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지(月支)의 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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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지(月支)의 후손들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학교
  • 승인 2023.08.21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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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호탁 교수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_ 월지(月支)의 후손들

 

과거의 일을 후대에 기록하는 사서가 모든 것을 다 기록할 수 없고, 모든 일을 다 진실되게 전할 수 없다. 다만 사서 편찬자의 객관적 시각에 따라 사실을 선정하고 양심적 기술을 해야한다는 조건이 요구될 뿐이다.

현재 강릉의 인구는 22만 명을 상회한다. 강릉은 전국에서 사람 살기 제일 좋은 곳으로 인식되어, 외지인의 이주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자연도시요 문화도시다. 일제에 의해 『강원도지(江原道誌)』가 발간되던 해인 1940년 강릉의 주민 수는 지금의 절반 수준인 104,572명에 이르고 있다. 가구 수가 18,623호인 점을 감안해 계산하면 1가구당 평균 5.6명의 구성원이 동거하고 있던 셈이다.

 

一萬八千六百二十三戶. 內地人三百八十七戶 朝鮮人一萬八千二百二十八戶 外國人八戶.
十萬四千五百七十二人. 內地人一千五百四十二人 朝鮮人十萬二千九百九十人 外國人四十戶口
  (출처: 江原道誌, 11권 6책 중 3卷 176면)

 

위 인용문에 나오는 내지인(內地人)은 누구를 말하는 걸까? 조선에 와 살고 있는 일본인을 가리킨다. 일본 패망 전인 1940년 식민지라고 생각한 조선 땅으로 이주한 이들 재한일본인이 무려 387가구 1,542명이나 강릉땅의 주민으로 살고 있었다. 또한 당시 강릉 거주 일본인은 1가구에 4명이 함께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직도 남아있는 일본식 주택들이 이들이 실재했음을 증거한다.

668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고구려가 정복되고 이듬해인 당 고종 총장 2년 당나라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의 숫자가 물경 3만 8천 3백호라고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는 전한다. 1,200여년이라는 간극을 무시하고 볼 때 대략 40만의 고구려인들이 전쟁 포로로 잡혀갔음을 알 수 있다. 낯설고 물 설은 이국땅에서 전쟁 포로라는 신분으로 살아가야 했던 이들 고구려인들의 고난에 가득 찬 삶과 그들의 족적에 대해서는 중국사서도 이렇다 할 애정을 갖고 기록하지 않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구려 유민의 후손인 고선지장군에 대해서 우리 측 사서 어디에도 단 한 줄의 언급이 없지만 중국사서인 구당서, 신당서, 자치통감 등에는 그의 일대기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문헌에 의거해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다 보면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참으로 많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접촉 언어학의 관점에서 현 중국 감숙성 기련산맥 일대를 주거지로 유목생활을 하던 월지족의 서천이 중앙아시아 사회에 미친 영향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기원 전 2세기 서역의 패권을 쥐고 있던 월지족이 흉노와의 싸움에서 패해 서방으로 이동한 사실과 그로 인한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상당한 기록과 연구가 이루어졌다. 후일의 인도 쿠샨왕조가 다름 아닌 서역으로 이주한 월지족의 후예들이 수립한 정권이라는 점도 이의 없이 수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월지족의 동천(東遷)이나 남천(南遷)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기록도 찾아볼 수 없다. 월지의 험난한 이주사에 대한 그 어떤 관심도 사서에 드러나 있지 않다. 그렇다고 나는 믿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추사선생의 시문 중에 월지에 대한 언급이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선생의 시는 아래와 같다.

 

객이 풍악을 구경하고 돌아왔다 하기에 함께 짓다[客自楓嶽遊歸 共賦]


그대는 선경에서 노닐다 오니 / 君自仙區到
구름에 물든 눈썹 윤기가 나네 / 芝眉綠染雲
평생을 산수로 친구 삼으니 / 平生山水友
어언이라 문자를 벗어 버려라 / 脫落語言文
늙은 돌은 영원히 약조 남기고 / 老石長留約
갈매기는 무리를 난하지 않네 / 閒鷗不亂群
금낭에 든 옛 글귀 더듬어내어 / 錦囊披舊句
상소에다 기문을 때우자꾸나 / 緗素補奇聞
이때 풍악의 월지종(月支鍾)에 관한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 時說楓嶽月支鍾事。

(출처: 『阮堂先生全集』卷九 月城金正喜元春著 / 詩)

 

위의 시에서 말하는 지미(芝眉)란 격식을 갖추어 말하는 완곡어로 남의 용안(容顔)에 대한 경칭이다. 존안(尊顔)이라고도 한다. 또 상소(緗素)란 본디 담황색의 헝겊을 가리키는데, 서책(書冊), 서권(書卷)을 뜻한다. 이렇듯 옛 서적을 읽으며 지미니 존안이니, 또한 색깔을 이르는 상소와 같은 용어에 대한 지식도 터득하게 된다. 한편 금강산에 실재하는 월지국에서 온 종(鐘)의 사연을 빌미로 월지와 우리의 관계에 대한 역사 추적의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학교 인문도시 사업단장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명예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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