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R&D 예산 삭감에 과학계 충격…올해 대비 13.9% 삭감·출연연 예산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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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R&D 예산 삭감에 과학계 충격…올해 대비 13.9% 삭감·출연연 예산 10.8%↓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8.2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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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기정통부, R&D 제도혁신 방안 및 내년 R&D 예산 조정결과 발표
- 尹 '연구비 카르텔' 지적에 8년 만에 줄어든 R&D 예산…내년 3.4조 삭감
- 연구개발비 역사상 첫 삭감에 과학계 충격…“국가 경쟁력 결국 훼손될 것”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연구·개발(R&D) 제도 혁신방안’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3.8.22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비효율과 카르텔적 요소가 있다며 결국 3조 원 넘는 예산 삭감과 함께 R&D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정부는 내년도 연구개발 예산을 올해보다 13.9% 줄인 21조 5천억 원으로 책정했다. 기초연구분야는 6.2%, 출연연 예산은 10.8% 줄였다. 연구개발 사업에 상대평가를 도입하고, 하위 20%에 대해 구조조정도 예고했다.

역사상 첫 삭감이다. 가뜩이나 적은 연구개발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연구원들은 새로운 연구사업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라며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일선 연구현장에서는 연구비를 늘리기는커녕 사실상 연구개발 사업비가 30% 가까이 줄고 단기 성과에 매달리는 부작용이 예상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 사상 초유의 'R&D 예산' 삭감

정부는 내년 주요 연구개발사업 예산으로 전년 대비 13.9% 감소한 21조 5,000억원을 투입한다. 올해 예산을 전년대비 1.7% 증가한 24조 7,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것과 상반된다. 이는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연구개발(R&D)은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데 따라 이뤄진 조치로 보인다.

특히 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 내년도 주요 사업비도 올해보다 약 10.8%를 삭감키로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2일 제4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에 상정‧논의된 ‘정부R&D 제도혁신 방안’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결과’를 발표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는 과학기술 분야 최상위 의사결정 기구다. 과학기술 분야별 중장기 정책 및 기술확보 전략, 관련 연구개발 예산 배분 등을 심의한다.

이날 발표된 내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결과를 살펴보면 올해 24조 9000억원보다 약 3조 4000억원 줄어든 21조 5000억원이 반영됐다.

과기정통부는 기업 보조금 성격의 나눠주기식 사업, 성과부진 사업 등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한 결과, 108개 사업을 통폐합 하는 등 3조 4000억원 규모의 구조조정을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우선 국가전략기술과 인재육성, 미래전략기술 등 혁신 R&D에 총 10조 원을 투자한다.

국가전략기술에 투자되는 비용은 5조 원으로 지난해보다 6.3% 늘어났다.

특히 첨단바이오(16.1%↑), 인공지능(4.5%↑), 사이버보안(14.5%↑), 양자(20.1%↑), 반도체(5.5%↑), 이차전지(19.7%↑), 우주(11.5%↑) 등 7대 핵심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로 했다.

국제협력과 인재 양성에는 2조8천억 원을 투자한다.

국내외 우수그룹 연구와 글로벌 R&D 지원 확대를 위해 보스턴 바이오협력 프로젝트에 845억 원을 새로 투입한다.

또 젊은 연구자 성장을 위한 신진연구비와 연구실 구축 비용 등을 대폭 늘려 올해보다 45% 늘어난 3천142억 원을 투자하고, 기초연구사업 학생인건비 의무지출 비율도 높인다.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기대되는 첨단바이오와 양자, 우주, 차세대 원자력 등 미래전략기술에는 2조5천억을 투자해 혁신 기술의 내재화와 민간역량 강화를 집중 지원한다.

첨단주력산업 분야에는 3조1000억원을 투입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첨단모빌리티 등의 핵심기술 확보와 관련 소재‧부품의 초격차 유지에 투자한다. 디지털 융합에는 1조6000억원을 배정해 6G, 초거대 인공지능(AI), 사이버보안 등 차세대 디지털 기술 확보에 집중 투자하는 등 세계최고 수준의 디지털 역량확보를 지원한다.

