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이 어떻게 차별받는 사람을 무너뜨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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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이 어떻게 차별받는 사람을 무너뜨리는가?
  • 이주희 이화여대·사회학
  • 승인 2023.08.20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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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테제_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 (이주희 지음, 글항아리, 268쪽, 2023.07)

 

차별에 대한 학술적 성과가 누적되고 있음에도, 차별이 차별받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이 차별받는 감정에 주목하게 된 것은 내가 전공한 사회학이라는 학문의 영향이 크다. 사회학은 봉건사회의 제도화된 불평등이 보편적 시민권과 시장 참여를 통해 사라진 근대 산업사회 이후에 본격적으로 발전한 학문이다. 사회학이 제도화된 평등의 여러 한계에 대한 경험적 비판을 통해 그런 평등이 어떻게 불평등을 배태하는가를 분석하려 하는 것처럼, 이 책은 차별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구조가 어떻게 차별을 유발하며 우리의 감정과 삶을 무너뜨리는가를 설명하려 시도한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차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능력’이 없다고 여겨지는 소수자에 대한 경멸과 폄훼를 통해 이러한 행위가 정당화되며 오히려 차별적으로 처우 받는 집단 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에 만연한 구조적 차별의 존재를 지우고, 차별받는 사람의 감정과 저항을 무력화시킨다.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그 자체로 진실된 무엇이라 여길 수 있지만, 감정사회학을 발전시켜온 학자들은 그런 감정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로 많은 경우 우리는 조직 내 관행에 의해, 차별시정에 미흡한 국가의 방임으로 인해, 또 오랜 기간 사회화되어온 신념체계에 의해 어떤 상황에 닥쳤을 때 그 상황에 적합한 감정을 정직하게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감정을 만들어내는 세 거시구조, 즉 조직, 구조, 신념체계를 검토한다. 이들은 서로 정교하게 얽혀 각각의 구조가 가진 차별적 특성을 서로 강화한다. 조직에서 늘 하던 대로 하는 관행은 겉으로는 중립적이지만 특정 소수자집단에 더 차별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간접차별을 만연케 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가 조직 내의 이런 차별적인 구조에 직접 개입하여 시정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함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엘리트의 다수가 통상 기득권을 지닌 사회의 다수자집단의 인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 한편, 위험을 최소화하고자 마련된 경직된 관료제 구조는 기존의 통념에서 벗어나는 정책적 결단의 가능성을 크게 낮춘다. 

신념체계는 차별받는 사람의 저항 의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거시구조이다. 신념체계가 바뀌기 어려운 이유는 이데올로기가 단지 단어나 언어에 의해 승인되거나 제재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이데올로기의 논변적 관행을 지지하거나 강화하는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행위와 실천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신념체계를 자아낸 물적, 사회적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런 변화는 정교하게 기획된 제도를 필요로 한다. 역설적이지만, 이를 가능케 하는 가장 중요한 추동력은 바로 지금과 다른 대안적 사회적 질서가 가능하다는 또 다른 신념을 가지는 일일 것이다. 

2부에서는 차별받는 사람과 그들의 감정을 체념, 적응(순응), 혐오로 나누어 살펴본다. 대안을 꿈꾸지 못하게 하는 신자유주의적 각자도생의 신념 체계가 이처럼 다양한 감정의 기저에 놓여있다. 우리 주변에는 차별받는 사람들이 겪는 문제점을 기록한 수많은 문학작품과 영상매체가 존재한다. 나는 이런 사례와 더불어 그동안 수행한 다양한 연구과제에서 발견한 차별받은 감정의 흔적을 가능한 한 상세히 드러내려 노력하였다. 

차별의 서사를 소개하며 능력주의와 그에 따른 체념을 가장 앞세운 이유는 다양한 차별을 확대 재생산해는 가장 핵심적인 신념체계이기 때문이다. 능력주의가 봉건적인 혈연주의보다 나은 선발 혹은 배치 방식인 것은 맞다. 그런 능력주의가 차별을 유도하고 더 많은 불평등을 자아내게 된 데에는 능력주의에 대한 피상적 이해 하에 극단적으로 경쟁적인 개인주의가 확산한 탓이 크다. 능력주의와 지나친 보상 격차를 분리해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능력이 획득되는 경로와 관련된다. 21세기에도 고소득을 올리거나 부를 축적할 능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모, 재능과 관련된 유전자, 그리고 환경이다. 이 셋 모두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어쩔 수 없이 주어진 것이다. 이런 운에 따른 격차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이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능력주의를 나는 책에서 시험 서열주의라 명명했는데, 우리가 시험 서열주의를 맹신하는 것은 현실과는 전혀 다르게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특권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능력주의라는 창이자 방패로 기득권이 없는 사람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행위가 용인된다. 진정한 의미의 능력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동일한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보편적 복지 제공과 소득의 평준화를 이루어야 한다. 평등의 에토스를 확산시켜 능력에 따른 격차를 줄이려는 지속적인 노력 역시 수반되어야 한다. 

