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냐 더불어냐 … 한일고금비교론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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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냐 더불어냐 … 한일고금비교론 ③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3.08.1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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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

일본은 山高水不長(산불고수부장)이라고 했다. 이 말을 산이 홀로 높아 물을 동반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일본인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홀로’를 뜻하는 ‘ひとり’(히토리)라는 말이 일본인에게 황홀한 느낌을 준다. 

‘ひとりの旅’(히토리노 타비, 홀로 하는 여행)이라고 하는 일본 구석구석 탐방이 일본 텔레비전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어, 나도 열심히 본 기억이 난다. 한국의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여행자는 둘 이상이어서 고독을 음미하지 않고 즐거움을 나눈다. ‘2박 3일’이라는 것을 보면 웃고 떠들려고 여행을 떠난다.

山高水長의 나라 한국에서는 홀로 나다니지 말고, 산과 물이 어울리듯이 남들과 ‘더불어’ 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다. ‘더불어’를 아주 좋은 말로 여기고 어디에든지 쓴다. 불신의 대상이 될 염려가 있으면 이 말을 앞세워 방패막이로 삼는다. 그 때문에 ‘더불어’를 거북하게 여길 필요는 없고, 계속 소중하게 여겨도 된다. 

‘홀로’는 차등론이라면, ‘더불어’는 대등론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대뜸 이론 정립으로 치달으면 성급하다. 그 실상을 일본과 한국 두 나라 사람들의 생활 실상, 특히 의식주의 특징에서 찾아 이해하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차이를 우열로 평가하는 것은 차등론이고, 서로 다른 것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대등론일 수 있다.

날씨가 일본은 덥고 습하며, 한국은 건조하고 춥다. 이것이 山高水不長과 山高水長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되어 ‘홀로’와 ‘더불어’가 서로 달라지게 한다. 의복에서 그 직접적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의복을 먼저 살피고, 주거와 음식으로 나아갈 작정이다.

일본인은 着物(きもの, 키모노)라고, 뜻을 옮기면 ‘입는 것’이라고 하는 옷 하나만 달랑 몸에 걸치고, 아랫도리라고 할 것은 거의 없다. 우리 한복은 저고리와 바지 또는 치마가 따로 있고, 위에 입는 두루마기가 있다. 머리에 쓰는 것도 반드시 있다. 이것은 예의 이전 날씨에 관한 사항이다. 조선통신사 일행이 일본에 가서 보고, “벌건 다리, 민 대가리”는 사람 모습이 아니라고 한 것은 남의 사정을 모르고 한 소리이다.  

날씨가 덥고 습하며, 건조하고 춥기 때문에, 집을 각기 다르게 지었다. 일본 집은 벽을 나무로 얇게 만들고, 바닥에 다다미[疊]를 깐다. 한국 집은 벽을 흙으로 두껍게 만들고, 바닥에 溫突(온돌)을 설치한다. 일본 집은 더위는 막지만, 난방이 부실해 추위에는 무력하다. 한국 집은 온돌이 있어 추위를 잘 견디게 한다. 흙으로 두껍게 만든 벽이 추위뿐만 아니라, 더위도 줄여준다. 

온돌은 나무를 때서 난방을 하는 탓에 산을 벌거숭이로 만들게 된다고 나무라면서 장점이 많은 다다미 방을 만들어야 한다고, 식민지 통치를 하는 동안에 일본인이 역설했다. 이에 한국인도 일부 동조했으며, 그 여운이 아직 남아 있다. 이것이 이른바 온돌망국론인데, 실상을 알고보면 지나친 주장이다. 

일본인은 나무를 그냥 두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근대 이전에는 어디서나 나무를 태워 불을 얻었다. 일본에서는 나무를 태워 숯을 만들어 취사와 난방에 별도로 이용했다. 이것은 효율이 떨어지는 방법으로 자원을 낭비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둘로 나누어 일거리를 늘인 이중의 폐단이 있다.

