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공화국’으로! 비서구 식민지 문학의 아포리아
상태바
‘세계문학공화국’으로! 비서구 식민지 문학의 아포리아
  • 서승희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현대문학
  • 승인 2023.08.20 21: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책을 말하다_ 『식민지 근대의 크리틱: 1930~40년대 한국문학비평, 제도, 서사』 (서승희 지음, 소명출판, 396쪽, 2023.07)


 

『식민지 근대의 크리틱』(소명출판, 2023)은 전시체제(戰時體制)의 도래와 더불어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 근대 한국문학 비평, 제도, 서사에 대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1930~40년대 최재서(崔載瑞, 1908~1964)의 문화 기획, 그리고 동시기에 공존한 매체 및 조선어‧일본어 문학에 대한 연구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러므로 ‘식민지 근대의 크리틱’이라는 제목은 최재서를 가리키지만 그와 협업하거나 길항 관계에 있던 지식인-문학자들의 인식론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우선 비평가이자 학자였으며 번역가이자 출판기획자이기도 했던 최재서의 다양한 면모들을 1부에 담았다. 이제까지 최재서의 비평적 출발점은 주로 ‘주지주의’ 이론을 소개한 조선어 평문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간 검토되지 않은 일본어 글쓰기를 연구 대상으로 포함시켰고, 경성제국대학이라는 학술 장과 식민지적 무/의식의 관계를 짚는 등 식민지/제국 체제하 지식의 편제와 위계를 염두에 두며 논의를 진행했다. 한편 번역가로서 최재서가 구사해야 했던 다중 전략에도 주목했다. 그의 영문학 번역이 조선문학의 발전이라는 계몽적 목표로 수렴된다면, 조선문학 번역은 조선문학의 존립을 드러내면서도 도쿄 저널리즘의 취향에 부합해야 한다는 보다 복잡한 의미망 속에 위치하는 것이었다. 

이와 더불어 출판기획자 최재서의 실험들도 시야에 넣었다. 1937년 최재서가 창립한 인문사(人文社)에서 발간된 총서 시리즈와 비평 전문 잡지 『인문평론』, 조선작품연감 및 문예연감 등은 마르크스주의자와 모더니스트가 합작하여 만들어낸 초유의 성과들이었다. 이 시기에 최재서는 새로운 레퍼런스를 통해 전체주의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전체(성)에 대한 탐구를 이어갔지만, 조선어 매체가 통폐합된 1941년 이후 마침내 일본이라는 국가를 유일한 전체로서 승인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테제 역시 ‘조선문학을 위한 영문학’에서 ‘조선문학을 위한 국민문학’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일본과 조선 사이에 존재하는 ‘피’와 ‘흙’의 상이함이라는 난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조선인 징병제 실시 발표 이후 ‘지방문학’이라는 돌파구를 통해 비로소 근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최재서는 일본(중앙)과 조선(지방)의 관계를 일방적 명령과 수락이 아닌 상호 조정의 관계로 설정했으며 대동아문화권에서 조선이 선취할 주도권을 낙관적으로 상상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창작의 부재로 인해 조선의 현재가 아닌 과거에서 내선일체의 근거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1930년대에 최재서가 전개한 조선문학 발전 및 대중 교양 프로젝트는 분명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배제하고자 한 혼란과 무질서에서 주체성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는 언제나 ‘칙칙’하고 ‘주저’하는 식민지인의 표정을 지우고 싶다는 조바심으로 국민문학이라는 보편에 접속했다. 조선발 국민문학론은 제국의 논리가 지닌 허점을 공략하는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기는 했지만, 담론의 차원에서 성립 가능한 것들이 실제에 있어서도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나 국민문학 시대에 지식인의 관념은 민중에 대한 폭력으로 전화되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죽음으로써 국민이 된다는 역설은 지식인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들이 계몽하고자 했던 조선 민중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2부 ‘식민지 말 조선문학의 쟁점’에서는 박태원, 정인택, 이석훈, 김문집, 김사량, 이무영 등 조선인 작가들과 시오이리 유사쿠, 미야자키 세이타로 등 재조일본인 작가들의 소설을 분석했다. 이는 『가정의 벗』, 『국민문학』, 『녹기』, 『문화조선』 등 식민지 말기에 출현한 다양한 매체와 일본어 작품집들을 고찰한 결과이기도 하다. 문학적 출발점과 관심사가 각기 달랐던 작가들은 이른바 ‘전환기’로 일컬어지던 시기에 이르러 협력에의 요구에 직면했다. 그들은 당시 새롭게 생겨난 매체의 지향을 고려하여 작품을 제작했지만 작가로서의 개성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그들이 그려낸 문학의 지형도는 단일하지도 일률적이지도 않았다. 

