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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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진실
  • 이규수 전북대·사학
  • 승인 2023.09.24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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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에게 듣는다_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진실:언덕 위의 구름과 일본인의 역사관』 (와타나베 노부유키 지음, 이규수 옮김, 삼인, 264쪽, 2023.08)

 

 

청일전쟁은 그동안 어떻게 기억되었는가?

청일전쟁은 1894년 7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한반도와 중국 동북 지방을 배경으로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 벌어졌던 국제전이었다. 무대는 조선이었다. 동학농민혁명을 계기로 조선에 진주했던 청군과 일본군의 군사적 대립이 전면전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을 식민지로 삼으려던 일본은 경복궁의 침탈, 그리고 무력을 동원하여 친일 내각을 구성한 뒤 청나라에서의 ‘독립’을 사주하는 한편, 7월 25일에는 아산 앞바다에서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청 해군을 격파했다. 이어 평양성 전투와 황해 해전에서 압승하고, 청나라의 랴오뚱 반도와 뤼순을 점령하면서 청군을 궤멸시켰다. 이 전쟁의 결과 시모노세키 조약이 맺어졌으며, 일본은 동북아의 패권을 장악했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은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지만, 조선과 중국은 일본과 열강의 수탈 대상, 분할 경쟁의 대상이 되었다. 이른바 ‘강한’ 일본, ‘늙은’ 중국, ‘약한’ 조선이라는 이미지 프레임이 만들어지게 된 출발점이었다.

과연 그런가? 일본은 청일전쟁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는가? 사실을 왜곡한 것은 아닐까? 실제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일본군은 전쟁사를 왜곡 편찬했을까? 이는 이후 러일전쟁사 편찬 등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이 책은 이런 의문점을 자료를 통해 검증한다. 저자 와타나베 노부유키는 일본군이 불편한 사실을 은폐, 조작하여 전쟁사를 편찬했다고 말한다. 육군 참모본부가 발간한 『일청전사(日清戦史)』와 그 토대가 된 「일청전사 결정초안(日清戦史決定草案)」을 비교 검토함으로써, 전자에 삭제된 많은 사실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대본영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현지 부대의 독단적인 행동, 지휘관의 개인적 야망과 사심에 의한 무모한 작전, 인명을 경시하고 병참을 고려하지 않는 방만한 부대 운영 등 숨겨진 사실을 파헤쳐 전쟁의 실체에 접근한다. 이후의 침략전쟁에서 일본 육군에 나타난 심각한 결함과 문제는 이미 청일전쟁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밝혀낸 것이다.

일본 정부와 군대가 국민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사실은 무엇이었을까? 그런 사실을 왜곡한 전쟁사가 이후 일본인의 역사관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오늘날 일본인에게 청일전쟁은 먼 나라 이야기다. 우리도 어렴풋한 이미지만 지니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지닌 그 희미한 이미지조차도 조작된 전쟁사의 영향을 짙게 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전쟁과 결부된 사실을 역사로서 후세에 어떻게 전할 것인가의 문제를 둘러싼 큰 노선 대립이 메이지 중반에 육군 내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쟁을 역사로 정확하게 후세에 전해야 한다는 생각은 퇴색되고, 정부와 군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사가 편찬되어 정사로 여겨져 왔다.

본문에서는 그런 내용도 순차적으로 검토한다. 근대 일본이 최초로 편찬한 『일청전사』의 경험과 방침은 이후 전쟁에서도 그대로 답습되어 전쟁사의 정형화가 진행되었다. 왜곡된 전쟁사를 바탕으로 획일적인 교육이 이루어졌고, 일본은 결코 패배한 적이 없다는 환상을 국민에게 심어주었다는 게 저자의 관점이다. 이는 일본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는가 하는 문제의식과 통한다. 동아시아 구성원 모두에게 전쟁에서 감당한 희생은 너무 엄청나고 생생했다. 어딘가 잘못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기억할 수밖에 없고/앞으로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건을 매개로 과거사를 재조명하려는 게 역사학의 과업이다. 현대 사회 구성원의 체험 또는 기억 속에서 지나칠 수 없다고 판단되는 사건의 배경과 전개 과정 그리고 그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생’ 가능한 미래 사회를 전망하자는 문제의식 때문일 것이다. 이는 역사학에 부여된 책무이자 지속적인 사회 변혁을 지향하는 인문학 본연의 자세이기도 하다. 