한국에서도 숯을 이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별나고 사치스럽다고 여겼다. 장작을 때서 무쇠 가마솥에 밥을 지어 푸고 긁은 누룽지, 물을 부어 만든 숭늉이 한국인에게는 영원한 고향처럼 생각된다. 일본인은 ‘お茶’(오차, 차)를 마시고 ‘おこし’(오코시)라는 과자를 먹으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가지는지 알고 싶다. 깊은 추억이 달라, 한국인과 일본인은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것 같다.

다다미는 가벼워 일본 집은 이층으로 짓기 쉬웠다. 온돌은 무겁고 위에는 설치할 수 없어, 한국에는 이층이 없었다. 그 대신 필요하면 집을 여럿 채, 안채, 사랑채, 행랑채, 별당 등을 지었다. 안채와 사랑채가 분리되어 기능을 각기 수행했다. 자식이 결혼해 분가하면 한 울타리 안에 집을 한 채 더 지어 생활하는 제주도의 풍속이 오랜 내력이 있는 것 같다.

여러 채의 중간에 있는 마당은 공동으로 이용하는 공간이다. 화초를 마당 가에만 심고 가운데는 풀 한포기도 없게 해, 열을 받은 공기가 상승하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도록 했다. 일본에서 ‘にわ’(니와)라고 하는 것은 한국의 마당보다 훨씬 좁다. 한국에는 공유공간인 대청 마루 양쪽에 방이 있고, 일본 집은 현관에 들어서면 좁은 복도를 거쳐 바로 방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도 다르다. 

지금은 화장실이라고 하는 변소가 일본 집은 실내에 있고, 한국에서는 별채를 이루었다. 실내의 변소는 냄새가 나지 않게 하기 어렵다. 별채 변소는 밤에 이용하기 난감해 요강이 있어야 했다. 이 둘을 두고 우열을 가리거나 서로 비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늘날은 한국의 변소도 실내에 있으나 양변기를 사용하는 덕분이고, 그 대신 마당을 잃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의 주거는 ‘더불어’를 원리로 한다면, 일본의 주거는 ‘홀로’를 위한 공간이다. 한국과 일본의 음식도 ‘더불어’와 ‘홀로’의 차이가 있다. 그 양상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한국 음식에는 다음 적는 둘이 다 있고, 일본 음식에는 앞의 것만 있고 뒤의 것은 없다.

 

한일 공통         한국만

 젓가락           숟가락
  생강              마늘
  겨자              고추
  절임              김치
  된장             고추장
  쌀밥             잡곡밥
  덮밥             비빔밥
   회               비빔회
   국                찌개
 튀김                전

 

한국에는 숟가락이 있어 밥그릇을 상에 놓고 먹는다. 일본에는 젓가락만 있어 밥그릇을 손으로 들어 입에 대고 먹는다. 밥을 들고 먹으니 거지라고 하고, 놓고 먹으니 개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와 ‘홀로’를 차등론으로 평가하려고 하지 말고, 대등론의 견지에서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이하의 논의가 모두 이렇다.

고추는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왔는데, 한국인만 고추나 고추장이 들어간 비빔밥 또는 비빔회를 즐긴다. 이렇게 된 이유를, 고추는 음식 고유의 맛을 해쳐 ‘홀로’를 방해하고, 맛을 섞어 ‘더불어’를 빚어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겨자는 고추와 흡사해도 다른 것과 섞지 않으므로 일본에서 애용한다. 

겨자와 고추의 차이점과 같은 것이 생강과 마늘에서도 확인된다. 생강은 따로 먹어 ‘홀로’, 마늘은 찧은 다음 다른 것들과 섞어 먹어 ‘더불어’에 적합하다. 절임은 소금만 필요하고 김치는 온갖 양념을 젓갈과 함께 넣는 것이 다르다. 한국에도 오이지 같은 절임이 있다. 김치는 ‘더불어’ 음식의 극치이다. 일본에서 ‘キムチ’(키무찌)라고 일컫는 김치를 젓갈을 넣지 않고 만들어 세계에 내놓고 팔려고 하다가 실패했다. 젓갈 사용 여부에서 진품과 짝퉁이 구별된다.  

