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정치사상과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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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정치사상과 공공성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9.0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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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제13강_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의 「동양 정치사상과 공공성」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열 번째 시리즈 ‘오늘의 세계’ 강연이 매주 토요일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여섯 섹션 총 5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 공동체에서부터 개인의 실존에 이르기까지 지금 여기의 어젠다를 새로운 시선으로 담론의 장을 펼친다.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관련 현안을 짚어보는 두 번째 섹션 ‘오늘의 동아시아’ 제13강 이승환 교수(고려대 철학과)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동양 정치사상과 공공성


이승환 교수는 흔히 비판적으로 언급되는 “현대 한국인에게 공·사 관념이 희박하게 된 이유를 해명하기” 위하여는 “먼저 전통에서 물려받은 공·사 개념의 범주적 특성을 파악해내고, 전통 공·사관의 문화적 특징”이 근대 국가 이행 과정에서 “어떻게 착종, 변용, 왜곡되었는지” 짚어보는 일이 요구되며, “장차 건강한 공·사관의 정립을 위해 어떤 식의 노력이 필요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한다. 그렇게 볼 때 우선 “전통 동양의 ‘공’ 개념은 역사의 변천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첨가하며 진화해왔지만 의미의 층차상 크게” 세 범주로 정리될 수 있는데 첫째 “정치적 지배 권력 및 지배 영역의 의미, 둘째 “공평성ㆍ공정성 등의 규범적 의미”, 셋째 “공동성[共]의 의미”를 복합적으로 함축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같은 “전통 ‘공’ 개념에 내포된” 세 의미는 한국 사회가 “근대로 진입하면서 뻗어갈 수 있는 세 가지 방향”, 즉 “강한 국가주의로 나아가는 길”,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를 지향하는 길”, 그리고 “공중의 의견과 시민적 참여가 존중되는 공화제 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각각 온축하고 있었지만 실제 한국의 “근대는 강한 국가주의의 길을 걷도록 운명 지워졌다”고 하면서 이제라도 “수많은 영역에서 ‘공’과 ‘사’의 줄다리기”가 불가피하고 그 갈등을 “열린 공론장에서 시민들의 합리적 토론을 통해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면 “전통 ‘공’ 개념의 세 범주 가운데 공론, 공동성, 공화성을 의미하는” 세 번째 ‘공’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지난 8월 19일, 이승환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오늘의 세계>의 13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왜 공·사 개념의 지형도인가?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한국인에게 공·사 관념이 희박한 이유를 전통 시대에 지배 이념으로 군림해온 유교 문화(특히 성리학)의 탓으로 돌리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과 달리, 전통 시대 수많은 유학자들의 저작에서 우리는 ‘공’과 ‘사’의 엄격한 분리를 강조하는 주장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인에게 공·사 관념이 희박한 이유를 막연하게 유교 전통 때문이라고 말하는 일은 별반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현대 한국인에게 공·사 관념이 희박하게 된 이유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통에서 물려받은 공·사 개념의 범주적 특성을 파악해내고, 전통 공·사관의 문화적 특징이 근대 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착종, 변용, 왜곡되었는지 그 과정을 짚어보는 일이 요구된다.

 

2. 전통 동양에서 공·사의 의미

전통 동양의 ‘공’ 개념은 역사의 변천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첨가하며 진화해왔지만 의미의 층차상 크게 다음의 세 범주로 정리될 수 있다.

