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열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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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들
  • 김성도 고려대·언어학
  • 승인 2023.08.1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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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읽기 (김성도 지음, 세창미디어, 428쪽, 2023.07)

 

현대 인류학의 거장으로 20세기 현대 프랑스 사상계를 대표하는 학자로서 추앙받는 레비-스트로스가 1955년 발표한 『슬픈열대』(Tristes tropiques)는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이색적인 제목만큼이나 여러모로 특이한 책이다. 편집자가 필자에게 주문한 이 책의 제목이 함축하는 의미를 서술하기에 앞서 이 책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명문대학들, 출판사, 언론기관에서 선정하는 20세기 고전 목록에서 거의 예외 없이 손꼽히고 있으며, 현재까지 대략 3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현대 고전의 보편적 가치는 공인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출간 당시부터 레몽 아롱, 불량쇼를 비롯해 당시 문단과 비평계로부터 상찬을 받았으며, 특히 바타이유는 [크리티크]에 실린 서평문에서 ‘한 권의 인간적인 책, 위대한 책’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책은 투박하게 말하면 젊은 인류학자가 자신이 브라질 아마존강 유역에 거주하던 여러 부족들의 원주민 사회들을 탐사하며 보고, 기록하고, 느꼈던 바를 솔직하게 써 내려간 여행기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1934년 브라질의 상파울루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발령을 받아 장정에 오른 시점부터 20년이 지난 시점인 1955년에 자신의 기억과 기록에 의존해 단 3개월 만(레비-스트로스의 인터뷰)에 500쪽의 대서사를 써 내려갔다는 사실이다.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자신의 본업인 인류학 연구에서 잠시 벗어나 외도를 하는 시간이 너무나 아까워 밀린 숙제를 하듯 하루빨리 서둘러 자신의 여행기 원고를 퇴고하고자 강행군을 하며 초고를 완성한 것이다. 참고로, 이 저서는 프랑스 탐험가의 전설적 인물인 장 말로리가 기획한 [인간의 대지] 총서의 두 번째 책이다. 이 책의 출간에 앞서 1948년 『친족의 기본 구조』라는 제목으로 소르본 대학에서 통과된 박사 논문이 출판됨으로써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구조주의 방법을 적용하여 학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으나, 정작 레비-스트로스 자신은 대학에서 교수직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했으며, 그런 심리가 작동된 듯, 『슬픈열대』에서 그는 간간히 당시 프랑스 상아탑의 폐쇄적이고 경색된 분위기를 비롯해 특히 철학 교육의 건조함과 비생산성에 대해 여과 없이 힐난을 퍼붓고 있다. 

이 책을 흔히 여행기라고 소개하나 이 책은 결코 그 같은 장르에 가지런하게 분류될 수 없는 그야말로 어떤 기존의 장르로도 파악될 수 없는 책이다. 사실, 레비-스트로스는 이 책의 초고를 한 편의 소설로서 구상했으나, 본인의 고백에 의하면 문학적 재능이 부족하다고 절감하여 여행기 형식으로 집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겸손은 지나친 것이었으니 이 책이 출판되자마자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인 콩쿠르 심사 위원은 1955년 출판된 최고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규정상 픽션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상을 수여할 수 없게 되었다는 아쉬움을 공개적으로 토로했다. 이 책의 내용을 언급하기에 앞서,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는 『슬픈열대』는 결코 범속한 여행기의 수준이 아니라, 빼어난 일급의 소설가나 시인에 버금가는 문학적 글쓰기의 전범을 입증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내용의 현대성과 급진성과 대조적으로 이 책에서 레비-스트로스는 17세기 프랑스 고전 문학(특히 인간성에 대한 성찰을 표현한 모랄리스트 전통)의 산문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현대 프랑스의 대문호 프루스트의 문학적 스타일과 비교될 정도이다.  

그러니 이 고전의 다이제스트를 열심히 정리하며 소개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외우는 젊은 학생들은 이 책에 상감된 보석들 가운데 하나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제기되는 현재적 시사성과 함의를 갖고 있는 다양한 주제들을 파악하기에 앞서 이 책은 문학과 민족학의 접목을 통한 새로운 글쓰기의 장르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그 형식의 참신성과 깊은 맛을 감상하는 것이 그 진가를 감상하는 첩경이다. 

