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상림, 천년의 숲을 거닐다
상태바
함양 상림, 천년의 숲을 거닐다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3.10.01 17: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류혜숙의 〈여행이야기〉_ 경남 함양 상림

 

상림은 천년의 숲이라 불린다. 천년이 넘는 동안 최초의 수목들은 사라졌대도 그네들의 후손은 오늘로 이어져 강건한 기상을 내뿜으며 자라고 있다.  

함양에 들어서자 쨍하니 울긋불긋한 가로수들이 총채마냥 멋없이 뚝 뚝 늘어서 있다. 그 덕에 저 아래 누런 들판이 환히 넓다. 벼들은 거개가 한들한들 서로 모가지를 부비며 섰는데, 논둑 가장자리에는 베어진 벼가 수면처럼 몸을 포개어 간잔지런히 누웠다. 함양읍내는 어쩐지 복잡해진 느낌이다. 상림 가는 길, 기억과 지도가 머릿속에서 갈 길을 알려주건만 창 밖 세상에 눈이 바쁜 사이 두어 번 곁길로 빠지고 만다. 그예 등을 곧추세우고 나아가는 길 앞에 오래전 상림을 걸었던 시간들이 삼삼 누벼진다.  

 

이끼정원은 상림의 산책로 초입에 야트막한 언덕으로 조성되어 있다. 벨벳 같은 연두 위로 투명한 햇살이 어른대고 모형 사슴과 토끼가 멀뚱하다.

정오 직전의 햇살은 포근한 노랑인데 대기는 아슬아슬 차다. 주변을 대략 훑어보며 감회에 젖을 만도한데 몸은 경주마처럼 숲을 향해 달음질친다. 오늘 상림으로 걸음을 한 것은 실은 지난 밤 이곳에 이끼정원이 있다는 것을 안 때문이다. 아니 언제? 언제 생긴 거지? 하며 마음이 헐떡이는 동안, 숲의 그 환하고 어둑하고 맑고 개운한 기운이 훅 끼쳐와 곧장 가야겠다고 다짐을 했던 게다. 이끼정원은 상림의 산책로 초입에 야트막한 언덕으로 펼쳐져 있다.  벨벳 같은 연두 위로 투명한 햇살이 어른대고 모형 사슴과 토끼가 멀뚱하다. 이끼정원 앞에 ‘2021년 9월 7일 개원’이라 적힌 배너가 퍼덕퍼덕 소리를 내며 서 있다. 기대가 너무 컸던가, 혹은 너무 서둘러 왔던가.  

 

다볕당을 내다보고 있는 누각은 함화루다. 조선시대 함양 읍성의 남문으로 일제강점기 때 이곳으로 피신되었다. 

숲으로 들어선다. 기대도 과도한 들뜸도 바깥세상마저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숲으로 든다. 서로 다른 계절의 기억들이 얼굴을 간지럽힌다. 느티나무와 개서어나무가 한 몸이 된 사랑나무 너머로 빛 넘치는 정원이 보인다. ‘다볕당’이라는 이름이 넉넉히 비어 가득한 땅과 맞춤이다. 다볕당을 내다보고 있는 누각은 함화루다. 조선시대 함양 읍성의 남문으로 일제강점기 때 이곳으로 피신되었다. 함화루 붉은 기둥 초석에 누군가의 신발이 가지런히 기대 서있다. 다볕당 가장자리를 돌아 맨발의 여인이 다가온다. 그녀는 함화루 옆 약수터에서 물을 퍼내어 하얀 발등에 촥 촥 붓는다. 힘껏 펼쳐놓은 발이 송편처럼 오므라든다. 

 

함화루 붉은 기둥 초석에 누군가의 신발이 가지런히 기대 서있다. 상림에서는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위천과 상림. 상림은 신라 진성여왕 때 함양 태수였던 최치원이 위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물길을 돌려 둑을 쌓고 지리산과 백운산 등에서 가져온 나무들을 10리에 걸쳐 심은 숲이다. 

상림은 약 1100년 전에 만들어진 숲이다. 신라 진성여왕 때 함양 태수로 온 최치원이 거창과 함양을 가로지르던 위천(謂川)의 범람을 막기 위해 물길을 돌려 둑을 쌓고 지리산과 백운산 등에서 가져온 나무들을 10리에 걸쳐 심었다. 그때 숲의 이름은 ‘대관림’이라 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림이라는 설이 있다. 세월이 흘러 대관림의 허리가 잘리고 숲은 상, 하로 나뉘었다. 하림은 훼손되어 흔적만 남았지만 상림은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며 함양의 상징이 되었다. 한때는 ‘최치원 공원’이라 불렀는데 지금은 ‘천년의 숲’이라 한다. 

 

숲 가운데로 천이 흐른다. 청량한 물소리를 따라 나무들의 녹색 그늘이 만들어 내는 산책로가 길게 이어진다. 

청량한 물소리를 따라 나무들의 녹색 그늘이 만들어 내는 산책로가 길게 이어진다. 천년이 넘는 동안 최초의 수목들은 사라졌대도 그네들의 후손은 오늘로 이어져 졸참나무, 느티나무, 개서어나무, 상수리나무 등 120여 종, 2만여 그루가 강건한 기상을 내뿜으며 자라고 있다. 땅은 촉촉하고 푹신하다. 얼마나 오래 동안 잎은 떨어지고 쌓이고 썩고 흙이 되고 다시 떨어지기를 반복하였을까. 걸음마다 땅 내음이 코끝에 와 닿는다. 오래된 것들이 품은 경건한 심상에 해마다 새로워지는 감격이 더해진다. 이곳에는 뱀이나 개미 등이 없다고 한다. 눈앞을 어지르는 날것들도 느껴지지 않는다. 정확한 원인은 아무도 모른다. 최치원이 상림에는 미물이 들지 말라고 하여 그렇다는 이야기만 전해오고 있다. 

