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21세기에 ‘제주4·3의 사상사론’을 구상하는가? - 제주를 매개로 세계와 소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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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21세기에 ‘제주4·3의 사상사론’을 구상하는가? - 제주를 매개로 세계와 소통하기
  •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정치학
  • 승인 2023.09.0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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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빈 교수의 〈동아시아 담론〉

 

                             제주4.3평화공원 내 기념관의 한 켠을 장식하고 있는 4.3사건의 희생자들

진보적 이상은 항상 패배하나?


“정의와 진실은 현실 속에서 끝없이 패배한다. 
다만 긴 역사 속에서 승리할 뿐이다.”

                                                      - (조정래, 《한강》4권, 78면) -


   한국사에서 진보적 개혁가와 민중들은 거의 국가권력에 압살당하고 심지어 학살당해왔다. 진보적 이상은 메아리로 사라지고 현실 세계는 항상 반도덕적인 공리 추구가 인생 목적인 자들이 지배해왔다. 현재 우리는 그 보기 싫은 껍데기들의 난장판 정치를 직접 목도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를 단기간 사건 중심이 아닌 중장기적인 추세로 관조하면 진보적 시민-지식인의 개혁 열정은 사라지지 않고 공동체의 잠재의식 안에 스며있다. 우리 교과서는 3·1운동(1919)이 실패했다고 가르친다. 나는 그 논리에 결연히 반대한다. 3·1운동은 가시적으로는 일제를 몰아내는 데 실패했을지라도 그 정신만은 중국의 5·4운동을 자극하였고 당시 피식민지 민중에게 거대한 저항에너지를 전달하였다. 이후 상해임시정부를 수립하는 동기로 작용하였고, 오늘날까지 제국-국가의 폭력정치에 대한 저항정신은 계승되고 있다. 제주4·3도 그러한 열정의 계승과 분출로 보고 싶다. 조정래 작가의 화두는 그러한 역사적 의미를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화산도》가 그리는 제주의 시공간

   제주4·3을 그린 대하소설 《화산도》(2015, 김석범)의 주인공 이방근은 제주의 여러 공간을 돌아다닌다. 그는 등장인물 모두와 관계를 맺고 대화하는 유일한 중심인물이다. 그는 넓은 의미에서 가해자 그룹의 일원이기도 하고, 저항하는 지식인이자, 또한 피해자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이 모든 서사를 관조하면서 독자들에게 설명해주는 인물이다. 소설에서 그가 배회하는 공간은 제주의 광화문 격인 관덕정 부근과 원정로(통), 북‘국민’학교 부근과 뒤쪽(속칭 무근성), 그리고 ‘동부두’(현재 제주항)이다. 이 장소들은 내가 어릴 때 살면서 돌아다니던 추억이 깃든 지역이다. 

 

   그렇게 포악한 범죄를 저질렀던 서북청년단 소굴이 관덕정 부근에 있던 것인 줄은 어린 시절에는 몰랐다. 소설은 왜 제주시에서 가장 모던(modern)한 공간인 칠성로(당시 제주시의 명동, 일본식으로 속칭 ‘칠성통’으로도 불렸음)를 언급하지 않았는지, 그게 조금 아쉬웠다. 작품에서 시대적 통찰을 가장 앞서 체감한 ‘모던 보이’ 방근이 일본식 ‘제주 모던’의 공간에서 ‘고히’(커피의 일본 발음) 한 잔을 안 했다는 게 좀 기묘하다. 내가 칠성통의 중간에 일제강점기 일인이 경영하던 2층 목재 여관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어서다. 여러 개 다다미방 앞의 긴 복도를 동생과 쿵쾅거리며 뛰어다녔던 추억이 있다. 그 때문에 아래층 사는 동네 할머니가 어머니와 실랑이를 벌인 적도 있었다. 그때 지은 업보를 생각해서 나는 지금 위층 애들이 쿵쾅거리는 데도 좀 참고 지내는 편이다. 