1) 지배 권력 및 지배 기구로서 ‘공’

전통 동양에서 ‘공’ 개념이 지닌 가장 중요한 의미는 정치적 지배 권력 및 지배 기구를 의미하는 ‘공’이다. 지배 권력 및 지배 기구를 뜻하는 ‘공’ 개념은 『주역(周易)』 『서경(書經)』 『시경(詩經)』과 같은 고대 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공’은 고대 문헌에서 일차적으로 정치적 지배자와 권력자, 그리고 공권력이 지배하는 지배 영역을 가리킨다. 후에 점차 정치 기구와 제도가 정비되어감에 따라 지배 권력 및 지배 기구로서의 ‘공’은 이러한 지배에서 벗어나 있는 영역인 사(私)와 대응 관계를 이루면서 공·사의 개념 짝이 정립하게 되었다. 한비자는 ‘공’을 정의하면서 “사(私)와 등지고 있는 영역이 바로 공(公)이다”(背私爲公)라고 하였는데, 전국(戰國) 후기에는 ‘공’과 ‘사’의 배타적 대응 관계가 확고하게 정립되어가고 있을 짐작케 해준다.

조선 시대에 통용되었던 ‘공’을 포함하는 단어에도, 『시경』 『서경」 등과 마찬가지로 지배 영역이나 지배 기구를 의미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공’은 일차적으로 정치적 지배자나 지배 기구를 가리키며, ‘사’는 공권력의 지배에서 벗어나 있는 개인의 영역 또는 개별 가문과 관련된 일을 의미했다. ‘사’는 국가의 지배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개인이나 개별 가문의 일을 지칭하지만, 부정적으로 쓰일 때는 국가(공법)의 지배 질서에서 일탈하려는 불법 행위를 가리킨다. 

 

2) 공정성ㆍ공평성 등 보편적 윤리 원칙으로서 ‘공’

동양의 고대 문헌에서 ‘공’ 개념은 지배 권력ㆍ지배 기구를 지칭하는 의미 이외에, 공정이나 공평과 같은 보편적 윤리적 원칙을 의미하기도 한다. ‘공’이라는 글자가 공정성ㆍ공평성의 의미로 쓰일 때는 항상 공정(公正)/편사(偏私)와 같은 대비 관계로 표현되고, 정(正)/부정(不正)과 같은 윤리적 대비와 동일시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는 동양의 ‘공’ 개념에 강한 규범성과 윤리성이 깃들어 있다는 증거가 된다.

공권력을 의미하는 ‘공’ 개념이 공정ㆍ공평과 같은 규범적 의미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도가 계열의 천도(天道) 사상이다. 도가에서 ‘천도’는 천지ㆍ자연의 운행 법칙으로, 특정한 목적이나 의도를 지니지 않은 무위(無爲)의 질서로 파악된다. 이로 인해 ‘천도’는 무차별적 평등을 의미하는 ‘공정무사’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성리학자들은 천지ㆍ자연의 무심한 운행에서 무사공정(無私公正)이라는 덕목을 발견했고, 이를 인간 세계에 적용하여 무사(無私)하고 공정한 정치를 행하는 일을 지상 최대의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

‘공’ 자에 내포된 공평성ㆍ공정성의 측면은 덕치 이념의 전개와 더불어 ‘공’ 개념의 중요한 한 축을 구성하게 되었다. 특히 성리학의 핵심 개념인 천리(天理)는 무사ㆍ공정하다는 의미에서 ‘공’으로 간주되었고, 군주 및 사대부-관료가 지켜야 할 보편적 덕성으로 강조되었다. 성리학 이론 체계에서 공/사의 대비는 천리/인욕의 대비와 결부되고, 이러한 대비는 다시 정(正)/편(偏), 정(正)/사(邪), 선/악 등의 대비와 동일시되었다. 따라서 “천리=공정[公]=옳음[是]”을 의미하고, “인욕=사사로움[私]=그름[非]”을 의미하게 된다. 

주자학을 존숭한 조선 사회에서도 ‘공’의 핵심 의미를 공평성으로 파악하고, 공평함이야말로 인(仁)이라는 지고의 덕목을 실현할 수 있는 선결 조건으로 여겼다. 국가 권력과 공공 행정의 공평성을 강조하는 성리학의 이론 체계는 500여 년간 조선 사회를 지탱하는 주도 이념으로 기능하였으며, 이러한 이념은 근대의 전야까지 지속되었다. 이처럼 ‘공’ 개념에 공평이나 공정과 같은 규범적 의미가 강하게 깃들어 있는 데 반해서, ‘사’는 윤리 원칙에 위배되는 불공정하거나 비도덕적 행위를 가리켰다.

