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연 ‘보존과학으로 다시 태어난 조선의 기록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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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연 ‘보존과학으로 다시 태어난 조선의 기록유산’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9.1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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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 2023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특별전 개최
- 2011년 복원한 ‘태조어진’을 비롯해 장서각의 뛰어난 보존 처리 역량을 통해 복제·복원한 37종 64점 공개
- ‘어진도사도감의궤’ 속 그림을 활용해 제작한 10첩 병풍 등 새로운 방식의 복제 자료 공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9월 21일(목)부터 장서각 특별전 ‘보존과학으로 다시 태어난 조선의 기록유산’을 개최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2011년 新장서각 건립을 통해 현대식 수장고와 선진적 보존처리 시설을 갖춰 보유 중인 유물들에 대한 안전한 관리는 물론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보존 처리 시스템을 구축 강화했다. 

이번 특별전은 장서각이 그동안 축적해 온 뛰어난 보존처리 기술 및 복원 노하우를 통해 복원·복제한 장서각의 성과물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 전시는 ‘기록유산’과 ‘보존과학’에 초점을 두어 총 제3부로 구성됐다. 

<제Ⅰ부> ‘왕실의 문화를 기록하다’에서는 조선 왕실의 기록유산을 △왕실의 기록, △왕실의 기록화, △국왕의 글씨로 나눠 소개한다. 

실물과 동일하게 복제한 ‘동의보감’, ‘보인소의궤’ 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2011년에 복원한 ‘태조어진’을 전시한다. 또한 김정호가 제작한 ‘청구도’와 ‘대동여지도’의 강릉에서 인천까지 부분을 연결 및 제작해 두 지도의 상관성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영조가 자신의 호 ‘자성옹’을 딴 현판의 주문·제작 과정을 만년에 기록한 ‘자성사기 현판 주문서’와 그 주문에 따라 복원한 ‘자성사 현판’도 함께 소개한다.  

<제Ⅱ부> ‘명가의 역사를 보존하다’에서는 유서 깊은 명가와 단체에서 장서각에 기증·기탁한 자료를 △경주손씨, △반남박씨, △동래정씨, △고성이씨, △순흥안씨 가문별로 나눠 소개한다. 

세계 유일의 원나라 최후 법전 ‘지정조격’과 ‘기묘제현수필·수첩’ 등 잘 알려진 자료들의 복제본을 비롯해 다양한 방식으로 복제한 ‘정학묵 금관조복’, ‘동래군 필적’ 등이 올해 초 국회 전시 이후 두 번째로 공개된다.

<제Ⅲ부> ‘보존과학으로 거듭나다’에서는 그동안 장서각이 축적해온 보존처리 역량을 △원형의 복원, △원형의 보존, △원형의 복제 세 부분으로 나눠 소개한다. 

‘이제 개국공신화상’의 복원처리 과정과 ‘송준길 행초 동춘당필적’의 보존처리 과정 및 복제본, ‘어진도사도감의궤’의 복제 과정과 ‘어진도사도감의궤’의 도설을 이용해 만든 장식 병풍을 함께 전시한다. 

□ 한편 장서각에서는 이번 전시의 주요 자료를 전문 연구자들이 소개하는 장서각 전시특강을 10월 5일부터 11월 2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2시 장서각 강의실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관련 내용은 연구원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주요 전시 자료】


■ 태조어진

태조의 어진을 2011년 모사, 복원한 것이다. 어진은 조상에 대한 추모뿐 아니라 조종祖宗과 국가의 영구한 존속을 도모한다는 의미가 있다. 특히 〈태조어진〉은 조선의 상징과 같은 것으로, 서울의 문소전文昭殿, 영흥의 준원전濬源殿, 평양의 영숭전永崇殿, 개성의 목청전穆淸殿, 경주의 집경전集慶殿, 전주의 경기전慶基殿 등 전국에 총 26점이 봉안됐다. 

장서각 〈태조어진〉은 1872년(고종 9)에 제작된 전주 경기전의 〈태조어진〉을 바탕으로 모사한 것이다. 다만, 1837년(헌종 3)에 제작된 영흥 준원전의 어진을 모본으로 한 창덕궁 선원전璿源殿의 〈태조어진〉을 참고했기 때문에 곤룡포의 색상이 홍색으로 그려진 것이 특징이다.


