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네틱스의 핵심, 제어와 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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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네틱스의 핵심, 제어와 커뮤니케이션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9.25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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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버네틱스: 동물과 기계의 제어와 커뮤니케이션 | 노버트 위너 지음 | 김재영 옮김 | 읻다 | 348쪽

 

전쟁의 포연이 간신히 걷힌 1946년 3월, 뉴욕에서 신경생리학자, 수학자, 공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 심리학자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모인 메이시 회의가 열렸다. 회의 주제는 ‘생물학적 및 사회적 계의 되먹임(피드백) 메커니즘과 순환적 인과’였다. 회의 참가자들이 다룬 개별 문제는 신경망의 논리적 모사, 컴퓨터의 자율적 학습, 시신경과 대뇌의 시지각 메커니즘 등 다양했지만, 무엇보다 행동의 결과를 반영해 다음 행동에 반영하는 자체 조절 과정을 이용해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것이 회의의 근본적인 목표였다. 그 뒤에도 1953년까지 계속 열린 이 회의는 동물 행동과 인간 심리, 사회, 언어에 이르는 광범위한 주제에서 자체 조절과 순환적 인과를 찾아내고, 이 현상들을 다루는 공전의 새로운 관점을 형성해 갔다.

메이시 회의는 오늘날 ‘사이버네틱스’라고 부르는 거대한 연구 프로그램을 형성한 요람이었다. 메이시 회의에 수학자로 참여한 위너는 1940년대 초부터 다양한 간학제적 연구를 수행하며 얻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되먹임을 이용해 복잡한 계를 제어하는 일반 이론과 사례를 다룬 이 책 《사이버네틱스》를 집필해 1948년 발표했다. 순환적 제어 메커니즘을 이용해 스스로 조직화하고 항상성을 유지하는 계를 분석하는 이 책은 제어공학, 통신공학, 신경생리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를 가로지르며 전기·기계적 계, 생물의 신경계, 개체가 모여 이루어지는 사회처럼 광범위한 사례를 다룬다. 

위너가 보기에 정보 교환으로 되먹임 고리가 형성되어 계의 제어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선박의 조타 장치와 인간의 시신경-대뇌 계는 다르지 않다. 전자계산기의 기억 장치와 인간 두뇌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생물이 경험을 기억하고 다시 참조해 환경에 맞게 사용하는 학습을 하는 것처럼, 기계도 경험에서 학습해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할 수 있다. 위너가 그려내는 사이버네틱스는 이처럼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하는 현상들을 제어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두 축으로 통합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처럼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해 정보를 수집하고 단기 목표를 수정하며 목적을 달성하도록 조직화된 계, 즉 위너가 1943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사용한 용어로 ‘목적론적’ 계에는 항상 되먹임이라는 공통 제어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이때 되먹임이 이루어지려면 환경을 살피고 획득한 정보를 다시 행위 주체로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여기서 위너는 계가 무엇으로 구성되었느냐가 아니라, 되먹임 자체가 이루는 구조에 방점을 찍는다. 

이렇게 인간, 동물, 기계,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목적론적 계를 제어와 정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두 축으로 추상화해 그 제어 메커니즘을 해명하고, 나아가 한 영역에서 해명된 제어 메커니즘을 다른 영역에 적용하는 기획이 바로 위너가 그려내는 사이버네틱스다. 사이버네틱스는 따라서 처음부터 학제 간 연구를 표방했으며, 다양한 이론적 모형을 포괄하면서도 그 모형을 가능한 한 다양한 분야에 응용해 실제적 결과를 도출하려고 했다. 위너는 과학의 경계 영역에서 다양한 분야 과학자들이 독립적으로 뭉쳐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공동으로 결과를 내놓는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사이버네틱스 공동체를 꿈꾸었다.

또한 위너는 《사이버네틱스》 및 후속 저작에서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지 모르는 위험을 지속적으로 경고하는 비평적 작업도 지속했다. 위너는 항상 기술을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특히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대중 매체가 지나치게 빨리 발달하면 사회는 오히려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위너는 그 뒤에 쓴 ‘인간의 인간적 사용’이라는 책에서 사이버네틱스 공학이 가져올 사회적 위험성을 상세히 알리기도 했다. 위너의 사이버네틱스는 막대한 기술 진보를 낳은 학문적 창조물인 동시에 인간이 기술에 종속되는 위험 사회를 불러낸 마법사의 주문이었음을 이후 역사는 보여주었다.

한편, 과학 연구 프로그램이나 정치적 기획과는 별개로, 문화계에서는 사이버네틱스에서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미래상을 발견하여 이를 무궁무진한 상상력의 원천으로 삼았다. 우리에게 친숙한 ‘사이보그(cyborg)’는 바로 ‘사이버네틱스적 유기체(cybernetic organism)’의 축약이며, ‘사이버펑크(cyberpunk)’의 장르적 규칙은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된 사이버네틱스적 세계상이다. 1990년대 초 이래, 접두사 ‘사이버-’는 급기야 정보, 네트워크, 인공지능에 관련된 것들 속을 자유로이 부유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책 《사이버네틱스》는 20세기를 관통하는 거대한 지적 운동의 진앙이자 그 여정의 첫걸음이며, 현대 세계를 구성하는 보이지 않는 퍼즐 조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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