능력주의와 같이 신념 체계화한 거대 담론 외에도 우리가 차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수많은 장애물이 있다. 성차별과 같이 오래되고 단단한 차별의 경우, 그 장애물은 우리가 살아온 삶 자체가 된다. 대부분의 돌봄 노동자는 낮은 임금과 부당한 처우라는 면에서 차별받는 노동자라 할 수 있지만, 차별을 증명할 방법도, 그럴 의지도 없다. 결국 어쩔 수 없는 구조 속에서 그런 체제를 희생적으로 유지하는 데 가치를 부여하며 살 뿐이다. 

우리나라 혐오 정치의 특성은 그 대상이 너무나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능력주의 담론의 확대와 함께 상대적으로 열등한 생산성을 지녔다고 여겨지는 여성이나 노인, 장애인에 대한 혐오가 당연시된다. 혐오를 발생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줄어드는 괜찮은 일자리와 옆을 돌아볼 수 없도록 만드는 지나친 경쟁이다. 그런 만큼, 정치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우리 곁의 사람들을 경쟁자가 아닌 동료 시민으로 존중할 수 있는 사회의 기본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어려운 소수자집단끼리 싸우면 그들만의 리그에 있는 기득권은 더욱 손쉽게 보호되기 때문에, 현실을 바꿀 위치에 있는 사람들, 즉 기득권은 오히려 이런 현실을 온존하는 데 더 관심이 많다. 그런데도 어려운 사람들이 기득권의 논리에 더 강렬하게 동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취약한 위치에 있으면 지배적인 사고로부터 벗어난 생각을 할 때 미칠 수 있는 위험이 더 크기 때문이다. 

차별받지 않을 마음을 위해 이 책은 3부에서 차별금지법뿐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평등의 에토스를 확산시킬 수 있는 기본소득과 기본서비스를 대안으로, 보다 확장적인 의미의 자유 개념을 확립할 필요성을 제시한다. 자유라는 개념에는 하나의 정의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자신의 본질에 충실하게 살 자유를 보장하지 못하는 것은 소극적이며 협소한 정의가 적극적이며 광범위한 자유의 의미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Jericho Mile Poster

나는 [제리코마일]이라는 영화를 빌어 이 책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수감 중인 영화의 주인공 제리는 미국에서 가장 빨리 뛸 수 있지만, 올림픽 출전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메달을 딴 사람들은 좀 더 겸허해져야 한다. 우리사회에서 작동 중인 여러 차별적 기제로 메달을 쟁취한 것 자체가 가장 빨리 뛴다는 사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같은 이유로, 메달 가까이 가지 못하기 때문에 무너져 내릴 필요도 없다. 우리가 무너뜨려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차별하는 구조, 즉, 우리가 차별받았을 때 느껴야 하는, 그래서 그 구조를 제거하는 데 필요한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진실한 감정을 막아서고 있는 거대하고 단단한 벽들, 즉, 차별하는 구조이다.”(p. 230) 

만일 차별받은 경험으로 무너져 내린 경험이 있다면, 그것이 차별당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견고한 사회구조의 문제임을 기억하면 좋겠다. 차별당한 우리가 느껴야 할 감정은 체념이나 순응이나 혐오가 아니라, 이런 세상을 바꾸는 데 힘을 합치려는 조용하지만 강렬한 열망이다. 


이주희 이화여대·사회학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미국 위스콘신대학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노사관계, 계급론, 사회정책과 관련된 연구를 폭넓게 수행해왔다. 현재 고용노사관계학회 부회장과 국가인권위원회 사회권전문위원을 맡고 있으며, 이외에도 비판사회학회 회장, Women 20(G20 Outreach Group) 한국대표 등으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 『고진로High Road 사회권: 비정규직을 위한 대안적 복지 패러다임』, 『유리천장 깨뜨리기』, 『21세기 한국노동운동의 현실과 전망』, The New Structure of Labor Relations: Tripartism and Decentralization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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