■ 어진도사도감의궤 병풍

『어진도사도감의궤』은 1902년 어진도사도감에서 고종황제의 어진과 황태자의 예진睿眞 제작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장서각에서는 2015년 『어진도사도감의궤』의 도설을 참조하여 궁중장식병풍 형식으로 복원했다.


■ 송준길 행초 동춘당 필적 보존처리

『송준길 행초 동춘당필적』은 2018년에 보존처리를 진행했다. 균열과 마모, 얼룩과 황변화 등 유물의 손상이 심각하였으나, 유물 상태를 조사하여 보존처리 방법의 안정성을 점검한 후 안정화 처리와 건·습식 클리닝을 거쳐 유물과 가장 근접한 종이로 메움처리와 배접, 그리고 제책 과정을 통해 원형을 보존했다.


■ 장조, 순조, 헌종 태봉도

태봉도는 왕실의 태胎를 묻은 태실胎室과 그 주변의 형세를 그린 것으로, 태실의 조성과 관련된 그림이다. 조선에서는 왕실 자손이 태어나면 그 태를 길지에 안장安藏하기 위해 태실을 만들었다. 그리고 훗날 태의 주인이 왕위에 오를 경우에는 기존의 태실에 특별히 석물石物로 단장하였다. 이러한 사항을 국왕에게 보고하기 위해 어람용御覽用으로 태실과 주변의 경관을 그려 올린 것이 태봉도이다. 태봉도는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태를 묻는 장태藏胎 문화가 조선 왕실의 안태의례安胎儀禮로 구체화한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왕실 회화이다. 또한 제작 동기 및 시기가 분명한 점과 그 희소성에서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 동의보감 東醫寶鑑

1613년 의관 허준許浚(1539~1615) 등이 왕명에 의해 중국과 조선의 의서를 집대성하여 편찬한 의학서이다. 내과의 질병을 다룬 「내경편內景篇」 4권, 외과의 질병을 다룬 「외형편外形篇」 4권, 그 밖의 여러 병증을 설명한 「잡병편雜病篇」 11권, 약물에 관한 지식이 담긴 「탕액편湯液篇」 3권, 침 치료법인 「침구편鍼灸篇」 1권으로 구성되어있다. 『동의보감』은 국가 차원의 공공 의료와 예방 의학의 확립을 위해 편찬된 관찬서적으로, 전문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의학 지식을 담고 있다. 


■ 월중도 越中圖

정조 대 단종端宗(1441~1457)을 기리기 위해 강원도 영월에 있는 유배지 자취 및 그의 충신들과 관련된 주요 사적을 8폭으로 꾸민 화첩이다. 내부는 〈장릉도莊陵圖〉, 〈청령포도淸泠浦圖〉, 〈관풍헌도觀風軒圖〉, 〈자규루도子規樓圖〉, 〈창절사도彰節祠圖〉, 〈민충사도愍忠祠圖〉, 〈읍치도邑治圖〉, 〈영월도寧越圖〉로 구성되었고, 각 화면의 우측 상단에 관련 도설圖說을 기록하였다. 《월중도》는 숙종 연간 단종의 복위에 이어 정조 연간까지 지속된 단종 추숭과 관련한 사적을 충실하게 반영한 기록화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 대동여지도 大東輿地圖 

《대동여지도》는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가 1861년 제작한 조선 전역의 지리를 상세하게 나타낸 지도이다. 이전의 지도책과 달리 절첩식으로 분첩하여 휴대와 열람이 편리하게 만들어졌다. 전국을 남북 22층으로 나누고, 각 층마다 동서 방향의 지도를 수록했는데, 각 층에 해당하는 지역의 지도를 각각 1첩으로 접어서 엮었다. 이 22첩을 모두 펼쳐 연결하면 세로 약 6.6m, 가로 약 3.8m의 대축적 지도가 된다. 지도는 산줄기와 물줄기가 상세하고 군현의 경계를 점선으로 표시하였으며, 교통로는 10리마다 점을 찍어 이용의 편의를 도모했다. 근대 측량 기술로 제작된 지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조선의 지도 제작 기술이 집대성된 지도로 평가받는다. 


