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푸틴은 역사를 통해 국민에게 메시지를 보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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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푸틴은 역사를 통해 국민에게 메시지를 보내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9.25 0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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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그 역사와 진실: 러시아의 기원에서 오늘날까지, 러시아에 관한 총체적 역사 | 올랜도 파이지스 지음 | 홍우정 옮김 | 커넥팅(Connecting) | 484쪽

 

2022년, 푸틴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 러시아의 이러한 행보에 ‘외부인’ 서방 세력은 푸틴이 권력을 견고히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나 한 개인의 폭주만으로 러시아라는 거대한 국가의 행보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저자 올랜도 파이지스는 이 책에서 오늘날 러시아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러시아 역사와 그 역사를 형성해온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문화적인 요소를 이해해야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슬라브인이 러시아 땅에 정착한 최초 천 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신화에 뿌리를 두고 역사를 끊임없이 재창조하며 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미래를 그려온 러시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국토를 가진 국가답게 러시아에서는 수많은 역사적 인물이 등장했고, 유례없는 역사적 사건도 수차례 겪어 왔다. 이처럼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가득했던 거대한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러시아인은 그들의 신념 체계, 통치 방식, 정치사상, 사회 관습을 지속적으로 재창조했다. 그 때문에 러시아의 역사는 정치적이며, 역사와 신화가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다. 그런 복잡한 러시아 역사 속에서도 저자는 눈에 띄는 구조적 연속성이 있으며, 그 연속성을 이해해야만 러시아를 이해할 수 있음을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2016년 11월 4일 국민 통합의 날. 푸틴은 블라디미르 대공의 동상을 대중 앞에 공개했다. 블라디미르 대공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키예프 루스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이다. 푸틴은 그날 연설에서 블라디미르 대공은 강력하고 단일하며 중앙집권적인 국가를 세우고, 언어, 문화, 종교가 다른 다양한 민족을 하나의 거대한 가족으로 통합함으로써 러시아 영토를 모으고 지켜냈다며 치켜세웠다. 그리고 이어 올라온 키릴 총대주교도 같은 내용을 되풀이하며, 블라디미르 대공이 이교도로 남기로 했거나 자기 혼자 개종했다면 러시아도, 위대한 러시아 제국도, 현대 러시아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역사를 살펴보면 넓은 땅덩어리 속에서 혼란한 정세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몽골의 침략에서 내전 시대, 서방과의 전쟁, 볼셰비키 혁명 등 종종 국가가 붕괴할 만큼 엄청난 전란을 겪으며 러시아인들은 의지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것은 때로는 종교였고, 전통적인 가치나 사상 혹은 문화였다. 이는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를 포함한 수많은 러시아 작가의 작품 속에 종교적인 요소와 전통적인 가치가 빈번히 등장한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이처럼 수많은 러시아인은 의지할 게 필요할 만큼 끔찍한 역사를 겪어왔다.

독재 정권을 형성한 지도자들 또한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국민이 원하는 대로 역사와 사상, 신화 등을 해석하여 메시지를 전달했다. 오늘날 푸틴이 대중 앞에서 연설할 때나, 긴급하거나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역사를 언급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러시아에서 역사는 지극히 정치적이며, 지도자들은 '끔찍한' 역사 대신 '신성하고 웅장한' 역사를 언급하여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런 모습이 과거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러시아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러시아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러시아 역사에 축적되어 온 그 구조적 연속성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이 고대 키예프 루스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방대한 역사를 순서대로 나열한 이유 또한 그러한 연속성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이자, 동아시아 지역 정세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러시아에 관해 잘 알지 못한다. 최근 러시아가 보이는 광폭 행보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 미친 파급력을 생각해 보자. 세계적인 불황에서 정치, 사회, 안보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불확실성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파급력을 불러왔다. 그렇기에 러시아에 대한 몰이해는 세계정세와 우리나라의 앞날에 있어 불확실성으로 다가오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이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에서 승자가 누가 될지 알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승자가 되더라도 러시아의 구조적 연속성은 어김없이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러시아의 향후 행방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조금이나마 정확해지는 건 우리나라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속한 동아시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4강 중 미국, 일본, 중국에 비해 러시아에 관해서는 서방조차 단편적인 분석만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책은 그런 단편적인 분석 대신 총체적인 관점에서 러시아란 나라를 분석할 수 있게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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