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박해는 뿌리 깊은 여성 혐오의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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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박해는 뿌리 깊은 여성 혐오의 대표작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9.17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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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시대의 마녀: 매혹적인 두려움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 임옥희·김미연·김남이·손자희·신나리 외 4명 지음 | 여성문화이론연구소 | 237쪽

 

이 책의 저자들은 현재 한국의 온·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마녀사냥’을 바라보며, 그 옛날 역사적 사건으로서 실재했던 ‘마녀 박해’와 자연스럽게 비교해 보게 되었다. 특히 실비아 페데리치(Silvia Federici)의 <캘리번과 마녀> 그리고 <혁명의 영점>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과 푸코의 신체 이론 논의에서 전혀 주목받지 못한 여성의 재생산 노동을 이해하도록 했고, 자본주의로의 이행 속에서 여성사를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것은 여성의 관점에서 마녀 박해를 해석하는 새로운 시도로 보였다.

예를 들면, 16-17세기까지 2세기 넘는 기간 동안, 즉 봉건제로부터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시기에, 유럽 국가들에서 수십만 명의 여성들이 재판을 받고 고문을 당하며 산 채로 화형당하거나 교수형에 처해 졌다. 이 시기에 마법이라는 죄명으로 처형당한 이들의 80퍼센트 이상이 여성이었는데, 이 여성들이 박해를 받은 죄명 중 으뜸이 영아살해였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페데리치는 당시 높은 영아 사망률의 원인은 빈곤이나 영양실조 증가에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대규모 기아를 유발한 빵값 인상에 반대하는 봉기가 유럽 곳곳에서 일어난 데다 이런 봉기에서 행동을 촉발하고 선도했던 이는 다름 아닌 가난한 농민 여성이었다는 점 역시 페데리치는 지적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페데리치는 당시 판사들을 포함한 지배계급의 ‘가난한 농민 여성’에 대한 공포감이 대규모 마녀사냥과 처형이라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페데리치가 제시한 한 가지 가정이다. 그것은 인구가 감소하는 현상에 집착한 정치계급이 마녀사냥을 촉발했고, ‘인구의 규모가 국부를 좌우한다는 확신’이 이를 부채질했다는 가정이다. 다시 말해 흔히 동화 속에서 아이를 잡아먹는 마녀의 모습은 가난한 농민 여성에 대한 남성 지배계급의 공포가 투사된, 왜곡된 이미지인 셈이다.

마녀에 속한 이들에는 출산이나 피임을 담당했던 산파뿐만 아니라 모성을 거부한 여성도 포함되었고, 결혼과 출산의 구속 밖에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행사한 여성도 포함되었다. 말대답하거나, 논쟁하거나, 욕을 하거나, 반항적인 여성들도 모두 마녀에 속했다. 순종적이지 않은 여성, 넓게 보면 ‘여성 일반’이 마녀인 셈이다. 마녀 박해는 뿌리 깊은 여성 혐오의 대표작이랄 수 있다는 생각에, 여성의 관점에서 우리 시대의 마녀를 다시 읽어보고자 하는 것이 이 책 저자들의 의도이다.

「혐오, 미러링, 마녀 되기」에서 임옥희는 외경의 릴리스, 그리스 비극의 카산드라와 클라이템네스트라, 천문학자 케플러의 어머니 캐서린, 마담 보봐리, 김명순, 21세기 메갈리언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인 ‘마녀 되기’의 계보에 있는 이들의 궤적을 따라 ‘새로운 여성 탄생’의 가능성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재생산 위협의 아이콘으로서 마녀」에서 김미연은 현대 의학 담론이 우생학에 기대어 여성에게 ‘생식 도덕’의 규범을 부과하고 규범에 벗어나는 여성을 질병화하는 과정을 탐색한다.

김남이는 「그 많은 히스테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 프로이트와 그의 스승 샤르코가 자신들의 환자라고 생각했던 히스테리들이 정작은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그래서 피해자의 프레임을 벗어나는 매력적인 예술적 귀재들이 아니었을까를 상상한다.

손자희는 「21세기 혼종적 존재로서의 마녀 되기」에서 해러웨이의 ‘사이보그-되기’ 관점을 비롯한 21세기 혼종적 주체의 이론화를 경유하여, 마녀 되기라는 대안적 형상의 가능성을 타진해본다.

「‘여성이 여성의 고통을 쓴다는 것’에 관한 고찰: 레슬리 제이미슨의 「여성 고통의 대통일 이론」과 김혜순의 『여성, 시하다』를 중심으로」에서 신나리는 “여성이 고통을 고백하는 일은 여성의 고통을 경멸하고 왜곡해 온 문화 구조에 반박할 수 있게 한다. 고통의 고백은 여성의 상처를 인정하고, 상처를 다루고, 상처를 타자화하는 구조를 찾아내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신나리의 글은 여성의 고통을 여성이 재현하고 여성이 이론화하는 일련의 작업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여성의 재현에서 죽음과 마녀화의 관계: 영화 〈죽여주는 여자〉를 중심으로」에서 오김숙이는 영화 〈죽여주는 여자〉의 주인공 소영, 일명 ‘박카스 할머니’라 불리는 성노동자 여성이 어떻게 ‘여성 킬러’로서 ‘죽여주는’ 여자로 ‘마녀화’ 되는지에 대한 사회맥락적 분석을 제공한다.

신주진은 「K-드라마 속 마녀의 계보」에서 2000년대 이후 방영된 다섯 편의 드라마 속 매력적인 여성 인물들을 마녀의 계보 속에 위치시키고, 그들이 어떻게 욕망의 과잉으로 사회적 틀을 넘어서는지 보여주고 있다.

김한올은 「모니크 위티그와 폴 B. 프레시아도, 세상을 마녀로 뒤덮기」에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고 결정하여 가부장 체제의 모순을 드러내는 현대판 마녀들의 예로서, 여성을 오로지 성적인 존재로 축소하는 이성애 체제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하는 프랑스 페미니스트 작가 모니크 위티그와 여성성을 포기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전략이 될 수 없을지를 질문하는 폴 B. 프레시아도의 작업을 소개한다.

김은하는 「여적여(女適女)를 넘어서는 우정에 관한 탐색 : 은희경, 『빛의 과거』에서 은희경의 서사가 어떻게 기존의 성녀/마녀 이분법을 와해시키는지에 대해 고찰함으로써 마녀의 ‘지식/교활함’이 가부장질서체계를 위반할 지팡이 역할의 가능성을 갖는지, 또한 남성만의 우정을 대신할 여성의 연대를 상상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저자 나름의 답변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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