 

상림의 동쪽 가장자리를 따라 너붓하고 단단한 산책로가 나 있다. 툭! 도토리 낙하 소리 묵직하다. 길옆으로는 연못이 있고 꽃밭과 연 밭이 넓다.
상림의 연못에는 온갖 종류의 연들과 수생식물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 커다란 쟁반 같은 가시연잎이 신비롭다. 

상림의 동쪽 가장자리를 따라 너붓하고 단단한 산책로가 나 있다. 길옆으로는 연못이 있고 꽃밭과 연 밭이 넓다. 연못에는 호주수련, 빅토리아 아마주니카, 다우버니아, 조지프링, 블루스카이, 핑크원더, 플리, 콜로라도, 소벽태, 컬러라타, 이사벨 프링, 핑크 플레터 등 이국의 연꽃들과 물토란, 물양귀비, 물아카시아, 석창포 등 낯익은 이름의 수생식물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 커다란 쟁반 같은 가시연잎은 언제나 신비롭다. 대개 신비로운 것들은 찰나에 사라져 버리던데 자연은 신비로운 채로 오래 자신을 드러내서 사람을 홀린다. 연못가에 홀린 사람들 여럿이다. 

 

상림의 연못에는 온갖 종류의 연들과 수생식물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 커다란 쟁반 같은 가시연잎이 신비롭다. 
꽃밭은 아주 넓다. 저기까지인가 하면 또 그 너머가 꽃밭이다. 상림의 그림자가 꽃밭 깊숙이 드리워진다. 

꽃밭은 또 언제 만들었나. 기억을 아무리 톺아보아도 없다. 아마도 언젠가의 초봄, 황량했던 연 밭이 기실은 꽃밭이었을 테지. 꽃밭은 아주 넓다. 노란 솔의금계국, 보랏빛의 버들마편초, 연보라와 흰 빛이 어우러진 쪽두리꽃, 자주색의 천일홍, 붉은 베고니아와 백일홍, 노랗고 희고 분홍인 코스모스 등이 저마다 호수처럼 넓다. 저기까지인가 하면 또 그 너머가 꽃밭이다. 계집아이 둘이 천사처럼 뛰어다닌다. 한 무리의 중년 여인들은 대구에서 오셨다. 상강 전까지는 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좋은 계절의 영일이다. 연 밭은 확실히 쪼그라들었다. 어른보다 큰 키의 연꽃 가지 꼭대기에서 고개 숙인 연밥들이 수천 개의 눈을 가지고 내려다본다. 진흙의 저 끝없는 끝까지 뚫을 기세에 움찔 배가 고파진다.  

 

   꽃밭은 아주 넓다. 저기까지인가 하면 또 그 너머가 꽃밭이다. 상림의 그림자가 꽃밭 깊숙이 드리워진다. 
꽃밭 너머 하얀 연꽃처럼 생긴 건물은 산삼을 주제로 만든 전시장이다. 그 뒤로 산양삼과 산약초 등을 구매할 수 있는 유통센터와 약용 식물관, 항 노화 체험관 등이 들어서 있다. 

꽃밭과 연 밭 너머에는 최치원 역사공원, 고운광장 등이 들어서 있고 그 옆으로 함양박물관과 문화예술회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하얀 연꽃처럼 생긴 건물은 산삼을 주제로 만든 전시장이다. 그 뒤로 산양삼과 산약초 등을 구매할 수 있는 유통센터와 약용 식물관, 항 노화 체험관 등이 들어서 있다. 고운광장에는 ‘금호미손’ 조형물이 서있다. 최치원은 숲을 만든 후 종료의 표시로 금호미를 힘껏 던졌다고 한다. 그러자 호미는 숲속의 신목 가지에 걸려 뎅그렁 소리를 냈고, 그때부터 함양은 어떤 재앙도 없는 낙토가 되었다고들 한다. 함양 태수는 그의 마지막 관직으로 보인다. 최치원은 떠나면서 ‘상림 숲에 뱀이나 개미가 나타나면 내가 죽은 줄 알라’고 했다 한다. 이후 그는 방랑과 은거를 택했다. 어느 날 숲에서 개미가 나타나자 이제 그는 신선이 되어 하늘로 갔다고, 사람들은 그리 믿었다고 전한다. 툭! 도토리 낙하 소리 묵직하다. 이 숲에 도토리 열리는 참나무 류가 많은 것은 배고프지 말라는 최치원의 마음이었다.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대학에서 불문학을,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무가지 음악잡지 ‘Hole’을 만들었고 이후 무가지 잡지 ‘문화신문 안’ 편집장을 잠시 지냈다. 한겨레신문, 주간동아, 평화뉴스, 대한주택공사 사보, 대구은행 사보, 현대건설매거진 등에 건축, 여행, 문화를 주제로 글을 썼으며 현재 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 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청송의 혼 누정』, 『물의 도시 대구』(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