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생물학적 사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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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생물학적 사고의 힘
  • 김응빈 연세대·생물학
  • 승인 2023.08.13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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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생물학의 쓸모: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읽는 21세기 시스템의 언어』 (김응빈 지음, 더퀘스트, 240쪽, 2023.06)

 

다윈의 진화론과 멘델의 유전법칙이 19세기 중반에 세상에 알려진 지 100년이 채 지나지 않은 때인 1953년, 두 명의 과학자가 유전체의 물질적 실체인 DNA의 구조를 밝혀냈다. 그로부터 50년 후에 인류는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생명체의 유전체 정보를 완전히 해독하고, 준(準)인공생명체를 탄생시키는 경지에 이르렀다. 실제로 2015년 중국 연구진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사상 처음으로 인간 배아에 적용하여 유전자 편집을 시도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태어나지도 않은 인간의 유전정보를 임의로 편집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윤리적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인간의 배아를 대상으로 완전히 검증되지도 않은 크리스퍼 가위를 사용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온당치 못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도 영국 정부는 2016년 세계 최초로 크리스퍼 가위를 이용한 인간 배아의 유전자 교정 연구를 허가했다. ‘맞춤 아기(designer baby)’의 탄생이라는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이처럼 생물학은 인간의 하드웨어인 몸을 빠른 속도로 변형시켜나가고 있다. 그래서 바이오 시대이고, 또 그래서 생물학은 전공에 상관없이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갖춰야만 하는 기본 교양으로 자리 잡아 나가고 있다.


생명시스템이라는 오케스트라

생물학에서는 생물(생명체)을 일컫는 말로 오가니즘(organism)을 오래전부터 사용하고 있다. 유기체로도 번역하는 이 단어의 어원은 ‘기관(organ)의 집합체’라는 뜻이다. 호흡기, 소화기, 순환기 같은 기관은 ‘조직(tissue)’이 모인 것이다. 그리고 조직은 또 다시 ‘세포(cell)’로 나눌 수 있다. 이처럼 오가니즘은 순차적으로 배열한 구성요소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되어 기능한다. 한마디로 ‘생명시스템(living system)’인 것이다. 이로써 ‘생물=오가니즘=생명시스템’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흙과 같은 자연환경에 흔히 존재하는 평범한 30여 가지의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신기하게도 이런 물질들이 복잡하게 결합하며 시스템을 이루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전에 없던 새로운 흐름인 ‘생명’이 나타났다. 생물학에서는 세포를 생명의 최소 단위로 본다. 다시 말해 세포는 가장 작은 단위의 생명시스템이다. 그러므로 단세포생물이 존재한다. 단세포든 다세포든 모든 생물은 발생과 성장, 물질대사, 생식 및 유전을 하며 자극에 반응하고 항상성을 유지해간다.

이러한 생명현상이 나타나는 근본 원리는 복잡하고 난해하기 짝이 없다. 아주 간단하고 하찮아 보이는 단세포생물, 예컨대 박테리아조차도 그 생명시스템 안에서는 수천 개의 화학반응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오케스트라가 교향곡을 연주하듯 모두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면서 말이다. 우리 몸으로 말하자면, 박테리아보다 훨씬 더 복잡한 세포가 조 단위로 모여 긴밀하게 공조하면서 생명 활동을 유지하고 있다. 인체는 세포에서 조직과 기관을 거쳐 개체(오가니즘)에 이르는 계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계층 역시 각각 별도의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생물학에서는 무엇보다도 관찰과 실험을 할 수 있는 생명현상에 근거해 생물의 특성을 탐구한다. 이 과정에서 생명현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생명시스템을 구성 부분들로 나누어 분석한다. 이러한 환원적 분석법이 생명현상을 상당히 설명해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생물은 부분들의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다. 2004년 저명한 미국 미생물학자 칼 우즈(Carl Woese)는 환원주의를 ‘경험적 환원주의(empirical reductionism)’와 ‘근본주의적 환원주의(fundamental reductionism)’로 구분했다. 전자는 생명현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현상을 구성하는 각 부분으로 환원하는 분석 방식이다. 이 경우 환원된 분석 결과에는 한 가지 방법으로만 밝혀진 진실이라는 제한된 의미가 있다. 반면 근본주의적 환원주의는 환원으로 설명된 현상이 유일하게 참인 세계라고 주장한다. 우즈는 생물학에서 환원으로 설명된 현상이 유일하게 참이라고 강변한다면 생물학은 발견과학에서 형이상학으로 변질한다고 경고한다.