3) 다중이 공유하는 의견, 이익, 자원으로서 ‘공’

동양에서 ‘공’은 ‘공동성’ 또는 ‘공공성’을 의미하는 “더불 공(共)”의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공동성을 뜻하는 ‘공’ 개념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건 또는 공동으로 모이는 장소와 같은 고대 공동체 사회의 유습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청 말에 들며 혁명 사상가들은 이전 시대의 전제 왕정을 비판하면서 정치권력의 공공성을 강하게 부르짖기 시작했다. 청 말의 혁명파는 조정과 황제를 ‘공’으로 간주하던 이전 시대의 정치 체제를 비판하고, 조정과 황제는 일성(一姓)ㆍ일가(一家)의 사(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전제 권력이 지니는 사적 성격에 비해, 민(民)을 그 다수성과 전체성 때문에 공(公)의 진정한 담지자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절대 권력을 독점하는 군주정은 인민의 공익을 해치고 국가의 공공성을 해치는 사적인 제도로 규정됨으로써 타도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렇게 정치적 지배 권력과 지배 영역을 뜻하던 ‘공’ 개념은 점차 공정성ㆍ공평성 등의 규범적 의미로 확장되고, 나아가서 ‘함께’ ‘더불어’ ‘공동’의 의미로 진화해나갔다. 이처럼 ‘공’ 개념에 내포된 세 가지 의미 범주는 각기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서로 긴밀하게 연관 관계를 유지하면서 총체적 의미를 구성한다. 즉 동양의 ‘공’ 개념에는 “지배 권력(공1)은 공평무사(공2)하게 행사되어야 하며, 모든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더불어(공3)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3중의 의미가 복합적으로 간직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이라는 개념은 단순 개념(simple idea)이 아니라 “지배 권력(공1)+공평ㆍ공정(공2)+공동성(공3)”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복합 개념(complex idea)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3. 전통 시대 한국 공·사관의 주요한 특징들

1) 공론(公論)의 중시와 국가 권력의 공공성에 대한 강조

조선 시대의 ‘공’ 개념에는 ‘공’의 세 측면(즉 정치적 지배 영역으로서의 ‘공’, 보편적 윤리 원칙으로서의 ‘공’, 그리고 공동성을 의미하는 ‘공’)이 고루 간직되어 있다. 500여 년간 조선 왕조의 지배 이념으로 기능한 성리학의 사유 구조에는 지배 권력으로서 ‘공’이 공정성ㆍ공평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도의적 요청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이이는 정치권력의 공공성과 도의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공론이 “나라 안의 모든 사람의 의견”을 뜻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배 권력의 공공성과 규범성을 강조하는 성리학의 ‘공’ 개념은 한말의 실학자 해학 이기(海鶴 李沂: 1848-1909)에 의해 계승되어 중대한 발전을 겪게 된다. 그는 왕조 시대의 전제 정치를 비판하고 공화제를 주장하였다. 그는 전제 정치란 공동의 것[公]이어야 할 천하를 사유화하는 정치 체제이므로 옳지 않다고 여기고, 통의(通議)와 중론(衆論)을 중시하는 공화제야말로 ‘공’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최선의 정치 체제라고 여겼다. 이기의 공화주의적 정치사상에는 ‘공’ 개념의 세 번째 의미 범주인 ‘공공성’ 또는 ‘공동성’이 의미가 강하게 부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공·사의 동심원적 상대성과 연속성

