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 도시 서울에서 반란의 도시 베를린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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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 도시 서울에서 반란의 도시 베를린을 보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9.1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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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란의 도시, 베를린: 도시와 주거의 새로운 길을 상상하기 | 이계수 지음 | 스리체어스(threechairs) | 208쪽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다. 테크노 음악과 자유로운 그라피티, 난민과 이민자들을 품어온 역사가 베를린을 섹시하게 만들었다. 베를린에는 도시 정치의 역사가 묻어 있다. 걸림돌 ‘슈톨퍼슈타인’은 베를린의 정치를 그대로 드러낸다. 슈톨퍼슈타인은 나치스 정권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을 기리는 보도 위 기림 돌이다. 이 기림 돌은 베를린에 가장 많다. 그런 의미에서 베를린은 “유대인에게 여전히 상처의 도시이지만, 기억하기를 통해 그 상처를 치유해 가는 도시이기도 하다.”

베를린은 어린이가 안전하게 모험할 수 있는 놀이터가 가득한 공간, 그라피티와 테크노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작품으로서의 도시, 공물로서의 도시를 지키고자 노력한 도시이기도 하다. 이 책은 베를린의 사례를 통해 도시의 매력을 지키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도시법 연구자인 저자는 “안전한 도시, 난민과 이민자도 살 수 있는 도시, 혐오가 아닌 이해와 격려가 승리하는 도시, 사고 싶은 도시가 아닌 살고 싶은 도시”를 탐구한다. 그런 그가 1년간 베를린을 걸었다. 빛을 보기 위해서다.

저자는 빛을 보러 다녔지만, 베를린에는 어둠과 비명, 혐오와 적대도 있었다. 라이프치히대학교의 연구 결과는 독일의 외국인에 대한 적대적 태도가 점차 심화하고 있음을 보인다. 36퍼센트의 독일인은 외국인이 독일의 복지 시스템에 편승한다고 판단한다. 절반의 독일인은 이슬람계 이주민 때문에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진다고 답했다. 그러나 지금의 베를린을 만든 에너지와 힘은 다문화와 연대, 모임과 대화에서 시작됐다.

젠트리피케이션과 안정적인 주거권의 박탈은 베를린에서도 일상이 됐다. 그리고 도시는 점차 자본의 것으로, 누군가를 위한 상품으로 변모해 갔다. 베를린을 걷던 법학자가 제기하는 질문은 도시를 연구하는 자가 직시해야 하는 현실은 무엇인지로 닿았다. 

저자는 묻는다. “도시의 매력, 저주인가 축복인가?” 도시의 정치와 도시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관광객을 우후죽순 부르는 도시의 탁월함은 축복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진단이다. 사람들이 “살고 싶은 도시는 순식간에 자본이 사고 싶은 도시로 변해 버린다.”

젠트리피케이션과 자본의 공격적인 침투로 인해 도시는 변해 가고 있다. 누군가는 ‘도시도 상품이니 당연한 순서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외친다. “도시는 공물이다!” 도시는 땅과 물, 공기와 하늘처럼 누구나 점유하고 누릴 수 있고, 또 가꿔 나갈 수 있는 대상이다. “도시에 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고 가꿔 온 도시공원, 자유로운 그라피티가 넘쳐나는 거리, 누구에게나 열린 광장도 공물이지만, 그것의 집합체인 도시 그 자체도 하나의 공물이다.”

저자가 공물로서의 도시를 주장하기 위해 택한 방법론은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가 주창한 ‘도시에 대한 권리’ 담론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도시에 대한 권리를 말하며 도시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도시가 작품인 만큼, “도시와 그것의 제작에 참여할 권리, 소유에 대한 권리와 확실하게 구분되는 전유의 권리” 모두 도시민에게 주어진다.