   어쨌든 관덕로에 있었던 서청은 제주에서 고립적이며 순종적인 원주민을 대하고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아무리 폭력을 행사하여도 주위에 보는 외지인도 없고, 더구나 그들의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빨갱이 담론’과 숭미-우익세력과 미국이라는 강력한 후원자도 있다. 즐거운 폭력이었을 것이다. 반면에 제주인과 4·3 민중무장대는 고립무원이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과 제주라는 공간에 누구의 행동을 옹호하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외부세력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역사는 승자의 담론패권이 주도적으로 기록하고 그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학교에서는 그것을 배우고 시험까지 치른다. 미세동점의 패권이 없었다면 한국인과 제주인이 스스로 4·3담론을 구성하고 정당성을 부여했을 것이다. 

   우리가 4·3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외부세력들, 이른바 미국, 소련, 남한의 숭미-우익정권, 북한 정권의 지식권력에 의해 규정되었던 담론을 해체하고 그야말로 나의 주체의식에 의한 해석의 공간을 열어젖히려는 시도이다.


파리의 깊은 밤(Midnight in Paris)

   영화 ‘파리의 깊은 밤’(2011, 우디 앨런 감독)에서 사람들은 모두 자신에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의식의 시공간에서 살려고 한다. 영화에서 보는 다(多)시공간의 통로인 파리의 밤길이 상징하는 것은 바로 나의 의식의 시공간이지 남의 그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탈근대의 시공간 의식을 가지고 4·3 당시 ‘제주의 그때’로 타임슬립 하려고 한다. 

   나는 의식의 시간여행을 통해 ‘제주의 깊은 밤’(Midnight in Jeju)이라는 영화를 감독하고 싶다. 물론 제목은 ‘제주4·3의 사상사론’이다. 그러나 당시 제주의 밤은 파리의 ‘벨레포크’(Belle Epoque, 좋았던 시절)처럼 그다지 낭만적인 기쁨과 예술적인 비애의 시공간이 아니라 차라리 《레 미제라블 Les Misérables》(1862, 빅토르 위고)의 ‘비참한 사람들’처럼 주눅이 들어 죽지 못해 살던 시절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이어 도래한 미세동점 체제는 동아시아에 패권적 지배기제를 체계화하기 위해 남북대결 구도를 조성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미군정은 소프트파워에 의한 공감의 지배가 아닌 제주4·3을 구실로 삼아 사회적 공포를 확산하고 제주에서의 초토화 작전을 배후 조종하여 당시 미군정과 숭미-우익의 사냥개 길들이기 방식의 통치에 대한 시민의 불복종과 저항을 잠재우려 하였다. 결국, 제주4·3은 동아시아 냉전체제 구축의 시발점이 되었고 한반도 분단으로 이어졌다. 

   당시 미세동점에 편승한 국내 숭미-보수세력은 ‘공감의 정치’보다 ‘원한과 공포의 정치’를 자행할 정도로 탈역사적이고 탈정치적이었다. 이른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종식된 후에 전쟁을 초래한 무능한 세력이 다시 정치무대에 등장한 역사가 해방 후 재현한 것이다. 

   당시 ‘제주의 밤’은 ‘파리의 밤’처럼 예술가들의 포도주가 아닌 군경의 총칼이 살벌하게 번득이고 있었다. 

