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교사가 외면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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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교사가 외면하는 나라
  • 구교준 고려대·행정학
  • 승인 2023.09.24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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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해외에 나가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뿌듯하게 느끼는 게 두 가지 있다. 우리나라의 훌륭한 의료와 교육 시스템이다. 객관적인 지표들도 이를 잘 말해준다. 의료와 교육의 대표적인 성과지표인 평균수명과 PISA 점수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미래엔 “아 옛날이어”의 향수가 될지 모르겠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의료와 교육 시스템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징조가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 분야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필수의료과에 젊은 의사들이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공개한 2023년 하반기 필수의료과 전공의 지원율을 보면 소아청소년과 2.8%(143명 모집 4명 지원), 흉부외과 3.3%(30명 모집 1명 지원), 외과 6.9%(72명 모집 5명 지원), 산부인과 7.7%(52명 모집 4명 지원), 응급의학과 7.5%(40명 모집 3명 지원)로 처참한 상황이다. 이 정도면 조만간 이들 분야의 필수의료 서비스는 붕괴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과언이 아니다. 좀더 피부에 와닿는 사례를 보자. 산부인과 의사회에 따르면 분만 인프라가 무너지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자 동네인 강남구에 분만병원이 한 군데도 없다고 한다. 응급실에 자리가 없어 전국으로 뺑뺑이 돌다가 환자가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분만병원이 없어서 산모와 아기의 건강과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도 멀지 않은 것 같다.

학교 현장의 상황은 조금 결은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급박해 보인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발전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공교육 시스템이 여기저기서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교사가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이제 더 이상 학교에서 공부하지 않는다. 학교에선 학원 숙제를 하거나 부족한 잠을 자고 공부는 학원에서 한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학생들의 인성 함양을 위해 생활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문제 행동을 바로잡기 위한 교사의 훈육이 아동학대로 신고 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교사가 목소리 높여 훈육하거나 수업에 방해되는 핸드폰을 압수해도 정서학대로 간주 되고 혹시라도 그런 상황이 교실에서 발생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학부모가 아이의 폰에 앱을 설치해서 수업을 녹음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무너진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떠나고 있다. 교육청 자료에 의하면 올해 8월까지 전국에서 명예퇴직을 신청한 교사의 수가 전년 대비 30% 가까이 늘었고 그 수는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그나마 명예퇴직으로 교직을 떠나는 경우는 다행이다. 무너지는 학교 현장에서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세상을 떠나는 교사들의 수도 상당하다. 서이초 사태가 발생한 지난 7월 이후 3개월 간 알려진 것만 7명이 자살을 선택했다. 교육부가 국회 교육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 6년간 극단적인 선택을 한 초중고 교사의 수는 100명에 이른다. 이는 2018년 이후 직무상 어려움으로 우울증과 불안장애 치료를 받은 교사의 수가 각각 86%, 53% 늘었다는 최근 통계와 무관치 않다. 교직에 만족한다고 답하는 교사의 비율은 23.6%에 불과하고 예비교사가 공부하는 교대에선 매년 100명 중 3명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

의료와 학교 현장의 문제가 왜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유사한 문제가 보인다. 두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제도가 잘못되서 무너지는 시스템을 서비스 공급자인 의사와 교사의 선의와 희생으로 지탱해 왔는데 이제 거의 한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의료 분야의 필수의료과 문제는 대학입시에서 매년 의대 지원자가 넘쳐나고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의대에 진학한다는 사실과 대비된다. 그런데 이는 현재 정부에서 생각하고 있는 의대 정원 확대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필수의료과가 텅텅 비는 것은 사람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인센티브 구조가 제도적으로 잘못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의대에 진학하는 학생 수를 늘린다 하더라도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들은 낮은 수가로 제대로 된 보상을 못 받으면서 동시에 중증환자를 치료하다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형사책임까지 질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대부분의 응급실과 분만실은 적자 운영 중이고, 그나마 상황이 나은 정형외과에서도 적자 때문에 수술하는 전문의 수가 줄고 있다고 한다. 보상은 보잘 것 없는데 잘못하면 형사 처벌을 받거나 수억의 배상금을 물어야 하는 위험한 일에 사명감만으로 칼을 잡고 뛰어드는 젊은 의사가 몇 명이나 될까? 그러다 보니 외과 지원자는 구조적으로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설령 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다 해도 중증환자 수술은 기피하고 성형수술 같이 덜 위험하고 돈이 되는 분야로만 몰린다. 위험은 회피하고 내가 투자한 노력에 대한 보상은 최대한 받으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이러한 인간 본성을 고려하지 않고 필수의료과 의사들의 사명감에만 의존하는 시스템은 결국 지속가능하지 않다.

학교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교사가 학생 지도 과정에서 아동학대로 신고당하거나 지속적인 악성 민원에 고통 받더라도 최근 목숨을 잃은 대전 초등교사의 생전 기록에서 드러난 것처럼 학교는 개입하지 않고 교사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공적인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지만 학교도 교육청도 교육부도 교사를 지켜주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교사 자신이 개인적으로 변호사를 고용해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고, 지난 수년간 그 과정에서 고통을 감당하지 못한 많은 교사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서이초 사태 이후 수십만의 교사들이 거리로 나온 것은 아무도 교사를 보호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악성 민원에 고통 받다 죽음을 선택한 비극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몰랐지만 교사들은 최근까지 악성 민원에 거의 24시간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에서 사명감 하나로 무너지는 교육현장을 온몸으로 막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가긴 어렵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현직 교사들이 떠나는 것은 물론이고 병원의 필수의료과처럼 교사 충원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의사와 교사의 사명감을 갈아 넣어 지탱하고 있는 현재의 의료와 교육 시스템은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고 결국 예비 의사와 예비 교사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 의대의 필수의료과와 교대가 텅텅 빈다면 20년 후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떻게 될까? 받아 줄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제때 치료 받지 못하고 길에서 사망하는 안타까운 우리 이웃의 이야기는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닐 것이고,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던 양질의 공교육이 사라진 자리엔 엄청난 교육격차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병원에서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과를 선택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시스템을 만들고 학교에서 교사들이 안심하고 아이들 가르치는 데 전념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지 않으면 앞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의사와 교사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 뼈대가 흔들리고 있다. 의사가 정성을 다해 환자를 치료하지 못하고 교사가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아직은 늦지 않았고, 우리 사회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정부와 정치권, 시민사회는 힘을 모아 의사와 교사가 다시 뛸 수 있도록 망가진 시스템을 고치고 새로운 뼈대를 세워야 한다.

 

구교준 고려대·행정학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채플힐(Univ. of North Carolina at Chapel Hill)에서 도시계획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세계은행 컨설턴트와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최근까지 LAB2050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주요 관심 분야는 삶의 질과 행복, 지역혁신, 창업 등이며, 저서로는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공저),  《대전환기 정책의 키워드》(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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