글의 형식과 장르 차원에서 이 책이 보여준 전대미문의 문학적 성취 그 이상으로 이 책이 가지런하게 몇 개의 주장과 핵심 주제로 요약될 수 없는 이유는 기존의 여행기, 자서전, 르포, 시론, 학술 저서 등의 범주를 모두 아우르며 자유분방하고 호탕하게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 다양한 주제와 문제의식들을 신들린 듯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범위는 학계에서의 미래가 불확실한 한 젊은이의 시시콜콜한 인생사의 불만 토로에서 시작해 자신이 속한 프랑스 사회의 부조리, 그리고 더 넓게는 현대 문명의 부도덕성에 대한 비판까지 그 범위가 개인, 사회, 국가, 인류, 지구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이 책은 인간, 자연, 사회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성찰과 명상으로 화려한 수를 놓고 있다. 

이 책의 이 같은 다층적 주제 구성과 다양성이 독자에게 줄 수 있는 어려움을 다소나마 해소하기 위해 필자는 세 개의 중심축을 설정했다. ‘여행의 인간학’, ‘민족지학의 성취’, ‘현대 문명의 비판’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그 유명한 첫 문장(incipit)(“나는 여행들과 탐험가들을 증오한다.” Je hais les voyages et les explorateurs)이 암시하듯 기존 여행 방식들과 여행가들에 대한 비판으로 포문을 열고 있다. 이 책의 전체적인 톤은 매우 사적인 지적 자서전과 자기 고백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루소의 『고백록』에 근접하는데, 실제로 이 책을 비롯한 그의 저술 다수에서 레비-스트로스는 루소를 일러 현대 인류학의 창시자로 치켜세우며 숭앙하고 있다. 특히, 세련된 최고급의 문학적 필치의 언어로 집필된 이 책은 유럽에서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계승되어왔던 이른바 철학 여행(voyage philosophique)의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이 같은 철학 여행 또는 인문 여행 담론의 장르를 재탄생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플롱 출판사가 기획한 [인간의 대지] 총서에서 출판되었다. 

필자가 제시한 두 번째 축인 ‘민족지학의 성과’에 대해서는 이 책의 절반 분량(총 9부 가운데 4부 할애)은 아마존 유역에 거주하는 남비크와라 부족과 보로로 부족을 포함한 다섯 부족에서 1935년부터 1939년까지 레비-스트로스가 현장에서 관찰, 기록, 해석을 통해 참여관찰법에 기초한 민족지학의 엄청난 성과를 표상한다는 점에서 필자가 쓴 주석서의 중핵에 해당된다. 이 책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이들 부족들의 친족 체계, 안면 회화를 비롯한 미학, 공간 구획, 권력 관계 등에 대한 독창적인 구조적 분석과 통찰을 쏟아내었다. 