■ 정조어필 시국제입장제생 正祖御筆 示菊製入場諸生

1798년 9월 9일에 시행된 성균관의 국제菊製에서 정조가 유생들을 깨우치기 위해 작성한 유시문諭示文이다. 정조는 자신이 내린 국제의 시험 문제를 유생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백지로 제출하자, 3일 동안 기한을 주고 문제의 뜻을 이해하여 답안지를 다시 제출하게 하였다. 이후 정조 자신이 직접 채점하여 1등으로 뽑힌 생원 윤행경尹行慶에게 『규장전운奎章全韻』을 하사하였다. 이 문서는 정조가 직접 내린 시제試題의 의미와 성균관 유생의 학문 수준을 질책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어 당시 인재 육성을 위한 고심을 잘 보여준다.


■ 지정조격 至正條格

원나라 순제(順帝) 지정(至正) 6년(1346)에 간행하여 반포한 원나라 최후의 법전이다. 책은 단례(斷例)와 조격(條格)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단례는 안건에 대한 결단사례(決斷事例)를 포함하는 일종의 형법전이고, 조격은 칙령격식(勅令格式)을 계승한 행정법전에 해당한다. 『지정조격』은 현전하는 세계 유일의 원나라 법전으로, 원과 고려의 사회상은 물론 조선 초기 법체계 구성의 특징을 규명할 핵심 자료이다. 장서각에 기탁된 후 보물로 지정되었다.


■ 박세당 필적 서계유묵 朴世堂 筆蹟 西溪遺墨

박세당(1629~1703)의 시문 및 간찰 등을 수록한 유묵첩이다. 박세당은 주자학에 대한 독자적 견해를 견지하고 실사구시의 학문 태도를 강조했던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이다. 총 3첩으로 구성된 『서계유묵』은 대부분 문인門人인 이정신李正臣(1660~1727)에게 증여한 시문과 서간이며, 처남인 남구만南九萬(1629~1711)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서간도 확인된다. 이밖에도 중국 역대 명가 글씨에 대한 박세당의 품평과 감식안이 담긴 서간, 박세당의 초상 제작과 관련한 아들 박태보朴泰輔(1654~1689)의 글도 수록되어 정치사 및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다. 


■ 정학묵 금관조복 鄭學默 金冠朝服

고종 대 문신 정학묵(1829~1903)이 착용한 조복으로, 국가적인 경사나 명절 때 축하 의식에서 입는 예복이다. 양관梁冠·의衣·상裳·중단中單·대대大帶·혁대革帶·후수後綬·패옥佩玉·홀笏·화靴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진에서 확인할 수 없지만 폐슬蔽膝도 존재한다. 정학묵은 1860년(철종 11) 문과에 급제하여 당상관인 삼사의 승지와 이조참의를 지냈으며, 1902년(광무 6)에는 종2품 가선대부의 품계에 올랐다. 이 조복은 운학문雲鶴紋과 금환金環으로 장식된 후수와 육량관, 상아홀, 서대犀帶 등을 갖춘 대한제국기 고위 관직자의 관복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 이준형 유서 李濬衡 遺書

독립운동가 이준형(1875~1942)이 1942년 9월 2일 자결 전에 아들 이병화李炳華(1906~1952)에게 남긴 유서이다. 이준형은 1911년 부친 이상룡李相龍(1858~1932)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독립운동을 했고, 1932년 부친의 서거와 일본군의 만주 침공을 계기로 귀국한 후에 집안을 재정비하고 부친의 유고遺稿를 정리하는 일에 몰두했다. 1942년 부친의 문집인 『석주유고石洲遺稿』의 정리를 마쳤으나, 일제의 싱가포르 승전소식을 듣고 독립의 희망이 희박해졌다고 판단하여 자결했다. 유서에서 그는 간단한 장례 절차, 며느리에 대한 애정, 손자에 대한 학업 등을 당부한 뒤 절명시 「임절운臨絶韻」을 남겼다.

 

【전시 자료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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