예컨대 ‘유전자’는 생명시스템의 가장 밑바닥에 자리하면서 시스템 작동에 필요한 정보를 쥐고 있다. 그러나 어떤 유전정보를 언제 어떻게 읽어낼 것인지는 시스템 전체의 복잡한 조절 역학에 따라 결정된다. 유전자는 시스템 안팎을 오가는 다양한 신호들과 얽혀 네트워크를 이룬다. 따라서 생명현상을 밝히는 데 있어서 유전자의 기능을 개별적으로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생명현상은 세포에서 개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준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구성요소가 서로 치밀하게 연관되어 작용한 결과다. 만약 이 구성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규칙을 벗어나 작용하면 곧바로 전체 시스템에 이상이 생긴다. 오늘날 생물학은 유전자로 환원할 수 있는 단순한 지식체계가 아니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21세기 생물학

21세기 생물학은 수많은 유전자와 단백질, 화합물 사이를 오가는 상호작용 네트워크를 규명해서 생명현상을 이해하려고 한다. 이런 방법론이 바로 ‘시스템생물학(Systems Biology)’이다. 말하자면 시스템생물학은 생물을 개별 구성요소 수준이 아닌 시스템 수준에서 연구함으로써 구성요소 사이의 상호작용과 그에 따른 시스템 전체의 기능을 이해하려는 시도다.

인체를 숲에 비유해보자. 생물학 초기에는 그저 밖에서 숲을 바라보기만 했다. 저 안에 뭐가 있을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했고, 이를 상상하며 설레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 점점 숲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연구자가 이리저리 숲을 돌아다니며 저마다 이런저런 사실을 알아냈고, 이런 정보가 계속 쌓이면서 나름대로 길이 생겨났다. 그리고 마침내 2003년 생물학 역사에 기념비적인 업적이 세워졌다. 1990년에 야심차게 시작한 ‘인간게놈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 HGP)’가 99.9%의 정확도로 종료된 것이다. 이로써 인간이라는 숲의 정밀한 지도가 드디어 완성됐다.

이제 생물학은 ‘유전체 지도(genome map)’라고 부르는 ‘생명의 설계도’를 들고 생명현상을 탐구한다. 여기에 더해 RNA와 단백질을 비롯한 각종 세포 내 대사물질을 측정하고 분석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세포 구성요소들과 그들의 상호작용에 관한 광범위한 목록을 나날이 추가하고 다듬어간다. 마치 생명체의 몸속 내비게이션을 업데이트하듯이 말이다.

나아가 생물학은 다른 학문과의 융합연구를 확대하면서 다양한 바이오융합 기술을 새롭게 개발하고 있다. 의학 분야에서는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세균을 물리치기 위한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고 부작용이 거의 없는 항암 표적 치료제를 만드는 데 미생물 자석을 활용하는 등 노화, 암, 대사질환을 비롯한 난치병 치료법을 찾아가는 데 주력한다. 환경 분야에서는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생물연료를 개발하며 기후탄력적 기술을 만들고 사람들의 생각을 전환하는 데 동참한다.

이른바 ‘바이오 시대’를 맞이하여 생물학도로서 ‘바이오’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곤 한다. 익히 알려진 대로, 생물학을 뜻하는 ‘biology’는 각각 생명과 학문을 의미하는 ‘bios’와 ‘logos’가 합쳐진 말이다. 흥미롭게도 고대 그리스에서는 bios라는 단어를 음절 앞쪽에 강세가 있으면 ‘활’, 음절 뒤쪽에 강세가 있으면 ‘생명’이란 뜻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of Ephesus)는 “활이 생명을 뜻하지만, 하는 일은 죽음이다”라는 경구를 남겼다. 기본적으로 활은 자기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다른 생명체를 죽이는 무기다. 살아간다는 것은 죽어가는 과정과 일치하며, 한 생명체가 살려면 다른 생명체는 죽어야만 한다. 옛 철학자는 언어유희를 통해 생명과 죽음이 실상 하나임을 알리고자 했다.

생물의 변형과 복제를 넘어 설계와 제조까지 시도하고 있는 21세기 생물학에서 바이오의 야누스적 얼굴이 얼핏얼핏 보인다. 바이오 기술이 인류에게 큰 행복을 선사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전혀 예상치 못한 재앙이 닥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생물학의 쓸모>에서는 크게 다섯 가지 주제를 대상으로 오늘날 생물학의 잠재력과 그 바람직한 쓸모를 살펴본다.


김응빈 연세대·생물학

연세대학교 시스템생물학과 교수.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을 연구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독성 화합물 분해 미생물에 대해 연구했으며, 국제 SCI에 미생물 관련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연세대 입학처장, 생명시스템대학장, 미래융합연구원 과학문화연구센터장 등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과의 마이크로 인터뷰』,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등이 있다. 또한 유튜브 채널 <김응빈의 응생물학>을 운영 중이다. https://www.youtube.com/@kimyesbio/featu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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