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시대를 여는 기폭제, '회독'의 소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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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시대를 여는 기폭제, '회독'의 소통법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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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에도 후기의 사상 공간 | 마에다 쓰토무 지음 | 이용수 옮김 | 논형 | 592쪽
 

이 책은 ‘에도 후기의 사상 공간’이라는 시공간을 특정해, 근세 후기 일본의 사상지도를 예리한 각도로 심도 있게 조명한다. 그 근저에는, 난학과 국학 그리고 일본 유학이 각각 효율적이고 실질적인 ‘소통’을 추구함으로써, 세계 속에서의 ‘우리 일본’과, 국익을 위한 ‘공명’, ‘덴노’ 중심의 천황제를 기축으로 하는 새로운 ‘국민국가 일본’을 지향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이전 시대에는 없었던 ‘회독’이라는 방식을 통한 ‘토론’의 가능성과 그것으로 확대된 커뮤니케이션의 발달을 설명한다.

18세기 근세 일본의 공공 공간에는 오규 소라이 학파에서 시작해 주자학 뿐만 아니라 난학과 국학까지 퍼져 나간, 함께 모여 읽는다는 ‘회독’이라는 독특한 독서 방법이 있었고, 저자는 풍부한 인용 자료를 통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회독은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여 난해한 텍스트를 토론하며 읽어나가는, 동시대의 조선과 중국에는 없었던 독특한 공부 모임이었다. 근대 일본의 토대를 마련한 에도 후기의 독서와 토론의 장으로, 이른바 ‘공명’을 높여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소통’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개척해 나가고자 하는 열정이었다. 회독은 18세기에 발흥한 난학과 국학이라는 신학문이 실은 공동 독서회장을 거점으로 탄생했고, 이 신학문이 지향했던 ‘일본’과 ‘덴노’라는 개념이 근대 일본의 국가 정체성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회독은 새로운 소통 방식을 제시했다.

회독을 통해 훨씬 세련되게 거듭난 소통법이 메이지시대를 여는 기폭제가 되었고, 이 시기를 이끈 정신적 원천이었음을 저자는 여러 사상가들의 언설로써 증명하고 있다. 모토오리 노리나가나 아이자와 세이시사이의 ‘덴노’와 ‘황국’ 그리고 ‘국체’ 개념, 아라이 하쿠세키·야마무라 사이스케·아오치 린소·미쓰쿠리 쇼고 등의 난학자들이 네덜란드 서적 번역을 통해 세계지리와 관련한 정보를 습득하면서 싹튼 세계 속의 ‘일본’이라는 관념, 야마가타 반토의 ‘우리 일본’ 의식, 와타나베 가잔이나 시바 고칸·혼다 도시아키·사쿠마 쇼잔 등의 보이는 경쟁을 통한 ‘공명’의 희구, 보기 드문 여성 사상가 다다노 마쿠즈에게 보이는 ‘일본’ 의식의 맹아라는 동기부여가 바로 세상과 새롭게 소통하고자 했던 의식적 이념이자 행위였다. 따라서 에도 후기는 학문적·사상적으로 이런 ‘소통’의 장이 확대 재생산됨으로써, 메이지 유신을 통한 근대 일본의 초석이 굳건히 놓인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국학자와 난학자의 내면을 모색해 ‘일본’과 ‘덴노’라는 관념과 ‘일본인’이라는 국가적 정체성이 발생해 가는 현장을 재현한다.

저자인 마에다 쓰토무(前田勉)는 회독의 특징으로 사무라이뿐만 아니라 계급이 낮은 농민들도 자유롭게 참여가 가능했고, 혼자서 책만 읽는 것이 아닌 여럿이 생각을 나눌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회독에서 두각을 나타낼 경우 신분과 관계없이 학문으로 출세하는 것도 가능했다.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 후쿠자와 유키치는 하급무사 가문 출신이었지만 학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또 유학서 이외에 네덜란드어로 쓰인 의학, 과학, 역사, 지리 서적을 두루 섭렵했다는 점도 독특했다. 저자는 서구에서 태동한 근대적 개념이 일본에서 자생적으로 싹텄다고 주장하며, 회독 문화에서 발견되는 '자유'와 '평등' 사상에도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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