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사례를 통해 진화의 비밀을 풀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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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사례를 통해 진화의 비밀을 풀어내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9.1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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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윈의 식물들: 『종의 기원』에서는 못다 밝힌 다윈의 식물 진화론 | 신현철 지음 | 지오북 | 320쪽

 

『종의 기원』을 발표하여 생물의 진화론을 정립한 찰스 다윈도 평생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있었다. 다름 아닌 식물의 진화에 관한 내용이었다. 『종의 기원』 발표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식물의 운동, 꽃가루받이, 번식 등에 관한 6권의 책을 펴내며 평생 연구를 거듭했지만, 백악기에 급격히 발달한 고등식물의 진화에 대해서는 다 밝혀내지 못하고 미완성으로 마무리했다. 다윈이 식물에 대해 끝내 풀지 못한 숙제로 인해 괴로워했다는 2019년 BBC 기사를 접하고 식물학자 신현철 교수는 이 책을 쓰고자 마음을 먹었다. 

이 책은 다윈이 생전에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를 비롯한 연구논문, 책은 물론 현대의 사료들을 확인하고 종합하여 식물로 본 다윈의 일대기를 재구성했다. 다윈이 유년 시절부터 식물과 맺어온 일부터 그가 골몰한 식물 연구와 연구를 도운 조력자들, 끝끝내 설명하지 못했던 식물 진화의 난제까지 다윈의 식물 연구사를 연대기별로 조망할 수 있다.

특히 식물 사례를 중심으로 『종의 기원』 속 진화 이론을 되짚어보고, 다윈이 집필한 6권의 식물학 책의 내용과 의미를 세밀하고 종합적으로 살펴보며 위대한 진화론을 있게 한 다윈의 식물 연구의 가치를 알게 한다. 또한 다윈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그의 스승 헨슬로의 연구논문과 다윈이 사용했던 ‘질문과 실험’ 공책 등 식물학자로서 다윈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몇 가지 사료를 전문 번역하여 추가로 실었다.

『종의 기원』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윈의 다양한 식물 연구 사례에 놀라게 된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식물의 다양성과 이들이 관계를 맺고 있는 생물적·비생물적 환경요인으로부터 진화의 과정을 발견하고 설명했다.

자연에서 잡종을 잘 형성하는 앵초류를 통해 다윈은 ‘변종이 창조되지 않고 자연 상태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면, 종도 자연 상태에서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리고 사막에서 홀로 살아가는 식물과 다른 나무에 기생해 살아가는 겨우살이를 예시로 들며 한 개체로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설명한다. 도움이 되는 변이는 보존되고 유해한 변이는 제거되는 ‘자연선택’의 과정은 토끼풀과 벌의 관계로 설명한다. 

이미 잘 알려진 마다가스카르의 난초와 20센티미터가 넘는 주둥이를 가진 크산토판 박각시나방처럼, 생물은 자신이 지닌 변이에 들어맞는 또 다른 생물과 적절한 관계를 맺어야만 하며, 꽃부리 길이의 변이가 단순히 길거나 짧다고 해서 유리하거나 불리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종의 기원』에 나오는 식물 사례는 동물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지만, ‘생물이 진화한다’라는 사고방식의 결정적인 증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이 책은 그동안 국내에서 제대로 조명된 적 없는 다윈의 6권의 식물 연구서를 집중적으로 살피며 다윈이 식물 연구를 통해 밝혀내려 한 점을 쫓는다. 1859년 『종의 기원』 출간 이후, 다윈은 죽기 2년 전인 1880년까지 식물 연구에 매달리며 식물에 관한 책을 6권이나 써낸다. 저자는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다 밝혀내지 못한 진화의 증거와 공통조상을 식물로부터 찾으려 했다고 풀이한다.

다윈은 『난초의 수정』에서 난초의 다양함과 흔적 기관, 꽃가루받이 과정이 자손을 더 효과적으로 남기기 위해 생물이 변형된 증거이며, 한 생물이 다른 생물과 상호관계를 맺어야만 하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보았다. 『덩굴식물의 운동과 습성』과 『식충식물』, 『식물의 운동 능력』에서는 동물 마취제로 쓰이는 클로로포름을 식충식물에 처리하는 등 엉뚱한 실험까지 하면서 『종의 기원』에서 주장했던 식물과 동물의 공통조상을 찾으려 했다. 『타가수정과 자가수정』, 『꽃의 다른 형태들』에서는 타가수정을 통해 더 튼튼한 자손을 만들 수 있고, 꽃의 다양한 형태가 이 타가수정을 유도하기 위한 것임을 밝혀냈다. 다윈은 자신이 원했던 것을 식물로부터 모두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그의 식물 연구는 이후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식물이 보여주는 다양한 현상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도록 이끌었으며, 새로운 식물학 시대를 개척하게 했다.

‘종의 기원’을 밝혀내고 식물 연구를 거듭한 다윈에게도 풀어내지 못한 수수께끼가 있었다. 바로 고등식물의 급격한 진화였다. 고등식물은 백악기 말기에 엄청나게 번성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짧은 백악기 동안 이처럼 다양한 고등식물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진화가 단계적으로 천천히 일어난다는 다윈의 진화 이론에 반하는 것이었다. 또 고등식물의 발생지 또한 의문이었다. 다윈은 섬과 같은 격리된 곳에서 고등식물이 천천히 진화했고, 이후 이 지역이 바닷속과 같은 발견할 수 없는 곳에 묻혔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자신의 이런 추측은 결함투성이라고 고백했다.

다윈 시대에는 지질연대 측정에 한계가 있었으며 유전자에 대한 개념이 알려지기 전이었으므로, 다윈은 자신의 진화 이론을 펼쳐 나가는데 여러 어려움에 부딪혔을 것이다. 하지만 다윈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이 수수께끼를 끝까지 놓지 않았으며, 여러 학자들과 논쟁했다. 실제로 오늘날 밝혀진 연구들에 의하면 다윈의 가설과 같이 고등식물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라앉은 대륙, ‘질랜디아(Zealandia)’가 남반구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여러 한계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신문과 논문, 편지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19세기의 집단지성을 발휘시킨 다윈은 요즘 주목받는 데이터 사이언스와 시민과학을 가장 잘 활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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