전쟁 기억에 관해서도 마찬가지 문제의식이 적용된다. 이른바 ‘전쟁의 세기’였던 20세기를 총괄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둘러싼 체험과 기억의 관계는 결코 피할 수 없는/피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한일 간의 상충하는 역사 인식 문제 또한 전쟁 체험과 기억을 둘러싼 입장과 해석의 차이에 기인한다. 역사학은 전쟁 체험과 기억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기억에 대한 담론은 기존의 역사 서술이 자민족 중심주의와 역사의 연속성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견지해 왔다는 부분에 문제를 제기하며 등장했다. 홉스봄(Eric Hobsbawm)은 “전통이란 사실 그 기원을 살펴보면 극히 최근의 일에 불과하고 때로는 발명된 것”이라며, 전통을 구별된 기억을 통해 형성된 ‘문화적 구성물’로 바라보았다. 또 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민족이란 원래 제한되고 주권을 지닌 것으로 상상되는 정치공동체”로 규정하면서 민족을 정치적 정당화/지배의 정당화를 위해 인위적으로 ‘창조된 것’으로 설명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의도적으로 기억된 것은 전통이 아니라 허구이며, 국가와 민족은 ‘공동의 기억’에 의해 만들어진 정치적 구성 집단이다.

역사 인식의 토대는 경험, 기억, 지식의 복잡한 다층적 관계성이라 말할 수 있다. 예컨대, 한 민족에 대한 이미지는 개인의 체험이 공통의 체험으로 기억되는 방식과 깊게 관련되어 있다. 개인의 경험이 역사적 지식에 의해 집단의 체험으로 기억되고, 다양한 개인의 체험이 소거되거나 변형됨으로써 하나의 정형화된 집단 기억이 만들어진다. 이는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형성된 것이며 각종 교육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전승된다.

실제 한일 간의 체험과 기억, 인식 문제는 주지하듯이 근대 이후의 가해자 의식과 피해자 의식의 격차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한일관계를 이해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역사적 체험과 기억의 문제에는 현상 분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회 문화적 요인이 잠재하고 있다. 특히 근대 이후 한일관계는 ‘지배’와 ‘피지배’라는 부조리한 상황이 연출되었고, 그 비대칭적 관계는 끊임없이 그리고 새롭게 재생산되어왔다. 한일관계의 재정립을 위해 역사적 체험과 기억의 차이점을 다양한 측면에서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적 사실과 그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은 이 책의 대상인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당시의 가해자/피해자 모두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결코 회피하거나 눈 감고 외면할 수 없는 사안이다. 문제는 ‘기억을 둘러싼 투쟁’이 후세들의 지난 역사에 대한 부채감과 책임윤리 과업에 그치지 않고, 향후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 인식과 평화 인프라 구축 등 동아시아의 미래와도 직결되는 사안이라는 점이다. 제국과 식민지, 전쟁과 폭력이라는 비대칭 공간에서 이루어진 개인과 집단의 기억을 올바로 되살려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자료에 바탕을 둔 전쟁의 실체를 추적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그릇된 역사 서술이 우리에게 어떤 상황을 강요했는지에 대해서도 독자들과 더불어 성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규수 전북대·사학

역사학자.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히토쓰바시대학 대학원 사회학연구과를 졸업했다. 히토쓰바시대학 한국학연구센터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전북대학교 고려인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 수탈과 궁삼면 토지탈환운동』(2021), 『제국과 식민지 사이』(2018), 역서로 『한국과 일본, 역사 인식의 간극』(2023), 『관동대지진, 학살부정의 진상』(2023)을 비롯해 다수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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