동양 공·사관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하여 페이샤오퉁(費孝通)은 ‘동심원적 파문’이라는 비유를 동원한다. 동양 사회에서 개인은 원의 중심에 위치하며, 개인을 둘러싼 혈연ㆍ지연 등의 관계를 통해 구축된 인간관계가 동심원의 파문처럼 밖으로 확산되어나간다. 이러한 관계망에서는 중심(개인)으로부터 가까울수록 인간관계 또한 가깝게 되며, 중심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인간관계 또한 멀어지게 된다. 이러한 동심원적 관계망에서 ‘공’과 ‘사’의 구분은 상대적이며 동시에 연속적이다. 즉 중심으로부터 바깥을 바라보면, 중심에 가까운 관계는 ‘사’로 인식되는 반면 바깥은 언제나 ‘공’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동심원적 파문에서 ‘공’과 ‘사’는 연속적이며 상대적이다. ‘공’이란 언제나 “작은 범위를 둘러싸고 있는 더 큰 범위”를 가리키는 개념이며, ‘사’란 “큰 범위 안에 있는 작은 범위”를 뜻하게 된다. 여기에는 고대 그리스에서 볼 수 있는 “공=국가=정치 영역 / 사=가정=경제 영역”이라는 배타적 이분법이 성립하지 않는다.

전통 한국의 공·사관 역시 ‘연속성’과 ‘상대성’의 특징을 보인다. 조선 시대에 ‘공’과 ‘사’는 확고하게 분리된 두 개의 영역이 아니라 항상 신축적으로 유동한다. 더 큰 범위의 관점에서 볼 때 작은 범주는 ‘사’가 되고, 작은 범위에서 보았을 때 더 큰 범위는 ‘공’이 된다.

 

3) 사적 의무와 공적 의무 간의 갈등

성리학에서는 혈친에 대한 효의 의무[親親]를 인륜의 대도라고 보았고, 이를 자연법적 원리(즉 천리)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친친’의 도리를 바깥으로 확장하여 백성들에게 인(仁)을 펼치는 일을 성왕의 정치라고 보았다. 성리학의 이론 구도에서는 이처럼 친친(親親)이라는 사적 규범이 무아(無我)라는 공적 덕성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보았지만, 현실에서 ‘친친’이라는 사적 의무는 종종 존존(尊尊)이라는 공적 의무와 갈등을 하고 충돌을 빚었다. ‘친친’은 가족에 대한 의무라는 점에서 사적 영역에 속한다. 하지만 ‘존존’은 국가에 대한 의무로서 공적 영역에 속한다. 혈친에 대한 의무는 비록 정치 영역상의 구분으로 보자면 ‘사’에 속하지만, 유교 윤리에서 보자면 ‘사’를 뛰어넘는 보편적 윤리 원칙 즉 천리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서필원과 송시열 사이에 전개된 이 논쟁은 정치 영역상의 구분에서만 보자면 ‘사적 의무’와 ‘공적 의무’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유교라는 큰 틀에서 보았을 때는 ‘윤리 영역의 공’과 ‘정치 영역의 공’ 간의 충돌이라고도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윤리적 공’과 ‘정치적 공’을 동시에 다 수행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느 의무를 더 중시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당시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송시열이 중심이 된 노론의 사회 구성 원리에서는 사적 의무[親親=孝]가 공적 의무[尊尊=忠]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공적 의무와 사적 의무가 갈등을 빚을 때 사적 의무를 더 중시하는 이러한 입장은 훗날 한국의 근대화의 과정에서 오히려 가족 이기주의와 집단 이기주의로 변질되어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4) ‘사’의 억압, ‘공’의 강조

조선 시대의 ‘사’ 개념은 ‘공’과 대립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부정적인 의미를 수반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즉 ‘공’이 지배 권력이 가지는 정당성을 의미한다면 ‘사’는 지배 권력에서 벗어난 일탈이나 불법 행위를 가리키고, ‘공’이 공정ㆍ공평과 같은 윤리 원칙을 의미한다면 ‘사’는 이에 위배되는 편파적이고 불공정한 행위를 가리킨다. 또 ‘공’이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협동적 의지를 가리킨다면 ‘사’는 이에서 벗어난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욕망을 뜻한다.

