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학계의 ‘파시즘적 역사인식’은 현재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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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학계의 ‘파시즘적 역사인식’은 현재의 문제다!
  • 김종준 청주교대·한국사
  • 승인 2023.08.1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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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테제_ 『한국 근현대의 파시즘적 역사인식』 (김종준 지음, 소명출판, 390쪽, 2023.07)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 사상이 진보 이념으로서의 힘을 잃고, 1990년대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 논의가 한국 지성계에 유입된 이후로, 진보 이념의 한 축이었던 민족주의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 왔다. 2000년대 들어서는 대중독재론이 등장하면서, 우리의 민족주의가 실은 파시즘과 동일한 것 아니냐는 질문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2023년 현 시점에도 한국 민족주의는 진보 이념으로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 사학계에서는 단 한순간도 주류의 자리에서 내려온 바 없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역사교과서 왜곡 등의 이슈는 자연스럽게 한국 사학계에서 ‘민족’ 개념에 신성함을 부여해 주었다. 2010년대 중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정국은 역사학과 역사교육에 대한 국가 권력의 개입 문제를 성찰해볼 기회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진보, 민족, 민중, 근대 개념을 독점한 주류 학계는 반대 세력을 보수, 반민족, 반민중, 전근대적 집단으로 몰아붙였다. 본서의 문제의식은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한국 사회의 ‘진보적 민족주의’나 ‘보수적 국가주의’ 모두 ‘파시즘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는 2000년대의 문제제기를 되살려 학술적으로 증명하려고 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한국 근현대사에서 이광수, 안호상, 박정희 등이 파시즘적 역사인식을 가졌다는 데에는 대다수 학자들이 동의한다. 그런데 필자는 더 나아가 안재홍, 이병도 등의 역사학자 역시 ‘민족주의’나 ‘실증주의’ 구호 아래 파시즘적 세계관을 공유했다고 본다. 1970년대 문정창 이래 재야사학은 주류 한국사학자들을 식민사학자(=파시스트)라고 공격해 왔다. 재미있게도 근래 주류 한국사학자들 역시 상대방에 대해 식민사학(=파시즘 사학)의 계승자라고 맞받아치며 선명성 투쟁을 하고 있다. ‘파시즘적 역사인식’이 본질적으로 무엇인지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은 채 말이다. 명확한 기준을 세운 후 따져보면 양쪽 주장 모두 일면의 진실을 담고 있다. ‘식민사학’의 파시즘적 성격을 주류와 비주류 학계 모두 공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본서의 주장은 ‘파시즘의 잔재’를 ‘청산’하자는 것이 아니라 ‘성찰’해 보자는 것이다. 어차피 그로부터 자유로운 역사학자가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이들이 자유주의(개인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입장을 살펴보아야 실제로는 파시즘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 근현대사의 여러 정치인과 지식인들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파시즘 인식을 두루 살펴보고, 그에 바탕해 한국 역사학의 계보를 다시 쓰며, 현행 역사교육의 문제까지 고찰해보는 것이 본서의 목적이다.

본서에서 ‘파시즘적 역사인식’이란 ‘대중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민족(국가)이라는 전체를 내세우며 고유한 전통과 역사를 소환하는 역사인식’으로 정의된다. 파시스트들은 근대화와 전통 문화를 동시에 강조하며 그 주체로서 민족이라는 단일체를 설정한다. 이때 대중들이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에 갖고 있는 반감이 이용된다. 실제 히틀러는 ‘민족적 자긍심’ 고취를 위해 역사를 이용한다는 현재주의적 역사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안호상, 박정희의 세계관은 이와 같은 도식에 잘 맞는다. 그런데 안재홍, 손진태, 이병도의 역사인식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민족주의 역사가 안재홍에게 민족주의는 대외적인 것, 민주주의는 대내적인 것이었다. 대외적으로 외세에 맞서 민족정신으로 단결하기 위해 민족주의가 필요하고, 대내적으로 균등경제, 평등정치를 실천하기 위해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민주주의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신민족주의가 되고, 민족주의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신민주주의가 되는 논리 구조다. 문제는 현실세계에서 대내적 사안과 대외적 사안이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족주의 명목으로 민주주의가 억압될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즉, 민주주의의 내용이 명확해지지 않으면 ‘신’민족주의는 허상에 그치게 된다. 이와 유사한 인식상의 문제점이 손진태에게서도 반복되고 있었다. 

