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스크린아, 내가 누구인지 말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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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스크린아, 내가 누구인지 말해줘
  • 김주리 한밭대·현대문학 
  • 승인 2023.09.24 1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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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지난 여름방학에 다양한 전공의 학생 30여 명과 함께 1박 2일 학습법 캠프를 진행했을 때 일이다. 교수학습센터의 다양한 학습법 프로그램 중에서도 여름방학 학습법 캠프는 교직원이 주도하기보다 서포터즈 학생들이 직접 세부 일정과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하며, 교직원은 조력만 하는 학생주도형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이 구성한 캠프 1일차 프로그램은 낮에 초청강사의 지도하에 5명씩 팀을 꾸려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저녁시간에는 서포터즈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또래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저녁 식사 후 또래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 앞서 학생들이 행사장을 정비하는데 나는 좀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또래 상담에 대한 나의 예상은, 2명에서 4명 정도가 탁자를 마주하고 앉아서 서로의 눈을 보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 더구나 낮에 활동을 위해 꾸린 팀이 있으니 그 팀원들끼리 모여서 누구는 멘토가 되고 누구는 멘티가 되어서 작은 목소리로 고민을 나누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 예상과 달리 학생들은 모든 탁자와 의자를 벽으로 밀어서 가운데를 비우고는 30여명이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는 것이었다. 30여명이 큰 원을 그리고 앉아서 어떻게 상담을 하겠다는 건지, 어떻게 고민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건지 상상이 가지 않아서 당황하고 있는데 사회를 맡은 서포터즈 학생이 화면에 QR코드를 띄우고는 말했다.

“자, 이제부터 QR 찍어서 이 오픈채팅방에 들어와서 자기 고민을 올려주세요. 무기명이니까 닉네임 자유롭게 사용하시고요, 다른 친구들 고민 글 보고 공감하는 글에 댓글 달아 주시거나 ‘좋아요’ 눌러 주세요.”

  그러자 학생들은 곧바로 각자의 스마트폰을 꺼내서 QR코드를 찍더니 모두가 작은 스크린에 몰두해 갔다. 저마다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를 조작하는 손가락 움직임 외에, 넓은 행사장에는 정적만 흘렀다. 정적 속에 20여 분이 지나고 ‘고민 톡’이라고 해야 할 내용이 정리되자 중앙의 대형 스크린에 오픈채팅방 영상이 비쳤다. 사회자 학생이 채팅방의 글 가운데 ‘좋아요’가 많이 달린 글들을 차례로 읽어 나갔다.

  “자, 닉네임 xxx의 글이네요. ‘저는 현재 전공이 잘 맞지 않아서 전과를 고민하고 있습니다.ㅠㅠ 그런데 전과를 해도 또 그 전공이 맞을지 걱정이 됩니다.^^;;;’ 맞아요, 전공이 잘 안 맞는 학생들 많으시죠? 이 고민에 공감하는 학생이 열 분이 넘네요. 자, 박수!”

 이걸 상담이라고 할 수 있나, 나는 또 한번 당황하고 말았다. 말이 아니라 스크린의 짧은 글로, 거기에 달린 ‘좋아요’나 ✌로 고민을 나눴다고 할 수 있는 건가? 고민을 털어놓고 공감해 주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고민을 덜어준다고 하는 상담 소통 형식에 대한 나의 상상력이 너무 고루했던 건가?

  학생 몇몇에게 오픈채팅방 상담에 대한 당혹스러움과 의구심을 이야기했더니, 학생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교수님, 요즘 애들은 서로 얼굴 보고 이야기 안 해요. 누가 쑥스럽게 마주보고 자기 이야기 하겠어요. 이번 상담은 정말 잘 된 거예요. 글에 ‘좋아요’가 10개가 넘는 것도 있었고..... 고민을 톡으로 썼고 ‘좋아요’도 받았으니 된 거죠. 사실 고민을 쓰라고 했으니까 쓴 거지, 걔도 그 톡 쓰기 전에는 뭐가 고민인지도 몰랐을 걸요. ‘좋아요’ 누른 애들도 마찬가지고요.” 

