜곡된 역사와 가짜뉴스를 꼼꼼하게 바로잡으면서 커피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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