‘공’에 대한 강조와 ‘사’에 대한 억압의 문화적 유전자는 한국이 근대 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기능과 부정적인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였다. 먼저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공정성ㆍ도의성을 의미하는 공(2) 개념은 다수의 의지를 의미하는 공(3)과 더불어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서 민주화를 진전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국가 권력의 규범성과 공공성을 요구한 저항적 지식인들의 견해가 꼭 서양으로부터 전해받은 근대 정치사상의 영향만은 아니며, 정치권력의 규범성과 공동성을 강조했던 전통 사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적 유전자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공’에 대한 강조와 ‘사’에 대한 억압은 한국 사회가 근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또한 ‘공’과 ‘사’의 범주를 상대적이고 연속적으로 바라보는 전통문화의 관행 속에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무원칙적으로 넘나드는 공·사 범주의 혼동이 빚어지기도 하였고, 내 가족과 내 지역을 위하여 국가 전체의 공공성을 외면하는 범주 착오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4. 나가면서

전통 시대의 공·사 개념에서 ‘공’은 ①정치적 지배 권력 및 지배 영역의 의미, ②공평성ㆍ공정성 등의 규범적 의미, ③공동성[共]의 의미를 복합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전통 ‘공’ 개념에 내포된 이러한 세 의미는 우리 사회가 근대로 진입하면서 뻗어갈 수 있는 세 가지 방향을 온축(蘊蓄)하고 있다. 즉 ①강한 국가주의(공1)로 나아가는 길, ②공정하고 공평한 사회(공2)를 지향하는 길, 그리고 ③공중의 의견과 시민적 참여가 존중되는 공화제 사회(공3)로 나아가는 길 등의 세 가지 가능성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가능성 가운데, 우리의 근대는 강한 국가주의의 길을 걷도록 운명 지워졌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특히 우리의 근대화가 ‘밖으로부터’ 그리고 ‘위로부터’ 추진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비극은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공’은 국가 또는 민족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고, ‘공’ 개념에 간직된 다른 가능성들 즉 공평하고 공정한 사회를 향한 꿈 그리고 공중의 참여가 보장되는 공화주의적 정치 이상은 우리의 근대화 과정에서 실현되기 어려웠다.

권위주의적 개발 드라이브와 성장 지상주의의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전통 공·사관이 내포하는 ‘공평성’의 이상과 ‘공공성’의 지향을 외면한 채 오로지 국가 권력에만 ‘공’으로서의 지위를 독점적으로 부여하였다. ‘공’이 국가주의적 종교처럼 강요되는 상황에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나 공적 덕성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더욱이 ‘사’를 ‘공’과 대립되는 비윤리적인 것으로 여겨온 전통문화의 관성 아래서, ‘공’을 배타적으로 독점해버린 국가 권력은 건전한 사익을 추구하는 자유주의의 목소리마저 움츠러들게 하기도 했다.

어둡던 권위주의 시대가 저물고 (형식적으로나마) 민주화가 이루어졌지만, 더 많은 자유를 요구하는 ‘사’의 목소리는 공공성 또는 공동성을 요구하는 ‘공’의 목소리와 갈등을 빚는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고 사익 추구가 긍정되는 자유주의 사회에서 사익과 공공성 사이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줄다리기 싸움이다. 수많은 영역에서 ‘공’과 ‘사’의 줄다리기는 계속되고 있다.

개인의 자유(사적 영역)와 공공성(공적 영역)의 경계를 한칼로 가를 수 있는 선험적인 기준이 없는 한, 사익과 공공성 사이의 갈등은 열린 공론장에서 시민들의 합리적 토론을 통해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 전통 ‘공’ 개념의 세 범주 가운데 공론, 공동성, 공화성을 의미하는 ‘공(3)’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강연 바로보기: [열린연단]_ 동양 정치사상과 공공성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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