그런데 필자가 이 책의 제목과 관련해, 강조점을 둔 주제는 세 번째 축, 즉 ‘현대 문명의 부도덕성과 생태학적 비판’이다. 특히, 1950년대 중반기에 이미 21세기 초에 닥칠 생태학적 위기를 내다본 그의 선경지명과 혜안에서 정신이 번쩍 드는 이유는 현재 필자가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한 ‘인류세의 인간학’의 관점에서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이 책의 초반부와 말미 모두에서 서구의 우세와 침략으로 인해 야기된 제반 무질서와 재앙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개진하고 있다. 그가 품고 있던 이 같은 거시적 관점의 비판을 파악하면, 앞서 언급한 첫 문장의 선택 동기와 함의를 읽어낼 수 있다. 상식적으로 민족학자(또는 인류학자)라는 직업은 자신의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곳’의 ‘타자’를 관찰하기 위해,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본성과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증언하기 위해, 대양을 가로지르고 숲과 산을 가로질러야 하는 모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독자를 처음부터 의아하게 만드는 레비-스트로스가 맹폭하는 그 흔한 여행들과 전문 탐험가의 가면을 쓰고 이국풍을 파는 데 혈안이 된 보따리장수들을 비난하는 이유는 그들이 아직 때 묻지 않은 고장들과 민족들에 가했던 초토화의 결과를 그의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출간된 50년대 중반기의 여행자가 목격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신랄한 표현처럼, “우리 문명이 세계의 면전에 내동댕이친 오물”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잠시 필자는 자문해 본다. 여기서 사용한 ‘우리’는 근대 서구문명에 국한된 것일까, 아니면 현대 문명 전체를 포함해야 하는 것일까? 그 답은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어쨌거나, 그는 청정무구했던 야생과 황무지 상태의 남태평양 섬들이 콘크리트 건설물로 범벅되고 전통적인 경제시스템의 파괴를 경고했던 매우 진귀한 생태사상가들 가운데 한 명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이 같은 자급자족적인 전통 경제의 와해는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에서 농촌 사람들의 빈곤화와 판자촌이 우후죽순 늘어나도록 만들었다. 레비-스트로는 이미 그때부터 진행되고 있던 생태학적 위기를 목격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같은 재앙의 일차적 책임을 다른 사회들과 자연환경의 침략과 약탈로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부를 축적한 서구 문명이 져야 한다고 설파한다. 이 같은 현대 문명의 생태학적 위기를 너무나 생생하게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있다는 점에서 『슬픈열대』는 아마존 유역에서 그가 만난 케두베오족과 투피-카라히브족의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인류학 탐사 여행기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레비-스트로스가 70여 년 전에 던진 절규의 메시지를 경청했는가? 이에 대한 답은 부정적이다. 무엇보다 레비-스트로스 자신이 그의 말년에 행한 대담에서 뿌리 깊은 비관론을 여과 없이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100세를 3년 앞둔 2005년 2월, 프랑스 국영방송과 갖은 대담에서 현대 문명의 향방에 대한 예견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작금에 제가 목격하는 것은 현재 발생하고 있는 참화와 유린들입니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생명체 종들의 끔찍한 소멸과 현재의 인구 밀도라는 기정사실로 인해 감히 말하건대 인류 종이 일종의 내재적 중독과 오염의 체제 아래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현재, 그리고 제가 곧 제 자신의 존재를 마무리하고 있는 중인 세계를 사유합니다. 지금의 세계는 제가 사랑하는 세계가 아닙니다.” 이 답의 숨은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려면 한 편의 논문이 필요할 정도인데, 여기서는 그냥 불교적 체념의 피력 정도라고 말하는 것으로 그친다. 이 책의 말미에서 또 다른 명문,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했고, 인간 없이 완수될 것이다”가 던지는 염세적 예언과 더불어 또 다른 곳에서는, “아직 주사위는 던져지지 않았다‘라는 말을 불쑥 던짐으로써 일말의 희망의 메시지도 동시에 선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궁극적 전언은 중의적이다. 

생명 다양성, 종들의 절멸, 원시 문화들의 소멸과 문화의 획일화로 인해 전체적인 문화의 하향 평준화에 대한 경고음을 누구보다 먼저 냈던 인물로 그를 새롭게 평가한다면, 『슬픈열대』의 보다 심오한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 편집자가 너무나 날카롭게 주문한 이 책의 제목이 담고 있는 의미를 설명하며 글을 마무리 할 차례다. 그런데 책의 제목, 특히 학술서적이 아닌 장르들에서 제목이 책의 내용을 완결적으로 총체적으로 표상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왜 레비-스트로스 선생이 그런 제목을 정했을까 궁금증이 생겨나 문헌 조사를 해보아도 이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먼저 ‘슬프다’는 형용사의 의미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과거 여행을 회고할 때 느끼는 보편적 감정은 ‘멜랑콜리’, 즉, 우수와 회환의 감정이다. 그러니 일개 개인으로서 레비-스트로스 역시 중년의 나이에 자신의 젊은 시절의 모험, 탐험을 회고하면서 느낀 감정은 다소간의 슬픔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레비-스트로스 선생은 1994년 『브라질의 추억』(Saudades do Brasil)이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그가 아마존 탐사 당시 촬영한 3,000 장의 사진들과 더불어 브라질에서의 체험에 대한 깊은 향수감을 표현하고 있어 추억의 독특한 감정을 표현하는 포루투갈어의 고유한 표현을 그대로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이 단어는 한국인의 고유한 정서를 대변하는 ‘한’ 또는 ‘정’의 의미를 모두 녹여내고 있는 단어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이렇게 어휘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레비-스트로스가 현대 문명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부분적으로는 어떤 ‘한’이 맺힌 감정으로도 풀이될 수 있는 일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형용사가 수식하는 것이 ‘열대’라는 무생물이다. 즉, 이 책의 제목은 자신의 슬픈 감정을 넘어, 열대를 바라보는 마음이 무겁고 슬프다는 상념을 표현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여기서 열대(tropiques)는 ‘방향 전환’을 뜻하는 그리스 단어 트로페(tropê)에서 만들어진 단어로 천문학과 지리학에서 통상적으로 정의하는 적도 인근 지역의 남회귀선과 북회귀선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이곳에 위치하는 국가는 다름 아닌 레비-스트로스가 여행했던 브라질과 남아시아 국가들을 포함한다.  그러나 ‘슬픈열대’라는 표현에서 ‘열대’는 단순히 이들 국가들이나 지역을 의미하기 보다는 현대 문명의 비극적 자화상을 표상하는 하나의 ‘알레고리’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특히, 그가 관찰했던 일부 부족들의 비천한 삶에서 이들은 서구 문명이 그들의 삶의 터전을 초토화시킨 희생양이었다는 점을 인식했는데, 1959년 판본부터 표지 이미지로 사용된 한 젊은 남비크와라 부족의 멜랑콜리한 얼굴은 ‘슬픔’의 또 다른 기호학적 암시와 여운을 남긴다. 