국은 맑을 수 있다. 일본인은 맑은 국을 먹는다. 한국인은 맑은 국도 건더기가 많아 탁한 국도 좋아하며, 물기가 적은 찌개도 즐긴다. 개장ㆍ육개장ㆍ닭개장 가운데 육개장은 건재를 과시하며 대단한 인기를 누린다. ‘더불어’의 극치인 김치에 돼지고기를 넣고 끓인 김치찌개는 한국 음식의 대표작이다. 그 소문을 듣고 동경대학 구내식당에서도 파는 것을 먹어보았는데 거의 맹맛으로 변했다.

일본인은 쌀밥만, 한국인은 잡곡밥도 먹는 것도 ‘홀로’와 ‘더불어’의 차이이다. 이 차이는 덮밥에서는 다른 무엇이 밥 위에 따로 있고, 비빔밥에서는 여러 식재료가 밥과 섞여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 덮밥과 비빔밥은 대등하다고 해도 되지만, 쌀밥과 잡곡밥은 부인할 수 없는 차등이 있다. 쌀밥만 먹어 영양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잘못을 잡곡밥으로 시정해야 한다.

일본에는 튀김만, 한국에는 전도 함께 있는 것은 서양과 접촉한 뒤에 생긴 뒤의 변화이다. 그 전에는 기름을 적게 써서 부쳐내는 전이 한국에는 있고 일본에는 없어 ‘더불어’와 ‘홀로’의 차이를 보여주었다. 기름을 많이 써서 식재료를 튀겨 먹는 튀김을 일본인이 서양인에게서 배워 ‘天(てん)ぷら’(덴부라)라고 했다. 이것을 한국에서 받아들이고, ‘튀김’이라고 번역했다. 

재료가 튀김은 단일하고 전은 복합되어, ‘홀로’와 ‘더불어’의 차이를 유지하고 있다. ‘豚カツ’(돈카스)는 일본에서 만든 서양식 튀김의 명품이어서, 국내외의 인기를 누린다. 한국의 전을 대표하는 해물파전이나 빈대떡은 국내에서나 환영받고 밖으로 나가지는 못하고 있다.

‘홀로’ 음식과 ‘더불어’ 음식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맛있는가 하는 논란은 공정하게 판결할 수 없다. 각자 좋은 대로 즐기면 된다. 어느 쪽이 영양가를 고루 잘 갖추었는가는 다른 문제여서 정답이 있다. 모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분발해야 한다. 

일본인은 줄곧 반찬은 적게, 밥은 많이 먹는다. 한국인은 밥은 적게, 반찬은 많이 먹으려고 한다. 하나는 ‘홀로’, 또 하나는 ‘더불어’의 표상이다. 영양 섭취에서는 버려야 할 것과 키워야 할 것이 분명하게 갈라진다. 일본 음식도 한국 음식도 세계적인 평가를 받으려고 진출하고 있다. 밥을 더 먹자고 하면 장래가 없다. 맛있는 반찬으로 식도락의 향연을 벌여야 한다.  

음식 타령을 너무 길게 했다. 화제를 바꾸어 음악 이야기로 마무리를 삼는다. 일본에서는 大鼓(오오쓰즈미)라고 하는 큰 북 하나를 혼자 힘차게 치는 소리가 전통 민속음악의 위대한 제왕이다. 한국에서 네 사람이 네 가지 타악기를 각기 두드리는 四物(사물)놀이가 이와 대등한 구실을 한다. 大鼓와 四物은 명칭에서부터 ‘홀로’와 ‘더불어’가 어떻게 다른지 잘 말해준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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