도시를 향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저자는 그를 ‘중심성에 대한 권리’라 표현한다. 이때 중심은 “결정의 중심, (사회의) 부의 중심, 권력의 중심, 정보의 중심”을 의미“한다. 즉, 도시에 사는 모두가 도시와 관련한 결정에서 배제돼서는 안 되며, 사회의 부인 도시를 빠짐없이 즐기고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본은 도시를 상품으로 만들고자 한다.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도시에 거했던 원주민들을 쫓아내야 한다. 베를린에서는 그것이 대형 민간 주택 임대 회사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2000년대 말, 금융 위기 이후 베를린의 공공 임대 주택은 매각됐고, 민간 임대 주택이 자가 주택으로 전환되는 일이 빈번했다. 임대 주체가 공공에서 민간으로 넘어가니, 임대료도 크게 올랐다. 특히 베를린 지역의 임대로 상승 폭이 컸다. “2004년에서 2014년 사이 주요 도시의 임대료 상승률은 베를린이 45퍼센트, 뮌헨이 27퍼센트”였다.

이 이전에도 임대료가 급격히 상승했던 적이 있었다. 1960년대다. 이 시기 독일에서는 토지 투기가 활발했다. 1960년 6월, 당시 집권당이었던 기독교민주당/기독교사회당이 ‘주택 통제 경제의 폐지와 사회적 임차법·주택법에 관한 법률’을 지정했다. 해당 법률은 주택 임차료를 자유화하며 주택 임차인을 쉽게 내쫓을 수 있도록 했다.

베를린 주민들이 택한 방법은 ‘주택 점거’였다. 이들이 택한 방법은 수리 점거(수복적 점거)로, “소유권자가 개발 이익의 상승을 노리고 그냥 방치한 집을 점거자들이 고쳐 가면서 점거 행위를 계속하는” 방법이었다. 이들의 주택 점거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기 위해 투기적 행위에 반기를 들었다. 이들의 구호는 주택, 토지 투기 행위가 ‘애써 가꾼 소중한 마을 공동체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 주장했다. 주택 점거자들은 다른 주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1981년의 한 조사에 의하면, 서베를린 주민 82퍼센트가 불법 빈집 점거를 지지했다.”

이들의 주택 점거가 불법인지 합법인지에 대한 논쟁도 오고 갔다. 지배적인 견해는 “빈집을 점거하면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의견을 지지했다. 그런데 뷔케부르크 구법원의 한 판사, 귄터 뷜케는 방치된 집이 울타리가 쳐진 토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주택 점거자들의 행위가 불법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베를린에서 이어진 반란의 움직임은 2021년의 국민 표결로 닿았다. 바로 주택 사회화 운동이다. 임대 주택 회사들이 장악한 주거의 안정성을 다시 공공의 것으로, 모두의 것으로 바꾸려는 운동이었다. 사회화의 기본 근거가 되는 독일 기본법 제15조는 “생산 수단, 천연자원 및 토지”의 사회적 성격을 고려해 소유제를 구조적으로 변혁하고자 하는 법안이다.

다양한 정치적 논쟁이 오갔지만, 결과적으로 2021년 9월 진행된 국민 표결에서는 베를린 유권자 57.6퍼센트가 주택 사회화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로써 국민 표결은 통과됐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저자는 한국에도 주거권 투쟁이 활발하고 치열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한국의 주거권 운동은 1987~1992년 시기 결정적으로 변화한다. 바로 주거 생존권 운동과 소유권 운동이 나눠지며, 주택을 상품으로 보는 논리가 거세진 것이다. “독일에서 주택 점거 운동이 주택의 탈상품화나 보편적 주거권의 실현을 목표로 했다면, 한국에서 노동 계급의 주택 투쟁은 내 집 마련을 위한 평등한 기회 확대를 추구했다. 이 과정에서 소유권 신화는 더욱더 강고해졌다.”

저자는 “시민 없는 도시 정치가 횡행하는 (서울의) 현실을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고 외친다. 모든 도시민이 참여하는 도시 정치를 만들어야만 위기의 도시를 지킬 수 있다는 말이다. 이를 지향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도시는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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