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스몽’은 무엇인가? … 재난 대응과 회복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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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스몽’은 무엇인가? … 재난 대응과 회복력
  • 주윤정 부산대·사회학
  • 승인 2023.09.27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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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현대 사회는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불확실성과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왔지만, 사실 오히려 수많은 난제들이 형성되고 있다. 이는 울리히 벡이 <위험 사회>에서 일찍이 지적한 바로, 현대성은 실패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성공적이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부메랑처럼 야기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위험은 체계 내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과학적·도구적 장치에 의하지 않고는 감지되거나 측정될 수 없다. 울리히 벡이 예로 들고 있는 대표적인 위험은 방사능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점진적으로 생명체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의해 우리는 수많은 질병과 위험을 통제할 수 있었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또 다른 차원과 규모의 위험과 인류는 공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더욱이 화석연료의 사용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계절과 시공간의 한계를 극복해 자연에서 해방된 것처럼 보이던 인간의 현대 문명의 성공은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와 자연의 질서 자체에 영향을 주어서 불확실성은 다른 차원으로 증대되어 기후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기후위기는 실제 문제와 사회질서와 규범의 전환이란 측면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우선 돌발적 폭우 등 급격한 기상이변 현상이 자연재해의 측면에서 한반도에도 빈번해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며, Re100, 탄소세, 기후법 등 시장과 국가에서 새로운 규범이 형성되면서 기존의 자유무역 질서는 변화하며 국가 간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디지털 기술의 변화와 가속화 역시 엄청난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헐리우드에서는 AI에 의해 영화의 조연들이 대체되는 것을 막아달라고 배우조합의 파업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산업용 로봇 밀도가 압도적으로 가장 높은 사회이지만, 이에 대한 충격과 대응은 그다지 논의되지 않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어느 순간 핵무기에 의한 공멸을 우려할 정도로 새로운 긴장이 강화되고 있다. 더욱이 코로나로 인해 잠시 멈춘 것처럼 보이던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동안 인지되지 않거나 감지되지 않던 새로운 위험이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다.

필자는 지난 6월 재난 연구를 위해 인도네시아의 반다아체를 다녀왔다. 반다아체는 아체주의 주도인데, 아체주에서만 2004년 12월 26일 9.3 진도의 지진과 쓰나미로 12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도시의 95%가 파괴되었다. 19년이 지난 현재 사회는 내전과 쓰나미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다. 아체 대학 연구자들과의 미팅에서 ‘스몽(smong)’이라는 단어를 접했다. 아체에서는 쓰나미란 말이 없었고, 그런 재난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고 한다. 지진의 굉음이 처음 들린 뒤 바닷물이 밀려나가고 큰 물결이 해안을 덮칠 때까지는 15분 정도의 시간이 있었으며, 그 사이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바닥을 드러낸 바닷가로 가서 물고기를 줍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 30m에서 50m의 파도가 시속 800km로 닥쳐왔다. 그런데 아체 인근의 한 섬에서는 인구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별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굉음이 나는 걸 듣고 마을 사람 한 명이 ‘스몽’이라고 외치며 사람들을 빨리 대피하라고 외쳤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20세기 초반 있었던 쓰나미를 기억하는 민요가 있었다. 그 지역에서는 이를 ‘스몽’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쓰나미에 대한 개념과 지식이 민간에서 전승되던 지역의 사람들은 이에 대한 개념과 지식이 없던 다른 마을과 달리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기후재난과 디지털,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성공으로 인한 복합위험, 저출산 등 한국 사회에 수많은 문제들이 높은 파고로 전 속력으로 닥쳐오고 있다. 우리는 이 사태에 대한 개념, 그리고 대응 방식을 구축하고 있을까? 우리는 이 사태를 어떻게 이름 부르고, 이런 충격에서 어떻게 회복력을 창출할 수 있을까? 취약한 이들을 보호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식민주의와 전쟁 등 수많은 재난 속에서 끈질긴 회복력을 가지고 버텨왔고, 어떤 측면에서는 운도 좋았다. 하지만 또다시 운과 시민들의 힘에만 의지하기보다, 새로운 위험과 재난에 대한 체계적 준비가 필요한데, 장기적 비전, 그리고 새로운 사태에 대한 개념화와 지식 생성, 사회적 대응력과 회복력의 구축이 시급하다. 여태껏 보지 못했던 큰 파도가 빠른 속도로 몰려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주윤정 부산대·사회학

부산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장애, 인간-동물 관계, 사회운동, 생명사회학 등을 연구하는 사회학자이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표적인 연구로는 『보이지 않은 역사: 한국 시각장애인의 저항과 연대』, 「상품에서 생명으로: 가축 살처분 어셈블리지와 인간-동물 관계 연구」, 「경이와 돌봄의 정동: 천성산과 제주의 여성 지킴이들」 등이 있다. 생명의 취약성과 다양성에 관심을 가지고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배제의 역사뿐 아니라 사회적 포용의 가능성에 대한 실천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SSK < 느린 재난> 연구팀의 연구책임으로 재난에 대한 사회과학적 연구를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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