국가 임무수행을 위한 필수 R&D에는 8조7천억 원을 투자한다.

국방 분야는 무기체계 기술개발 고도화와 필수요소기술 확보를 차질 없이 추진하도록 지원하고, 공공 R&D 분야는 마약범죄 근절을 위한 전주기 R&D를 지원하는 등 일선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에 중점 투자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다중밀집 안전사고, 호우로 인한 도시침수 등 재난재해에 선제 대응하는 기술개발에도 투자하기로 했다.

탄소중립 분야는 탄소 다배출 업종의 저탄소 전환, 수소기술 등 핵심R&D를 중심으로 투자하며 사업화 분야는 공공기술 사업화나 첨단기술 분야 초기 창업 등을 중심으로 지원한다.

특히 올해부터 본격 운영을 시작한 범부처R&D통합관리시스템(IRIS)은 사용이 불편하다는 연구현장의 목소리를 반영, AI·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을 접목시켜 투명한 연구관리와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는 ‘IRIS 2.0’로 전면 고도화해 활용할 계획이다.

올 하반기부터 매년 성과 저조 사업, 국회 등 외부 지적 사업 등 낭비적 요소가 있는 사업은 ‘재정집행 점검단’을 통해 면밀히 재정집행 점검을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구조조정하거나 차년도 예산을 삭감한다. 또한 그간 온정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R&D 사업평가에 상대평가를 전면 도입해 하위 20% 사업은 구조조정에 돌입한다.

최대 30% 연구비 삭감이 예상됐던 출연연은 올해 2조 4000억원보다 약 3000억원 감소한 2조 1000억원(-10.8%)을 투자한다. 이는 전체 R&D 감소율 13.9%보다 낮은 수준이며, 연구기관 운영에 필수적인 인건비와 경상비는 전년 수준을 유지했다. 특히 출연연 전체에 대한 별도의 통합재원 1000억원을 조성, 혁신적 연구성과 창출이 가능한 출연연 연구협력단에 집중지원한다. 출연연 연구협력단을 경쟁을 통해 선별함으로써 출연연 연구자들이 경쟁과 협력을 통해 범국가적 핵심임무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그동안 누적된 비효율을 과감히 걷어내어 효율화하고, 예산과 제도를 혁신하여 이권 카르텔이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며 “특히 R&D 비효율을 미리 예방하고 대처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무한한 책임을 느끼며, 과기정통부부터 먼저 혁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2일 제4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에 상정·논의된 '정부R&D 제도혁신 방안'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결과'를 발표했다. (사진=과기정통부 제공)

◇ 예산 삭감에 과학계 충격…“국가 경쟁력 결국 훼손될 것”

정부가 30년 넘게 꾸준히 늘려오던 연구개발(R&D) 예산을 내년에 삭감하겠다는 방침을 세우면서 과학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수십 년간 R&D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과학기술 선도국들과 비교하면 비교적 R&D 관련 예산을 크게 늘린지 얼마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수 부족을 이유로 예산을 삭감할 경우 자칫 추격은커녕 격차가 벌어질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일선 연구자들이 당혹스러움을 넘어서 참담함까지 이야기하는 건 정부의 국가 R&D 예산 삭감이 과학계의 의견 수렴 한 번 없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R&D 예산 삭감을 추진하면서 문재인 정부 때 R&D 예산이 무분별하게 증가했기 때문에 비효율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정권마다 중점을 두는 분야는 달라도 R&D 예산 자체를 줄이는 경우는 없었다. 실제로 국가 R&D 예산이 삭감된 건 1991년이 마지막이었다. 전체 예산 대비 R&D 예산 비중은 늘 5%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정부 지출 자체가 늘어나면서 국가 R&D 예산도 덩달아 뛰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때인 2017년 19조5000억원이던 국가 R&D 예산은 지난해 29조원을 넘어섰다. 불과 5년 만에 10조원이 늘어난 것이다.

