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함께 사유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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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함께 사유하는 길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10.03 0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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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사회학 | 데이비드 잉글리스·존 휴슨 엮음 | 신혜경 옮김 | 이학사 | 408쪽

 

이 책은 현대 영미 예술사회학을 대표하는 쟁쟁한 이론가들의 글을 한자리에서 담았다. 부르디외의 사상부터 문화연구, 사회학적 미학, 예술사, 페미니즘 이론에 이르기까지 예술사회학을 특징짓는 다양한 이론적 개념들을 소개하고, 이러한 이론을 활용하여 회화, 영화, 오페라, 대중음악, 발레, 도시와 건축 등의 구체적인 사례연구를 제시함으로써 앞으로 예술사회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비판적이고 성찰적인 논의점을 제공한다.

예술가라는 이름표는 어떤 사람에게 붙을 수 있을까? 사회학자들은 ‘위대한 예술가’, ‘낭만적인 예술가’ 개념을 탈신비화하는 데 관심을 둔다. 그러한 개념에 도전하는 방식들 중 하나는 어떤 예술가도 자신의 예술을 완전히 혼자 힘으로 생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든 시를 쓰든 간에 이들은 직간접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전체적인 연쇄에 의지해서 작업을 한다. 이와 같이 예술사회학은 그것이 학문적으로 공고화되는 과정에서 문화의 표현적·상징적 요소들이 어떻게 다양한 사회 체계를 통해 형성되는지에 주목하고, 단순한 반영론을 넘어서 기술, 법과 규정, 조직 형식, 산업구조, 시장 등과 같은 외부의 요인들이 문화 산물의 생산·분배·소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왔다. 

하지만 미학자들이 보기에 이것은 위대한 예술작품을 사회적 과정의 단순한 결과로 축소시키는 것이었고, 나아가 사회의 복잡한 상호관계에 얽힌 예술의 존재 및 역할을 지나치게 수동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릴 위험이 있었다. 따라서 2000년대 중반 이래 학계에서는 예술사회학에서 사회학과 미학의 관계를 보다 균형 있게 재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즉 예술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방식에 예술을 다시 들여놓고, 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이분법을 넘어서 미학과 사회학의 의미 있는 대화를 촉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곳곳에서는 대립적인 것과 함께 소통하고 사유하라는 요구가 다층적으로 변주된다. 이제까지 예술사회학의 연구가 너무나 지나치게 예술 외적이고 사회적인 설명 쪽으로 경도되어 왔음을 비판하는 것이다. 잉글리스는 칸트로부터 맑스와 니체의 전통을 이어받은 오늘날의 비판적 예술사회학이 권력과 문화를 동일시하고 예술계를 권력투쟁의 장으로 본다는 점에서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정치와 연결되어 있다”는 루소의 관점을 계승한다고 본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비판적 사회학이 모든 상식에 대해 의심하고 근본적인 이해관계를 파헤치는 데 전념한다면, 그것은 왜 자신이 전제하는 위와 같은 가정 자체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가? 요컨대 예술사회학은 예술사나 미학 같은 다른 학문 분야에 대해서는 날선 비판을 가하면서도, 정작 스스로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냉철한 시선을 던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예술의 문제 및 그것을 둘러싼 담론에 대한 냉소적이고 경멸적인 접근방식과 편견 없는 건강한 회의주의를 중점으로 삼는 태도 사이에는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다. 사회학자들은 전자에 빠지는 것을 피하고 후자를 포용해야 한다. 특히 미학에 대한 예술사회학의 비판조차 예술계의 담론 권력을 찬탈하기 위한 사회학의 ‘지적 쿠데타’이자 ‘노예들의 반란’일지 모른다는 잉글리스의 지적은 신랄하고 의미심장하다. “스스로를 비판적이라고 의식하는 이 학문이 아직껏 자신에 대해서는 충분히 비판적이지 못했다”는 이 책의 주장은 오늘날의 ‘사회학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예술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깊게 반추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은 부르디외의 접근방식 및 예술사회학 일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경험적 사례연구에서 부르디외의 방법론을 다양하게 활용한다. 앤드류 튜더는 시네마 예술 장의 출현 및 변화 과정을 분석하면서 문화 산물의 장에 대한 부르디외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예술이 곧 상업이 된 멀티플렉스 문화에서 예술영화는 이제 선반 위에 올려진 또 다른 상품이 되었다는 것이다. 스윈지우드는 음악사회학의 관점으로 오페라를 역사적·사회적·문화적 맥락에서 분석하면서 부르디외의 문화 장 개념을 적용한다. 오페라는 소수 엘리트층이 지지하는 엘리트주의 예술형식으로 종종 폄하되곤 하지만, 그럼에도 새롭고 도전적인 작품과 현대적인 무대연출의 전복적인 전략을 통해 끊임없이 형식을 혁신하면서 현대 문화에서 중요한 존재로 남을 수 있었다. 불프는 초국적 발레 시장에 대해 논하며 문화 엘리트의 장에서 대규모 생산의 장으로 이동하는 글로벌 발레계의 변화와 그 마케팅을 살핀다.