안호상은 문정창 등과 교류하며 유사역사학 정립에도 일조했다. 따라서 안호상의 파시즘적 역사인식이 유사역사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는 일 역시 중요하다. 최동, 문정창부터 현재 이덕일에 이르기까지 유사역사학자들은 역사학의 존재 가치를 민족적(국가적), 정치적 효용성에만 둔다는 점에서 파시즘적 성격을 계승하고 있다. 그런데 1960년대 ‘개인의 이익을 위하는 소아 정신을 희생’시켜 ‘민족, 국가의 지도원리인 대아정신’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병도의 주장은 문정창의 그것과 별 차이를 갖지 않았으며, 박정희의 민족주의 지도이념 아래 포섭될 수 있는 것이었다. 오늘날 주류 학계는 유사역사학을 파시즘으로 낙인찍으면서 ‘유사역사학=식민사관=파시즘=전체주의≠민주주의’의 도식을 사용한다. 그러나 식민주의 역사학은 파시즘으로 단순화하면서 민족주의 역사학에 대해서는 성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적절한 비판으로 보기 어렵다. 

즉, ‘파시즘적 역사인식’은 과거 몇몇 역사학자들에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주류와 비주류를 가리지 않고, 여전히 다수 한국사 학자들의 역사상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반적으로 주류 학계의 관점은 (국정이든 검정이든) 교과서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2015 개정된 초등 사회(역사) 교과서를 보면 직접적으로 민족의 단결과 결속을 강조하는 용어는 없으나 ‘민족적 발전 도식’은 유지되고 있으며, ‘수탈과 저항’이라는 관점은 이전보다 더 강조되고 있다. ‘근대성’의 의미를 생각해 보거나 다양한 입장에서 이러저러한 선택을 한 인간 군상들의 실상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대중들에게도 그저 국가 권력과 지식인들이 제시하는 길을 따르라는 명령을 주입하고 있는 셈이다. 

갓 입학한 대학 신입생들에게 역사교육의 목적이 무엇인 것 같냐고 물어보면, 민족적 자긍심 고취 및 민족의식 함양을 위해서라든가 위기 상황에서 나라에 대한 소속감을 키우기 위해서라고 답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 필자가 수업하고 있는 곳이 2020년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인지 1930년대 나치 치하 혹은 1970년대 박정희 군사독재 하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그나마 이러한 대답을 하는 학생들은 (역사 교사, 인터넷 강사, 유투버 등의 영향으로) 역사에 관심과 애정이 있는 경우다. 나머지 대다수 학생들은 그저 수능 필수이긴 하지만 별 비중도 없는 암기 과목으로 여길 뿐이다. 도대체 어떠한 교육적·사회적 환경 아래서 이 같은 역사인식이 형성되었을까? 전문가들이 말하는 역사적 사고는 왜 한국 사회에서 이다지도 취약한가? 민족뿐만 아니라 계급, 계층, 지역, 성별, 세대 등 다양한 정체성, 풍부한 역사상에 입각한 역사의 대중화는 불가능한가? 이성적인 역사적 사고를 마비시키는 파시즘적 사고방식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이들의 일독을 권한다.


김종준 청주교대·한국사

현재 청주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 근현대사를 대상으로 한 저작으로 『일진회의 문명화론과 친일활동』(신구문화사, 2010), 『식민사학과 민족사학의 관학아카데미즘』(소명출판, 2013), 『한국 근대 민권운동과 지역민』(유니스토리, 2015), 『고종과 일진회-고종시대 군주권과 민권의 관계』(역사공간, 2020) 등이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한국 근현대의 사회사, 사학사 및 역사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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