그러나 그 ‘슬픈열대’의 의미를 수능 문제처럼, 정답 찾기를 고수하면 곤란할 것이다. 그 슬픈열대는 우리 자신의 인생,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 현재의 세계 등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실 고백하건대, 이 제목의 의미를 필자의 저서에서 서술할까 주저하다 자제한 이유는 독자의 상상력과 추론에 맡겨 열린 텍스트로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끝으로 『슬픈열대』의 심층적 의미를 판독하기 위한 또 다른 독법과 안목은 이 책이 출간된 1950년대의 시대적 상황과 맥락 속에 위치시켜 보는 데 있다. 크게 두 개를 언급할 수 있는데, 당시가 핵무기 경쟁을 비롯한 냉전시기였다는 점과 알제리 전쟁 발발을 비롯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식민주의의 굴레를 벗어나 해방을 노래하며 신생독립국들이 집약적으로 수립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와 히로시마 원폭 투하의 악몽이 여전히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고, 강대국들의 핵실험을 비롯해 첨단과학과 기계주의 문명이 여러 우려를 낳는 상황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서구문명을 표적으로 삼아 그것을 지구상의 가장 원시적인 문화들과 비교하며, 모든 기술 테크놀로지의 문명의 이기는 또 다른 이면에서 반드시 그 대가를 치룰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면서 서구 문명의 우월성 주장에 철퇴를 가했다. 한편, 제3세계 국가들이 동맹을 통해 국제 정치 무대에 부상하고 탈식민주의가 본격적으로 개시된 시점에 이 책이 나왔다는 이유에서, 1960~70년대 한때 『슬픈열대』가 반제국주의와 제3세계주의를 표방하는 문학작품의 범주에 속하기도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레비-스트로스 자신은 이 책에서 당시의 식민주의 상황에 대한 어떤 구체적 언급이나 정치적 입장을 개진한 바 없다. 그의 이런 침묵에 대해 급진적 정치성향의 인류학자들은 비난을 퍼부었고 그는 큰 곤혹을 치러야 했으나, 그가 왜 제국주의에 맞서 신생 독립국가의 정부를 일방적으로 지지할 수 없었는가에 대해서는 필자 저서에서 간략하게 기술했으나, 이 글에서는 물음으로 남겨둔다.


김성도 고려대·언어학

고려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10대학에서 언어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고려대 언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기호학회 회장과 한국영상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세계기호학회 부회장과 세계아시아기호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로고스에서 뮈토스까지』,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 읽기』, 『기호, 리듬, 우주』, 『구조에서 감성으로』, 『생태복원의 인문학적 상상력』, 『언어인간학』, 『도시인간학』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그라마톨로지』, 『소쉬르의 마지막 강의』, 『의미에 관하여』, 『퍼스의 기호사상』 『기호학과 언어철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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