  오픈 채팅방이 있고 스크린의 커서가 깜박거리고 누군가가 내 톡을 본다는 몇 가지 상황이 작동함으로써 적당한 고민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고민과 그에 공감하는 클릭으로 서로의 내면을 나눈다. 굳이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굳이 서로의 눈과 몸짓을 보지 않아도, 굳이 서로의 빛깔과 향기를 알지 못해도 톡과 ‘좋아요’로 우리는 서로에게 꽃이 될 수 있다. 블루 스크린의 짧은 글이 보여주는 나의 내면이 현재의 나이며 유일한 진정한 자아로 자리하는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질문이 있어도 교수에게 직접 물어오거나 전화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메일이나 문자, 카톡으로 질문을 하거나 의견을 보내온다. 그리고 거기에는 항상 웃음이나 당혹, 눈물이나 실망 같은 감정을 담은 이모티콘이나 이모지가 몇 개씩 따라붙는다. 학생에게서 온 제법 긴 카톡이나 문자를 읽고 답변을 할 때면, 차라리 전화를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은 현대의 일상적 삶은 하나의 무대이며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과 접촉하고 상호작용하면서 자신의 환경이나 외모, 태도를 바꾸고 자아를 연출한다고 이야기했다. 어빙 고프만이 이야기하는 연출된 자아란 대면 접촉의 삶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다른 사람과 대면 접촉하는 상황에서 희망하는 자아상을 긍정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우리는 수없이 거울을 보고 외모를 다듬고 태도를 연습한다. 그렇지만 오늘날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란 접속에 더 가까워졌고 우리가 관리해야 할 인상이나 연출해야 할 자아는 온라인 이미지와 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 자아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다듬고 연습해야 할 것은 이제 채팅방의 짧은 글이며 적당한 이모지와 이모티콘의 사용이고 카메라에 포착된 시각적 이미지이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서로의 눈을 보고 손을 잡고 서로 발을 맞춰 걸으며 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블루 스크린을 마주보며 이모티콘과 이모지를 섞어 작성된 짧은 글을 읽으며 때때로 ‘좋아요’를 클릭하는 것. 이런 소통 속에서 우리는 거울을 마주보듯 블루 스크린을 마주보고 있다. 그래서 마치 <백설공주> 속 왕비가 거울의 목소리를 빌어 자신의 이미지를 확신하고 싶어 하듯, 우리는 블루 스크린의 공감과 ‘좋아요’를 확인하며 자신의 이미지를 확신하려 한다.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상도 달라지고 자신의 이미지를 연출하는 방식도,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식도 달라진 것이다. 이것은 물론 좋다 나쁘다의 문제는 아니며, 소통 방식과 매체의 다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일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거울을 마주보듯 서로의 눈을 직접 보고 서로의 미소에 미소로 답하며 서로의 얼굴에 담긴 표정을 궁금해 하며 서로의 음성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그러한 경험이 줄어드는 것 같아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이모지나 이모티콘을 동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의 표정에 감정을 담고, ‘좋아요’를 클릭하지 않고도 상대에게 공감하는 미소를 지으며 짧은 글이 담지 못하는 복잡한 사연과 감정을 핑퐁처럼 주고받는 익숙하고 따뜻한 대면 접촉의 소통이 그리울 때가 있다. 이건 어쩌면 내가 늙어서, 꼰대가 되어버려서, 훈계에만 익숙한 인간인 까닭에 느끼는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김주리 한밭대·현대문학 

한밭대학교 인문교양학부 교수. 현재 한밭대 교수학습센터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모던걸, 여우목도리를 버려라>, <근대소설과 육체>, <이 시대,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 <춘원과 파리>, <혁명과 변소 : 4.19 재현소설 속 혐오스러움과 대항품행의 서사>, <1950년대 소설 속 명동족의 표상>, <아편굴의 조선인>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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