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의 현실 참여 ··· 젊은 교사의 죽음을 마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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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현실 참여 ··· 젊은 교사의 죽음을 마주하며
  • 송경오 조선대·교육학
  • 승인 2023.08.27 0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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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직설]

얼마 전 서이초 젊은 교사가 세상을 등졌다. 교사와 학부모 간 갈등이 어제 오늘 생긴 일시적 현상은 아니지만, 이로 인해 교사가 극단적 선택까지 하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최근 늘고 있다. 오랫동안 권위주의 학교문화가 깊숙이 자리잡아 온 우리나라 학교에서 최근 학생 인권존중이 강조되기 시작하면서 학부모의 학교 참여는 커진 반면, 그에 비례하여 교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견제 장치는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이유가 크다.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교사 단체와 학부모 단체 간 갈등은 심화되고, 학생인권조례와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을 둘러싼 이념 간 다툼도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이처럼 학교현장이 어려움에 휩싸여 있지만, 이 교육 현상을 제대로 연구하여 profess(어원: 앞서서 이야기하다)하는 professor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필자가 교육행정학자로서 대학에 근무한지 16년이 되었는데, 이 세계를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름 지켜야 하는 불문율이 있다. 교육현상을 연구하되, 현 시점에서 가장 논쟁이 되는 교육문제는 연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논쟁이 될 만한 교육문제는 외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교수들 간에 공공연하게 퍼져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영어몰입식 교육의 효과를 둘러싸고 학교 현장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지만, 관련 이슈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정책의 효과를 규명해 주어야 하는 학계는 침묵하였다. 그럼 교수들은 대체 무엇을 연구하는 것일까? 업적 쌓기에 바쁜 젊은 교수들은 실적을 쉽게 올릴 수 있는 연구에 매달린다. 해서 자료와 방법이 있으면 여기에 맞추어 연구문제를 선택하다보니 사소한 이슈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외국 저널에 실린 논문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주는 보상체제 때문에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교수들도 외국 저널에 실릴만한 연구주제를 찾아 연구한다. 따라서 우리 교육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적 연구는 학자의 관심 밖에 있게 되고, 학교현장과 유리된 공허한 지식 쌓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교육학 교수들이 오히려 학교 현장의 현실에 둔감하다. 때로는 현실참여와 교육실천 개선이라는 말에 상당한 거부감까지 갖는다. 교수가 탐구하는 학문적 본령은 상아탑으로 상정된 고립된 학문 세계에만 존재하고, 현실 세계에 참여하는 일은 정치의 세계에 발을 딛는 외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교육학자들이 학문 세계와 교육 현실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생기는 모순이다. 교육학 교수가 탐구해야 할 대상이 바로 교육주체들(교사, 학생 등)이 발 딛고 선 곳, 그 현실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는다면 교수의 현실참여는 학자로서 해서는 안 될 외도가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봐야 하는 ‘본연의 역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여 년 전 필자가 미국에서 공부할 당시, 부시 정부가 NCLB(No Child Left Behind) 교육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할 때 미국 교육학자들이 보여준 현실 참여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세미나와 학회에서 개인적으로 또는 그룹으로 모여 NCLB가 학교현장을 어떻게 바꿔놓고 있는지, 이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들에게 어떤 어려움을 주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공유함으로써 결국 정책 폐기를 이끌어낸 바 있다. 이웃 일본의 경우에도 오사카대 오노다 마사토시 교수는 교사와 학부모 간 갈등 문제를 무려 38년간이나 연구하여 연구결과를 일본 학계와 학교현장에 제시하였다. 마사토시 교수는 최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이번에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을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심각한 문제로 보고, 학문적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경향신문, 2023. 8. 2. 인터뷰 중)”라고 당부하고 있다. 

도덕적 행위자로서 지식인의 책무는 ‘인간사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문제에 대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진실을 찾아내 알리는 것(노암 촘스키, 1997)’이다. 젊은 교사들이 죽음을 선택하게 만드는 가혹한 학교 현장의 현실을 교육학자들이 마주하지 않는다면, 교육학이란 학문의 존재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교육학자로서 우리의 책무는 마주한 교육현실을 적당히 외면하지 않고, 현재 시점에서 문제가 되는 학교 현장의 실천적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연구를 수행하는 데부터 시작해야 한다. 실천적 문제 해결은 학문 세계 밖에 있는 정치권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라, 응용학문인 교육학자들이 일상적인 연구활동에서 지녀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교육정치학회에서 ‘교권과 학생인권의 관계,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가’를 주제로 2023. 9월 학술 심포지움을 개최한다고 한다.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송경오 조선대·교육학

조선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이화여대 교육학과를 졸업했으며, 미시간주립대학에서 교육정책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광주교육발전협의회에서 위원으로, 대학에서 교무부처장과 교육혁신부원장으로 봉사하였다. 한국교육정치학회, 한국교육행정학회, 한국교원교육학회 학술위원장을 맡으며, ‘정치교육론’(공저), ‘한국교육행정론’(공저), ‘대학평가의 교육정치학’(공저)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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