일찍이 자신의 소설에 다양한 여성들을 등장시켜 왔던 박태원은 농촌 여성을 주된 독자로 삼는 관변 매체의 청탁에 따라 총후 미담이나 보수적 가족 서사와 변별되는 여행 서사들을 써냈다. 여기서도 그는 특유의 인장이 새겨진 여성 인물을 선보이긴 했지만 농담이나 낙관이 불가능하게 된 한계 지점을 감추지는 못했다. 

반면 정인택은 식민지의 백수와 병자가 생활인으로 재탄생하는 내선연애‧결혼 서사를 그림으로써 문학적 전환을 예고했고, 실제로 국민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면 조선의 국민문학이 놓여 있던 이중구속 상태를 알 수 있다. 식민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완전히 삭제하면 진정성이 없다고, 드러내면 국민적이지 못하다고 비판을 받았던 것이다. 전자가 정인택이라면, 후자는 이석훈이다. 이석훈은 국민문학 시기에도 끝까지 자기의 이야기를 썼던 독특한 작가이다. 이로써 그는 자기 혁신을 증명하고자 했으나, 결국 이는 인위적인 정체성 변환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전시하는 장이 되고 말았다. 

비평가로 알려져 있지만 『ありらん峠(아리랑고개)』(1938)을 펴낸 소설가이기도 했던 김문집은 장혁주와 마찬가지로 도쿄 문단을 겨냥하고 일본어 창작을 했던 인물이다. 몰락한 조선을 중심축에 둔 그의 데카당스 서사는 근대 비판의 급진적 메시지 대신 일본 독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이국적 소재 및 스타일의 무대로 기능했다. 그러나 작가적 명성을 얻는 데 실패했던 그는 조선어 비평가로 전신하여 미적 내선일체론의 지평으로 나아간다. 

그와 달리 김사량은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르는 등 도쿄 문단에서 주목받은 신예 작가였으며 일본어로 조선을 알린다는 뚜렷한 목표 의식 아래 많은 소설을 썼다. 이 책에서는 조선의 여행 잡지에 실린 김사량의 소설을 이무영, 재조일본인 작가들의 소설들과 함께 검토하며 대동아의 요충지로 재탄생한 조선의 장소성을 살펴보았다. 김사량이 무제(巫祭)와 풍수지리 등 재래의 풍속을 활용하여 생명력 넘치는 조선인을 그려낸 데 반해, 이무영은 비국민의 속성을 양반의 부정적 잔재와 결합한 풍자적 계몽소설을 썼다. 재조일본인 작가들은 조선을 전혀 모르던 내지의 작가들과 달리 ‘재조(在朝)’의 감각을 발휘하고자 했지만 재조일본인과 조선인 모두를 포함한 ‘반도인’들의 상호주체성을 표현하지는 못했다. 

이처럼 이 책은 최재서를 중심에 두되, 동일한 시기에 각자의 방식으로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던 작가들의 창작들을 다루었다. 단 한 번도 ‘세계문학공화국’의 일원이 되어본 적이 없는 비서구 식민지 근대 문학의 주변부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이들의 공통된 목표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은 서구의 몰락과 ‘신동아’ 담론의 부상 속에서 조선문학의 근대와 그 이후에 대한 담론들을 생산해냈고 다양한 착종과 분열의 기록을 남겼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특정 텍스트를 내재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문학적 출발점과 욕망, 그리고 글쓰기의 변화를 두루 염두에 두며 그들의 기획이 지닌 가능성과 모순의 지점들을 다루고자 했다. 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이들의 질문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의미하다. 중심과 주변을 둘러싼 각축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에 담긴 논의들이 당대의 지식 문화는 물론 현재의 나, 그리고 우리의 문화 지형을 성찰하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승희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현대문학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한국문학 전공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재서 비평의 문화 담론 연구』(박사논문)를 필두로 식민지 조선의 비평과 서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서구문학 이론의 수용과 비평, 식민지와 제국 간 문화 교류, 출판문화와 교양 담론, 전쟁과 서사의 문화정치 등을 중심 테마로 논문을 집필했고, 젠더정치의 문제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포스트식민 시기의 식민 기억과 문화적 재현에 대한 연구 논문들을 작성했다. 한국학을 전공하는 국제 학생들과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문학을 공부할 수 있을지 모색 중이며, 연구의 범위와 방법론을 확장해나가는 가운데도 식민지 문학을 여전히 최대의 관심사로 삼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