여기에서는 예술가의 실제 작업 방식을 다루는 미시 분석에서부터 사회구조 속에서 예술의 위치를 고찰하는 거시 분석에 이르기까지 민속지학적 방법과 역사적 자료의 분석, 특정 텍스트에 대한 꼼꼼한 읽기, 비평가와 대중 반응의 경험적 분석을 포함하는 질적 연구 방법이 활용되고 있다. 이 책은 기존의 예술사회학 프레임을 벗어나고자 하면서도 사회학적 예술 연구가 일련의 유용한 사유 방식과 분석 도구를 발전시켜 왔음을 간과하지 않고, 거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오늘날의 예술사회학이 자신의 월계관에 안주하지 말고 이전의 한계를 비판하며 그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하다.

이 책에서 논하는 여러 중심 주제 중 하나는 예술의 ‘글로벌화’다. 이 주제는 앨런 스윈지우드, 헬레나 불프, 재닛 스튜어트가 두루 다루지만, 가장 입체적인 조망을 보여주는 글은 롤랜드 로버트슨과 잉글리스의 논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로버트슨은 글로벌과 로컬이라는 단어를 합성한 ‘글로컬’ 개념을 만들어 “보편화 경향과 특수화 경향 둘 다의 동시적 공존”에 주목하는데, 이 개념을 통해 현지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글로벌화에 반대하고 세계와 지역, 동질화와 이질화의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글은 ‘글로벌화가 문화의 표준화를 생산하는가?’ 아니면 ‘문화의 다양성을 향상시키는가?’라는 질문으로 압축되며, 로버트슨과 잉글리스는 월드뮤직의 정의와 범주, 사회조직, 월드뮤직에 대한 찬양과 비판에 이르는 쟁점에 대한 명쾌한 사유를 이끌어낸다. 

이를 또 다른 각도로 성찰하는 논의는 예술 민주주의를 촉진하기 위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폴 윌리스의 글이다. 윌리스는 예술 민주주의가 기존 예술을 민주화함으로써가 아니라 우리의 공통 문화에 속하는 기존의 창조적 경험과 행위 속에서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사용하는 공통 문화의 개념은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이론을 발전시킨 것인데, “문화는 평범한 것”이라는 표현을 통해 윌리엄스는 대중의 일상적인 ‘삶의 방식 전체’로 문화를 규정했다. 말하자면 공통 문화란 민중이 의미와 가치 창조에 자유롭게 공동으로 참여하고 기여하는 조건을 조성하는 것이고, 문화민주주의란 예술·문화의 생산 주체로서 대중의 참여를 확대하고 만인의 창조 역량과 향유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윌리스는 ‘예술’이라는 용어가 일상의 평범한 행위를 담을 수 있도록 확장되어야 한다고 지적하는데, 그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일상생활의 예술가’인 셈이다. 문화연구와 사회학의 협업을 통해 이 책이 제시하는 확장된 예술 개념 속에서 우리는 일상 세계를 창조하는 예술가로서 우리 자신과 미래의 예술문화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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