 

1948년 5월 5일 제주 4·3 대책회의 참석을 위해 제주비행장에 도착한 미군정 간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주 4.3아카이브 제공

제주를 매개로 세계와 소통하기

   이러한 문제의식에 쌓인 채 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왜 제주를 사유하는가?’라는 의문에 나름으로 답변을 찾고 있다. 또한, 다른 연구자에게 질문을 던져 본 적이 있다. 마침내 찾아낸 것은 ‘제주를 매개로 세계와 소통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공자, 간디, 칸트, 마르크스의 사상을 매개로 세계와 소통을 할 수 있으며 하는 중이다. 유교사상으로 동아시아의 성원들은 소통하고 있으며, 또한 서양과도 토론하고 있다. 그런데 제주를 매개로 한반도,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와 소통할 수 없다면 왜 제주를 연구해야 하나? 단순히 제주의 알려지지 않은 무엇을 발굴하기 위해서라면 문제는 간단하다. 그러나 그러한 발굴이 내가 사는 세상 - 우리 마을, 제주, 한반도, 동아시아, 세계 - 에서 어떤 식으로 연동하고 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 그것으로 오늘날과 미래에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가를 사색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21세기를 맞아 근대가 창안한 서양 중심주의와 국가주의적인 개념들이 파편화하는 세상에서 4·3연구는 숭미-보수권력에 의해 은폐된 사실과 학살의 기록을 발견하는 데 멈추지 말고 ‘탈근대적 문제의식’으로 사상사적인 재해석을 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제주를 한반도 정치론의 맥락을 넘어서 동아시아 사상사론에 연동시켜야 한다. 이러한 확장된 시각을 연구 조망으로 활용하려는 이유가 있다. 이른바, 제주의 신화를 발굴하는 작업을 의미 있게 만들려면, 그리스신화가 시공간을 넘어 세계인과 소통하고 철학적 사유의 통로가 되는 배경을 참조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제주4·3 평화공원

세계시민의식으로 바라보는 제주 

   이렇게 제주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탈근대적 전환의 동기는 근대의 우상이자 최종 목표였던 국가주의의 벽을 허물고 ‘탈국적의 세계시민의식’에서 문제를 바라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갈등과 저항이라는 무한정한 악순환의 순환을 넘어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는 제주의 가치, 즉 ‘천인합일의 자연주의’와 ‘반전평화주의’의 함의를 더 명백히 밝히고 세계에 확산시키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이야말로 ‘세계시민의식’(world citizenship)을 발휘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 함의는 ‘자신의 국적구속성의 한계를 초탈하여 인류가 처한 문제들에 대해 공동선의 추구라는 관점에서 비평하려는 정신’으로 정의한다.

   제주를 바라보면서 지역주의(locality) 조망보다 세계시민의식을 주창하는 이유는 전자의 편협함을 의심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개인의 역사는 세계사”(다치바나 다카시)라는 명제를 믿기 때문이다. 이를 참고하면 지역주의(개인)로서 자기중심성(고유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다원성을 의식해서 타자의 중심성도 수용한다. 그래서 자신과 타자의 중심성마저 벗어나면 ‘다원적 탈중심성’으로 나아가 탈경계주의에 이르게 된다. 나는 곧 세계시민이라는 의식, 제주가 곧 세계의 일원이라는 탈경계의식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렇게 ‘탈경계주의로서의 지역주의’라는 복잡한 논증 과정을 거치면서 세계의 모든 문제에 대한 ‘비판의 준거’로서 ‘세계시민의식’이야 말로 가장 공정한 잣대라는 확신에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세계인의 시각으로 동아시아의 작은 지점인 제주4·3을 사고하는 목적은, 자신이 곧 ‘능동적 주체’가 되기 위함이다. 나의 운명을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주체적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자신의 사고와 삶을 제국-국가의 지배기제에 매몰하지 않기 위한 길이며 또한 문화와 지식의 탈경계주의에 도달하는 길이다. 따라서 21세기에 동아시아 사상사론의 무대 위에 제주4·3을 소환하는 것은 주체적 세계시민이 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정치학

런던대학(SOAS)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제주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아시아 사상과 역사논쟁에 흥미를 가지고 현재 동아시아의 사상사적 문제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 근현대사 역사의 현장』(공저), 『동아시아 담론의 논리와 지향: 비판이론의 탐색』이 있으며, 그 외 동아시아담론, 중국, 일본, 티베트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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