이를 놓고 정부와 여당은 문재인 정부 때 소부장 대응과 감염병 대응을 위한 R&D 예산이 대폭 증가했다가 줄어들지 않는 등의 비효율이 심각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면서 R&D 부처와 기관, 브로커가 공생하는 카르텔이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국민의힘 과학기술특별위원회는 지난 21일 브리핑에서 “지난 2012년부터 정부 R&D 예산은 2배 정도 증가한 반면, 연구관리 전문기관은 4배 이상 늘었다”며 “국가경쟁력 강화에 쓰여야 할 예산이 관리 기능만 늘어나는 엉뚱한 곳에 쓰인 셈”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과기정통부가 개선 방안을 내놓는 자리에서도 카르텔의 실체는 불분명했다. 국가 R&D 예산 삭감안을 마련한 실무진인 오대현 연구개발투자심의국장은 “카르텔적인 요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 특정 사업이 카르텔이라고 지목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도 구체적인 카르텔의 사례를 들지 못했다. 당정 협의 과정에서 중소기업이 국가 R&D 사업을 딸 수 있게 브로커가 활동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30조원의 국가 R&D 예산에서 극히 일부분에 그친다.

한 과학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브로커를 잡는 것도 중요하고, 나눠먹기식 R&D 사업을 제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런 부분을 다 모아봤자 얼마나 될 지 의문”이라며 “실체도 없는 카르텔 때문에 국가 R&D 예산 전체를 줄이는 건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4대 과학기술원 소속의 한 교수도 “R&D 예산을 삭감하는 건 중차대한 일인데 대통령의 한마디에 불과 두 달도 안돼서 예산이 뭉텅뭉텅 날라갔다”며 “세수가 줄어드니 모두가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취지는 알겠지만, 이런 식으로 과학계를 카르텔로 몰아가면서 국가 R&D 투자를 줄이면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의 경쟁력 자체가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예산 삭감의 타깃이 된 출연연 기관 주요사업은 유사 중복연구, 연구독식 등 이권카르텔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면서 “정부가 강조하는 세계적 수준의 국제 공동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단기 전략이 아닌 장기적 관점의 체계적인 전략을 바탕으로 추진해야 하는데 그 내용은 찾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다른 출연연 관계자도 “소부장 대응이나 감염병 대응에 들어간 R&D 예산을 정상화할 거면 그 분야만 줄이면 될 일이지 왜 아무런 상관없는 출연연 예산까지 전부 20% 일괄 삭감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기술로 먹고 사는 나라였는데 이런 식으로 기초연구에 들어가는 투자를 갑자기 줄이면 연구의 연속성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고민 없이 과학계 전반에 너무 급격한 변화를 일으킨 것 같다”고 말했다.

제15회 한-유럽 과학기술학술대회(EKC2023)’에 참석한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은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대해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방향은 맞지만 방식은 잘못됐다.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사용되면 현장과 소통하면서 합리적으로 조정해야지 일괄적으로 깎으면 혼란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의견을 밝혔다. 

김 이사장은 출연연 비효율 개선이 필요하다는 정부 정책 방향에는 동의했다. 김 이사장은 “지금은 학생이 없어서 연구를 못하는 것이지 돈이 없어서 연구를 못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예산이 늘어난 만큼 효율적인 배분에 고민해야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예산 비효율을 개선해야 한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은 맞다”고 했다.

문제는 출연연의 비효율 개선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일괄적인 예산 삭감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김 이사장은 “과제 당 인건비 비중을 높이는 등 제도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것들에는 손대지 않고 일괄적으로 예산을 삭감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은 현장에 책임을 떠넘기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예산을 일괄 삭감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배분이 되고 있는지, 배분 과정이 적정한지 등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토대로 혁신 방향을 잡아갔다면 현장에서도 충분히 이해를 했을 것”이라며 “지금은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 카르텔 집단처럼 비춰지면서 연구자들이 상당히 위축된 상황”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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