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주의에서 능력주의로 나아갈 기반을 닦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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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주의에서 능력주의로 나아갈 기반을 닦은 나라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9.10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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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의 나라, 조선 | 김경용 지음 | 은행나무 | 192쪽

 

‘헬조선’이 상투적인 말이 되고 부모의 경제력, 사회적 지위 등에 따라 ‘금수저, 흙수저’를 분류하는 오늘의 한국 사회 모습은 태어날 때부터 개인의 가능성과 한계가 정해져 있는 신분제 사회와 닮아 보인다. ‘부모찬스’가 빈번하게 문제가 되는 사회에서 노력은 ‘노오력’으로 폄하되고, ‘부모를 잘 만나 미래를 보장받는 일’이 아니면 성공을 꿈꾸기 힘들어 열등감과 좌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러한 사회의 대명사가 된 ‘조선’은 정말 신분에 따라 삶이 정해지는 철저한 혈통주의 사회였을까?

저자는 다양한 국가고시 제도로 이어져 온 조선시대의 과거 제도를 다시금 검토하여 그 바탕에 능력주의가 있었음을 밝혀내고자 한다. 788년 신라시대에서 시작되어 1,000년 이상의 역사를 이어온 과거제도는 부모의 재산과 권력, 가문의 위세, 심지어 왕의 명령에도 흔들리지 않고 절차대로 공정하게 실시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과거제도의 성격과 실제 운영 사례, 그리고 과거 급제를 위해 공부한 개인의 사례를 바탕으로 조선시대의 과거제도가 혈통주의가 아닌 능력주의 사회로서 조선을 지탱하였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마치 신분제 사회로 되돌아간 듯한 한국 사회가 역사적 뿌리인 과거제도를 돌아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과거제도의 공정성은 먼저 시험의 내용과 실시 방법으로 보장되었다. 과거제도에 대한 흔한 오해는 관리로서의 실제 업무와는 무관해 보이는 유학 경전에 대한 지식만으로 관리가 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오해의 대상이 되는 문과에서는 실제로 통치 이념이 되는 경전에 대한 학문적 지식과 실무 행정 능력을 함께 평가했다. 흔히 말하는 사서오경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공문서를 작성하는 능력이나 문제 상황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위기 대처 능력 등이 폭넓게 평가되었다. 마찬가지로 무과, 역과, 의과, 율과에서도 각자 맡게 될 관직을 수행할 수 있는 업무 능력을 중점적으로 평가하였다.

절차적 측면에서, 과거시험은 철저한 블라인드 테스트로 치러졌다. 시험을 치를 때 이름을 쓰지 않고 명부 이름 하단에 적어둔 자호(字號)를 활용했고, 시험 등수에 따라 입장하면 응시자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 입장 순서를 임의로 바꾸었다. 시험 문제는 즉석에서 숫자가 적힌 찌가 담긴 통에서 찌를 뽑아 출제하여 예상할 수 없게 하였고, 복수의 시관이 채점하여 한 사람이 당락을 결정할 수 없도록 보완하였다. 또 시험 결과를 알릴 때에도 각 시관의 채점 결과를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 점수만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과거 합격자는 왕의 명령으로도 바꿀 수 없었다. 1611년 3월 광해군은 전시 답안이 불경하다는 이유로 임숙영을 합격자 명단에서 삭제하라고 명령했으나, 신하들은 이미 합격이 결정된 인원을 취소하는 경우는 없었다며 왕의 명령을 거부하였다. 3개월 동안의 논쟁 끝에 광해군은 자신의 명령을 거두었다.

과거시험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양반만 응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과거제도는 양인이라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었으며, 선대가 금기를 어겼거나 본인에게 죄과로 인한 허물이 있는 경우에만 시험 자격이 제한되었다. 천민 또한 면천을 통해 양인이 된다면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으며, 천민에서 양인이 되고 과거에 급제한 기록은 흔히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조선 시대 전체 문과 급제자 14,615명 중 약 36%에 해당하는 5,221명은 한미한 가문 출신이었다.

과거시험은 부와 지위를 대물림하는 시험도 아니었다. 저자는 ‘김수로’라는 인물의 공부 기록을 통해 이를 밝혀낸다. 김수로는 7세에 『천자문』으로 공부를 시작해 23세에 초시에 입격하였으며, 안타깝게도 건강상의 이유로 과거 급제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김수로는 가난한 가문에서 태어나 과거에 급제하고 농가 경영으로 현대의 중산층에 근접한 ‘김인섭’의 자제로, 틈틈이 농사일을 거들면서 사서를 섭렵해 초시를 통과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다.

이처럼 과거제도는 현대의 편견과는 달리 실질적인 능력을 엄정하게 평가하는 공정한 시험이었고, 부모의 신분을 세습하는 시험이 아니었다. 오히려 국가를 위해 일할 인재를 공정하게 선출하는, 국가고시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제도였으며 누구나 응시하고 급제할 수 있는 열린 시험이었다. 가문, 신분에 따라 지위가 세습되어 부정부패가 만연한 세상을 경계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과거제도는 마치 신분제가 돌아온 듯, 부와 권력을 세습하는 일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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