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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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꿈
  • 이기홍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사회학
  • 승인 2023.10.0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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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칼럼]

 

‘공산전체주의 추종 세력’을 대통령이 자주 소환하고 있다.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고 (맥락없이) 경고한 광복절 개념사의 연속이다. ‘국민통합’위원회에 가서는 “새가 하늘을 날려면 왼쪽 날개와 오른쪽 날개가 다 필요하다”고 하지만 “날아가는 방향이 같아야 오른쪽 날개와 왼쪽 날개가 힘을 합쳐서 그 방향으로 날 수 있는 것”이라며 “시대착오적인 투쟁과 혁명, 그런 사기적 이념에 우리가 굴복하거나 거기에 휩쓸리는 것은 결코 진보가 아니고 우리 한쪽의 날개가 될 수 없다"고 (통합이 아니라 배제를) 훈계했다.

“그런 사기적 이념”이라는 오명(汚名)의 타당성은 (주어-술어 관계가 조응하지 않아 정확한 뜻을 해독하기 어렵기 때문에) 논외로 하더라도, 오늘의 한국 사회에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들이 활개 치고 있다’는 ‘국가 원수’의 진단은 어리둥절하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가 대결하는 분단의 현실에서 반국가세력들이 준동’하고 있다면 헌법을 수호할 의무가 있는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을 집행하는 ‘공안’ 검찰에 ‘딱딱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지 ‘막연하게’ 질책에 그칠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국정운영에서 자유, 인권,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제시해 왔다”고 자랑하고 “자유와 인권이 구현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법치라는 틀”이라고 규정하는  대통령이 이 사안을 법치에 맡길 의사를 보인 일은 없다.

대신 ‘괴벨스’들이 나섰다.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는 “선전·선동을 굉장히 능수능란하게 하던 공산당의 신문·방송을 언론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선포하고,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자는 “예술을 정치적 도구로 삼는 건 공산국가에서나 하는 일”이라고 규탄한다. 국회 동의 없이 임명된 방통위원장은 취임사에서 “공영방송은 노영방송이라는 이중성으로 정치적 편향성과 가짜뉴스 확산은 물론 국론을 분열시켜 왔다”고 단죄하며 “바로잡기 위해 구조와 체질을 획기적으로 개혁하겠다”고 천명한다. 문체부 장관 후보자는 “나랏돈으로 국가 이익에 반하는 작품을 만드는 게 말이 되느냐, 후쿠시마 오염수 선동처럼 가짜뉴스가 여전히 판치는 현실에 화가 난다”고 분개하며 “새 틀을 짜라는” 대통령의 뜻을 읽어 ‘문화 예술도 경쟁을 살아남도록 좁은 문을 만들어 철저히 선별하겠다’고 다짐한다. 대통령이 오래 전부터 “거짓 선동, 날조, 이런 것들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들의 거짓과 위장에 절대 속아서는 안된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사기꾼에 농락당해서는 절대 안된다”(4.19혁명 기념사)고 단속하고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세력의 허위 선동과 조작, 가짜뉴스가 자유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다”(자유총연맹 창립 69주년 기념사)고 규탄한 것을 상기하면, 예상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대통령의 찬양이 무색하게, ‘선전·선동하는 언론’과 ‘정치적 도구로 구실하는 문화 예술’을 ‘국가 이익’에 복무하도록 ‘개혁’하는 것은 바로 ‘(공산)전체주의’ 체제를 대표하는 특징이다. “철지난 엉터리 사기 이념에 우리가 매몰됐다, 국가의 정치적 지향점과 지향할 가치에서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다”라는 대통령의 강조는 자신의 이념으로 국가를 일체화하려한 전체주의 체제 통치자의 신념을 연상시킨다. 전체주의 체제는 세계를 선과 악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악을 대립하고 갈등하는 외부와 내부의 적(敵)으로 만들어 체제 통합의 수단으로 삼는다. ‘공산전체주의’, ‘반국가세력’, ‘기득권 카르텔’, ‘사기꾼’은 척결해야 할 악이며 그 세력들을 편드는 것은 반국가적인 행위가 된다. 또 전체주의 체제는 반대를 위협하고 진압하기 위해 비밀경찰이나 집단수용소 같은 장치로 ‘공포’를 만든다. “법을 제대로 안 지키면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 보여줘야 한다”고 지휘하는 대통령이 ‘중대범죄 혐의자’로 기피하는 야당 대표에 대해 2년여에 걸쳐 70여명의 검사를 동원해 3백여 차례의 압수수색을 집행하는 검찰은 그 아류쯤 될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 사람의 자유도 소홀히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4·19혁명 (정신)이 국민의 삶에 깊이 스며들게 하겠다”는 대통령이 설마 자신이 지시하는 ‘그 방향으로 힘을 합쳐서’ 아무런 비판이나 반대도 없이 일사분란하게 날아가는 ‘자유민주주의’를 꿈꾸는 것은 아닐 것이다.그런 전체주의 체제를 구축하기에는 5년의 임기가 너무 짧을 뿐 아니라 이미 우리 사회가 너무 다원화되어 있다.

 

이기홍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사회학

강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로, 강원대 교수회 회장, 한국사회학회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주 연구 주제는 사회과학철학, 사회과학방법론, 그리고 사회이론이다. 저서로 『사회과학의 철학적 기초: 비판적 실재론의 접근』, 역서로 『숫자를 믿는다: 과학과 공공적 삶에서 객관성의 추구』, 『맑스의 방법론』, 『경제,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과학으로서의 사회이론』, 『새로운 사회과학철학』, 『지구환경과 사회이론』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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